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에 열린 ‘뒷문 입학’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3.1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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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훈국제중 3년 학비 4500만원+α

서울 강북구 미아삼거리역 6번 출구로 나가면 학교법인 영훈학원 이정표가 나온다. 허름한 골목길로 들어가 전통 재래시장인 숭인시장을 지나자 영훈초등학교와 영훈국제중학교 정문이 보였다.

영훈초교는 서울에서는 내로라하는 귀족 사립학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손자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다닌 학교로 알려지면서 ‘대한민국 사립초등학교 1번지’로 불린다. 영훈국제중학교도 부유층 자제들이 가장 보내고 싶은 학교 중 하나다. 영훈초교와 국제중은 모든 학부모의 로망으로 꼽힌다. 3월14일 오후 3시쯤 기자가 학교를 찾았을 때는 입구에서 출입자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영훈학원 산하의 영훈초교·영훈국제중·영훈고는 한 담장 안에 모여 있다. 그런데 귀족 학교 이미지와 주변 환경은 너무나도 이질적이다. 영훈초교 후문은 시장 입구와 연결되어 숭인시장이 영훈학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3월15일 아침 영훈국제중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오른쪽). 왼쪽은 학교 안에 설치된 학교법인 영훈학원 이정표. ⓒ 시사저널 최준필
부유층 자녀의 출세 등용문

기자가 학교를 찾았을 때에는 마침 중간고사를 마친 중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교문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다가가 학교에 대해 물어보자 “우린 잘 모른다”며 대답을 피했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영훈초교 졸업생 상당수는 한 울타리에 있는 영훈국제중으로 직행한다. 올해 입학생들을 보면 영훈초교에서 약 20명의 학생이 영훈국제중에 입학했다.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평균 1~4명이 입학하는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다. 이 중 6명이 이번에 문제가 된 비경제적 사회적 배려 대상자(사배자) 전형인데, 학부모들의 직업은 사업가·의사·변호사 등 대부분이 부유층이나 사회 지도층이다.

영훈국제중은 서울의 부유층 사이에서는 출세의 보증수표로 통한다. 그러다 보니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실력이 안 되면 ‘돈’을 써서라도 입학시키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은 속살을 꽁꽁 숨기고 있었으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이 사배자로 입학한 것이 알려지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사배자’는 말 그대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나 사회적 소수자 등에게 국제중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목고나 자율고 그리고 국제중 등은 입학 정원의 20%를 사배자로 선발해야 하지만 입학 전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학교장 추천서만 있으면 지원이 가능한 것이 문제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편법 입학 등의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2011년부터 입학 전형을 강화해 ‘경제’ ‘비경제’로 나누었으나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 ‘비경제적 배려 대상자’는 한 부모 가정 자녀, 소년 소녀 가장, 조손 가정 자녀, 북한 이탈 주민 자녀, 환경미화원 자녀, 다자녀 가정 자녀 등이다. 겉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 지도층이나 부유층의 자녀가 한 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또는 다자녀 가정일 경우에는 입학 문이 열린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은 ‘한 부모 가정 자녀’에 해당돼 사배자 전형에 지원했다. 그는 2009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딸인 임세령씨와 이혼한 후 혼자 지내왔다.

사배자 전형 기준으로 보면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다만 할아버지는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뽑은 세계의 부자 중 69위(5조1000억원), 아버지는 316위라면 말이 달라진다. 영훈국제중이 일반 전형으로 입학하지 못한 부유층 자녀를 유입하는 통로로 사배자를 악용해왔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 부회장의 아들이 사배자로 입학하면서 학교발전기금을 얼마나 냈는지는 베일에 싸여 있다. 다만 다른 학부모가 낸 금액과 이 부회장의 경제적인 위치 등을 따져볼 때 상상을 뛰어넘는 금액이 오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학부모들 “발전기금 2000만 ~5000만원”

영훈국제중의 입학금과 수업료는 학교 자율로 정할 수 있다. 기자가 학부모 등을 취재해보니 영훈국제중은 학생 한 명당 1년에 보통 1500만원의 학비가 들어가는데, 3년으로 따지면 4500만원이 든다. 수도권 4년제 대학의 1년 평균 등록금인 690만원을 훨씬 웃도는 액수다.

물론 입학할 때 내는 학교발전기금을 포함하면 학교에 내는 총액은 더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한 학부모는 “학교측의 요구대로 2000만원의 발전기금을 냈다”고 폭로한 바있다. 물론 학교발전기금이 비공식적이다 보니 학생 개개인에 따라 금액에 차이가 난다. 누가 얼마를 냈는지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고 있다. 영훈중학교는 국제중으로 전환되기 이전인 2002~04년에 5500만원의 불법 찬조금을 조성한 것이 드러나는 등 국제중 설립 이전부터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받았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학부모들의 제보를 받아보니 200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발전기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심지어 학교만 들어갈 수 있다면 발전기금은 얼마든지 내겠다는 학부모들이 줄을 설 정도라는 말까지 나돈다.

