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박혀 있지 말고 회사 나와라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3.19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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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어 야후 CEO의 ‘재택근무 금지’ 조치 후폭풍

워킹맘들의 동경을 한 몸에 받은 여성이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지난해 7월 구글 부사장에서 야후의 최고경영자로 발탁된 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가 그 주인공이다. 최근 그가 보낸 한 통의 문서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2월23일 메이어는 오는 6월부터 야후가 시행하는 재택근무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갑자기 등장한 예상 밖 조치에 야후 직원들과 미국 실리콘밸리 IT 종사자들의 갑론을박이 뜨겁다.

의도는 명확했다. 이번 일은 야후의 인사 책임자 재키 레세스의 2월23일 사내 메모가 유출되면서 드러났다. 메모에는 ‘야후 직원이 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 없이 하루하루의 일을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고 경험을 나누는 것이며, 이는 사무실에서만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반면 야후 직원들은 “애초에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고용된 것”이라며 탄력 근무제가 폐지된다는 사실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조치는 고객 서비스 등을 담당하는 수백 명의 직원에게 먼저 적용될 예정이지만, 야후 내부에서는 고용 불안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메이어는 인기가 높은 CEO다. 취임 초기 임신 사실을 공개하며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야후 본사 직원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고, 스마트폰을 지급하기도 했다. 그랬던 메이어가 탄력적인 근무 방식의 대명사인 재택근무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자 직원들은 “위선적”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야후의 이런 조치에 대해 일각에서는 야후에 팽배한 ‘야후병’을 일소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본다. 구글 출신인 메이어 CEO가 한참 일해야 할 낮 시간에 본사 주차장과 사무실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직원들이 일을 적게 하려는 풍조에 채찍을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면, 야후의 조직 문화를 다시 젊고 활기차게 만들기 위한 방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직원이 서로 모여 얼굴도 보고 대화도 나누며 함께 일해야 의욕도 높아지고 발전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2012년 2월20일 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가 미국 NBC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야후의 혁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AP 연합
구글에 밀린 위기가 부른 극약 처방

야후는 지난 5년 동안 끝없이 추락했다. CEO만 6명이 교체됐다. 야후의 핵심 사업인 디스플레이 광고 사업은 구글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시장 철수에서 알 수 있듯이 글로벌 경쟁력도 떨어졌다. 2012년 4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디스플레이 광고 부문 매출은 3.5% 하락했지만, 검색광고 총매출은 3.8% 상승했다. 야후의 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2억9560만 달러(주당 24센트)에서 2억7230만 달러(주당 23센트)로 줄어들었다. 전체 매출액은 1.6% 상승해 13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이익은 7.9% 감소했다. 메이어는 모바일 기기에서 야후 사용률을 높이고 다른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온라인 콘텐츠 검색의 중심지라는 옛 명성을 되찾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야후를 잘 아는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난 문제보다 조직 내부의 문화적인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야후의 한 전직 직원은 “직원들이 야후가 이미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욕은 떨어져 있고, 의사 결정은 더욱 느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 나쁜 관습이 지난 수년간 누적됐다”고 토로했다.

이전의 야후 CEO들이 외부 환경을 문제 삼은 것과 달리 메이어가 회사 내부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추측이다. 하지만 ‘재택근무 폐지’라는 강력한 카드를 던진 메이어의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야후의 재택근무 폐지는 ‘노동’에 대한 본질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노동 시간을 보낼 것인지, 그리고 직원들에게 얼마나 자유를 줘야 할 것인지에 관해 폭넓은 논의가 미국에서 일어났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고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재택근무는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2005~11년 동안 재택근무자는 70% 이상 늘어났고, 미국 노동자 10명 중 1명은 최소 일주일 중 하루를 집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혁신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야후의 결정을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구글·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주요 기업들은 재택근무 등을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혀 근무 유연성 제도를 폐지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들 기업은 재택근무를 채택하고 있지만,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반면 야후에 동조해 재택근무 폐지에 찬성하는 기업들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가 재택근무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베스트바이는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사무실에 나와 함께 사업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낫다”고 설명했다.

빌 게이츠 “재택근무 금지 반대”

야후의 재택근무 폐지 방침은 재택근무의 효용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재택근무가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논란은 최근 잠잠했지만 야후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한 금융기업 인사 담당자는 “직원이 재택근무를 할 때면 생산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 건지, 출근할 때보다 생산성이 큰 건지 궁금할 때가 있다”며 재택근무의 생산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직원들의 높은 근무 만족도가 생산성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강하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재택근무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판단하는 쪽이 많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근무 태만 등에 관한 문제는 모니터링 시스템 등 보완용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3월10일 CNN에 등장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는 “메이어의 재택근무 금지 결정은 직원에게 더 많은 유연성을 주려고 하는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야후의 조치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야후는 재택근무 폐지 방침에 따른 비난이 두렵지 않을까. 최근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미국 경기가 악화되면서 기업의 목소리가 더 세진 점도 야후가 이번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높은 실업률 때문에 노동자의 주장은 약해지고 있는 데 비해 고용주들은 직원 통제권을 강화하고픈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실리콘밸리 역시 이런 현실에 처해 있다. 야후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메이어 CEO는 취임 이후 야후의 주가를 35%가량 끌어올렸다. 그가 던진 ‘재택근무 폐지’라는 조치가 결정구가 될 수 있을지 전 미국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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