슬슬 뭉쳐볼까
  • 김성곤│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3.03.19 11: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親朴은 분화, 非朴은 결집…긴장 감도는 새누리당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새누리당 소속의 한 재선 의원이 최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고백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지역구 유권자에게 배포한 의정 보고서 표지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쓰려다가 결국 뺐다는 것이다. 여당 의원 입장에서는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은 더없이 소중하다. 더군다나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집권 초기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막말로 사진이 없으면 합성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즉,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표지로 쓰는 건 고민할 일이 아닌 모범답안인 셈이다. 하지만 결국 고민 끝에 이 의원은 대통령이 없는 사진으로 표지를 교체했다. 지역구 내에서 박 대통령의 인사와 관련해서 일고 있는 비판적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지만, 민심의 이상 기류는 확실하다는 것이 이 의원의 전언이다. 특히 이 의원의 경우 언론에서 ‘친박(親朴)계’로 분류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하다. 역대 정권 초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누리당이 폭풍전야다. 18대 대선 승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확고한 상태이지만, 미묘한 균열의 틈이 엿보인다. 특히 새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에 따른 식물 정부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친박 내부의 분화 가능성은 물론, 거의 와해된 것처럼 보였던 비박(非朴)계의 세력화 움직임도 조심스럽게 점쳐진다. 표면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분위기이지만 내부는 이미 곪을 대로 곪아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다. 비박계 의원들의 불만은 휴화산 상태의 잠복기를 거쳐 이르면 4월 재·보궐 선거 이후 활화산처럼 타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3월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참석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한구 원내대표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왼쪽 사진)ⓒ 시사저널 박은숙 . 3월13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회의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앞서 이재오 의원. 이병석 국회부의장, 정갑용 의원, 정의화 전 국회부의장(왼쪽부터) 등 중진 의원들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오른쪽 사진). ⓒ 뉴시스
정몽준·이재오·남경필, 박 대통령 정면 비판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이대로 가면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4월 위기설’ ‘5월 위기설’이 쏟아져 나오는 근본 이유는 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국정 난맥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대선 이후 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감히 박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대다수 의원은 관망 모드를 유지했다.

새누리당 내부 기류는 ‘의혹 백화점’으로 불리는 김병관 국방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MBC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자인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는 3월11일 “김병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결과와 관련해 (국방)위원장을 포함해서 국방위 소속의 여당 의원 전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모두 지역 일정이라든가 개인 사정, 또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고사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다. 19대 총선의 과반 승리는 물론, 정권 교체 여론이 높았던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의 벽까지 뚫고 승리했다. ‘선거의 여왕’인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반란의 씨앗은 점차 싹을 틔울 기미다. 그 물꼬는 역시 비박계 의원들이 텄다. 이들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출연은 물론, 당 공식회의나 트위터를 통해 청와대의 일방통행을 비판하며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대내외적인 경제 위기와 북한의 추가 도발 등 안보 위기 속에서 야당을 비판해온 지도부의 공식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대다수는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 및 과거사 문제 등으로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이들이다.

7선의 정몽준 의원은 3월13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통령도 정치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정치의 빈자리를 행정이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을 공개 비판했다. 쇄신파 리더 격인 5선의 남경필 의원은 14일 “김병관 후보자는 군 내부 통솔을 가질 만한 리더십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에 이 문제를 면밀히 검토하고 여론의 흐름을 봐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3월6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힘 있는 자가 양보하면 포용과 아량이 되지만 약한 자가 양보하면 굴종이 된다. 파트너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수도권 재선의 김용태 의원은 3월6일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절박성은 이해하지만 시기와 방식에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최근 들어 박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겠다”는 분위기가 여기저기 돌출되면서 여차하면 비박 세력들이 ‘반박(反朴)’ 깃발을 들고 뭉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새누리당의 대세는 여전히 친박이다. 다만 이들이 역대 정권의 가신 그룹을 형성했던 ‘상도동계’ ‘동교동계’ ‘친노’만큼의 결속력과 소속감이 있느냐 여부는 회의적이다.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친박의 분화 가능성은 다분하다. 대선 이후 친박 진영에서는 특정인의 독주를 놓고 내부 불만이 폭발 직전이라는 분석까지 나오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우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탄생을 위해 똘똘 뭉쳤던 친이계가 집권 이후 ‘SD(이상득 전 의원)계’ ‘친이재오계’, 정두언 의원 주도의 ‘소장 그룹’ 등으로 분화된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박계가 정국 캐스팅보트 쥘 수도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질 수 있다. 특히 4월 재·보선을 통한 안철수 전 교수의 현실 정치 전면 등장은 기정사실이다. 안 전 교수의 등장은 여야 정치권의 지각 변동을 예고한다. 우선 민주당 내부의 세력 재편 및 호남 기득권 해체가 불가피하다.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지만 새누리당에 미치는 파급력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여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 초 겪었던 촛불 시위와 같은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친박의 분화 및 비박의 세력화가 가속화되면 이재오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분권형 개헌 추진모임’과의 연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대통령이 핵심 대선 공약인 경제 민주화 추진에 미온적일 경우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결집한 ‘경제 민주화 실천모임’도 반박 그룹으로 돌아설 수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프다. 이명박 정부에서 친박계가 여당 내부의 야당 역할을 하며 캐스팅보트를 쥔 것처럼 박근혜 정부 아래서 친이 중심의 비박계가 비슷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물론 비박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15~20명 정도로 과거 50명 안팎을 유지했던 친박계보다 열세이지만 새누리당 의석이 과반을 아슬아슬하게 넘고 있다는 점에서 비박계가 반박으로 돌아서면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과 대립각을 형성하면 비박 또는 반박 그룹이 당·청 관계의 재정립을 명분으로 독자 세력화에 나설 수도 있다.

오는 10월 무더기 재·보선이 예고되면서 사실상 미니 총선이 치러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재·보선 패배→내년 6월 지방선거 패배→2016년 20대 총선 참패라는 끔찍한 시나리오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적잖게 동요할 수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비주류가 정권 초기에 목소리를 내기 힘들지만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올 공간을 열어줬다”며 “당장은 아니라도 비박계가 향후 캐스팅보트를 쥘 가능성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