발전기금을 제외하면 입학금은 평균 80만~100만원 정도다. 교육비는 분기당 150만 ~17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1년에 600만 ~680만원이다. 스쿨버스비도 별도로 걷었는데 한 달에 25만원씩 연간으로 따지면 250만원이다. 학생들의 식대는, 점심은 무료로 제공하지만 아침과 저녁은 사 먹어야 한다. 보통 한 끼당 4000원으로 한 달(20일 기준)이면 16만원인데 여기에 간식비를 포함하면 연간 270만원 정도 된다. 방과 후 수업비는 학생 1인당 한 달에 20만원 정도로 파악된다. 또 매 학년마다 해외 연수를 한 번씩 다녀오는데 한 번에 200만~300만원이 들어간다.

영훈학원의 비싼 학비는 기형적인 재단 운영에 원인이 있다. 기자가 영훈중학교가 국제중으로 승인될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니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국제중학교 설립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최종 승인된 것은 2009년 10월쯤이다. 당시 서울시 교육은 공정택 교육감(구속) 체제였다. 그는 교육감에 취임한 후 국제중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강남권에는 대원국제중, 강북권에는 영훈국제중이 탄생했다.

그런데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영훈학원은 법정 부담금(사립 재단에 근무하는 직원의 4대 보험) 평균 부담률이 2.1%에 불과했다. 안민석 민주통합당 의원이 2010년 10월 전국 1763개 사립 초·중·고등학교와 특수학교의 2009년 학교 회계 결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영훈재단은 산하 학교에 낸 재단 전입금이 0원이었다. 대신 학교 회계에서 부담하도록 하는 편법을 썼다. 학교 운영비를 정부 지원이나 학부모 부담금으로 채웠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당시 국제중학교가 승인을 받으면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것은 현실이 됐다. 정부 지원은 지원대로 받고, 학부모들로부터 거액의 발전기금을 받으면서 재단은 법정 재단 전입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았던 것이다.

영훈국제중 홈페이지에는 ‘학교발전기금’과 관련해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국제적 명문 학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재원의 확보가 절실하다’며 발전기금 납부에 적극 참여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입금 계좌번호도 명시하고 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회원들이 3월6일 영훈국제중학교 앞에서 국제중 승인 취소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차량 세 대 굴리는 이사장

그렇다면 학교 재단은 누구 돈으로 운영되는 것일까. 김하주 재단 이사장은 3월8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영훈학원과 관련한 의혹을 전면 부정했다. 또, 배임 수재 혐의로 고발된 데 대해 “학교에서 단돈 100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위원은 “한 푼의 근로 소득도 없는 이사장이 외제차를 포함해 세 대(체어맨, 링컨MKX, 기아 모닝)의 차량을 운행하고 있었다. 이 중 체어맨의 경우 법인 소유로 되어 있다. 이 차량의 세금과 보험료는 누가 부담하고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차량에 대해 학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고등학교·중학교·초등학교에 한 대씩 할당해 운영해왔고, 유류비는 초등학교 법인카드로, 차량 기사는 초등학교 기능직으로 있는 김 아무개 기사가, 심지어 서류상 퇴직한 조 아무개 법인 감사의 차량 유지비도 초등학교 법인카드로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영훈학원은 서울시교육청 공무원 출신 인사 5명을 영입했는데, 예산 확보나 감사 무마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들은 법인과 학교 감사, 행정실장, 교장을 맡고 있다.

이 중 정동식 국제중학교 교장은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을 역임했다. 교사자격증도 없다. 이에 대해 재단측은 “내부 행정에 정통한 사람이 없어 교육 행정에 정통한 교육청 직원 출신들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현재 영훈학원은 설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서울시교육단체협의회는 ‘입학 대가 금품 수수’ 의혹을 규명해달라고 서울 영훈국제중학교 교장과 김하주 이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시교육청도 3월8일부터 영훈국제중학교 편입학 등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검찰 수사와 시교육청 감사를 통해 세간의 의혹이 얼마나 규명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학교측의 ‘입학 장사’에는 제동이 걸리게 생겼다.

영훈국제중의 교육 목표는 ‘따뜻한 마음과 창의적 지혜를 겸비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또, 학교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은 ‘자기를 반성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존중하는 사회인’이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지금 영훈학원이 받는 온갖 의혹을 보면 재단과 학교가 교육 목표와는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하다. 학교가 교육이 아닌, 돈 장사를 위한 창구로 변질되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하주 이사장 ⓒ 연합뉴스
광복 후인 1956년에는 4년 동안 서울시 초대 교육감을 지냈고, 196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지금의 영훈학원을 설립했다. 1985년 9월 작고할 때까지 영훈학원 산하의 초·중·고교 교장을 번갈아 맡았다. 아들인 김하주씨(80)는 1981년 4월 영훈학원 이사장에 취임한 후 올해 32년째다. 그는 교육계에서 사학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왔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한국사립중고법인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김 이사장은 정치권과도 가까웠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3년부터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5년까지 22년간 민주평통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았고,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는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한 뉴라이트 단체인 선진화국민운동본부에 참여했다. 2008년 영훈중학교가 국제중으로 승인을 받자 정치권과 교육계 일각에서는 “대선 때 공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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