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800만 시대 ‘비상등’ 켜졌다
  • 정철우│이데일리 기자 ()
  • 승인 2013.03.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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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참패로 먹구름…구단 수 증가 따른 경기 질 저하 우려도

3월30일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야구계의 시름이 깊다. 올해 관중 800만명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원인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패. 류중일 감독(50)은 “3월 한 달 동안 심장 뛰는 소리와 박수 소리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만들어보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야구는 거침없는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승 우승을 기점으로 관중은 물론 프로야구 전체의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곧바로 이어진 2009년 2회 WBC에서는 극적으로 결승까지 진출하며 한국 야구의 위상과 위력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세계적인 수준의 야구라는 믿음은 곧 스타 마케팅으로 이어졌고, 이렇게 성장한 각 팀의 스타들은 각각 관중몰이의 일등 공신 노릇을 하며 프로야구 흥행을 주도했다. 그 결과 2012시즌, 사상 처음으로 700만 관중을 돌파한 한국 프로야구는 제2의 르네상스를 넘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3월5일 타이완 타이중 시에서 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1라운드 한국 대 타이완 경기. 3-2 승리를 거뒀으나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 연합뉴스
야구 팬 실망시킨 WBC 성적

물론 3회 WBC가 시작되기 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던 것이 사실이다. 류현진·김광현·봉중근 등 좌완 에이스가 줄줄이 대표팀에서 이탈하며 공백이 크게 생겼기 때문이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가 어둡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한국 야구가 그동안 쌓아온 힘이라면 또 한 번 큰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 0-5로 완패하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이제야 한국 야구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문제는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2013시즌이다. WBC에서의 허무한 경기력을 지켜본 야구팬들의 발걸음이 야구장을 외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국제 대회의 참패가 반드시 흥행 부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6년 11월, 한국 야구는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타이완, 일본에 연패하며 동메달에 그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이듬해인 2007년 프로야구 관중은 전년도인 2006년보다 100만명 정도 늘어난 41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당시는 야구에 깊이 빠져 있는 골수팬이 확장세를 보이던 시기라는 것이다. 외풍에 흔들릴 가능성이 그만큼 작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현재 프로야구 관중은 이전에 비해 양적으로는 늘어났지만 충성도에서는 아직 검증된 것이 없다. 가족과 여성 위주의 관중 증가가 뚜렷해진 것이 최근 관중 증가의 가장 대표적인 경향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수준의 야구’라는 훈장이 사라진 뒤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한 프로야구 구단의 마케팅 관계자는 “야구장에 오는 팬 중 야구를 열심히 보는 팬의 수가 예상보다 적다는 통계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기력에 영향을 덜 받겠지만 야구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주변의 평가에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장 눈에 띄는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꾸준히 문제 제기가 계속되면 그동안 야구가 유지해온 품위에 손상이 갈 수 있고, 이런 상황이 악화될 경우 미련 없이 등을 돌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프로야구 신생팀 참여 확대는 위기이자 기회

문제는 이번 대회에서의 참패가 1회성 실망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 프로야구의 경기력이 기대 수준을 밑돌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단순 수치로 실책 등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수준 높은 플레이의 빈도는 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 ‘발야구’를 필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역동적인 야구가 한국 프로야구의 흐름을 주도했다면, 이후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지 못한 채 정체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프로리그도 언젠가부터 4강 구도가 확실하게 굳어지며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이미 최근 3년 연속 한국시리즈는 삼성과 SK의 대결로만 펼쳐졌다. 이들과 함께 두산과 롯데, 여기에 KIA 정도만이 4강 경쟁을 하고 있을 뿐 나머지 팀은 좀처럼 상위권 도약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13시즌에서는 한화와 NC가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우려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화는 에이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큰 버팀목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류현진 공백은 가뜩이나 꼴찌로 추락하며 흔들린 팀 전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화는 명장 김응룡 감독을 영입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지만, 전력 보강 없는 지도력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수년째 반복되는 한화의 침체는 리그의 전체적인 흥행 판도에 마이너스 요인이다.

신생팀 NC가 어느 정도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도 아직은 의문 부호가 달려 있다. 지난해 퓨쳐스리그(2군)에서 60승5무35패로 돌풍을 일으키며 기대치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군 성적이 늘 1군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군의 높은 벽 앞에 좌절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NC가 과연 하나의 팀으로서 1군에 어울리는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따라 전체 리그 수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NC의 창단으로 각 팀의 1.5군급 전력이 많이 빠져나간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한 시즌을 베스트 전력으로만 꾸려갈 수 있는 팀은 없다고 봐야 한다. 부상 선수가 나오거나 체력적으로 문제점이 드러날 경우 이를 만회해줄 백업 요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NC 창단으로 이런 선수들이 대거 이적하며 팀별로 선수층이 크게 얇아졌다는 것이 문제다. 시즌이 진행되며 팀 별로 전력 이탈이 속속 나올 경우 수준 이하의 경기가 속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전임 감독은 “야구 원로들이 하향 평준화를 걱정하는 것은 당장 선수의 기량이 떨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도자나 선수가 매너리즘에 빠져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덧붙여 “차라리 WBC에서 한번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고인 물이 되지 않도록 야구계가 모두 노력해야 할 때다. 여기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대중에게 외면받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NC 다이노스는 꼴찌 확정?  

새내기 구단이 첫해부터 돌풍을 일으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은 유망주에 불과한 신인급 선수와 각 팀의 주전 경쟁에서 살짝 밀린 1.5군급 선수를 주축으로 시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부 성장과 외부 수혈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적어도 4~5년 정도는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NC 다이노스도 이런 기준에서 크게 다를 것 없는 출발을 하고 있다. 때문에 자칫 9구단 NC가 리그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몰릴 위험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 등을 통해 드러난 NC의 전력은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적어도 꼴등은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예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김경문 NC 감독은 젊고 활기찬 움직임의 팀을 만드는 데 나름으로 확실한 능력을 갖고 있는 지도자다. 한국 발야구의 선구자 중 한 명답게 NC에서도 역시 끊임없이 뛰고 달리며 상대를 압박하는 팀 컬러를 구축했다.

외국인 투수 세 명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NC는 신생팀 어드벤티지에 따라 다른 팀보다 한 명의 외국인 선수를 더 쓸 수 있다.

아직 기량 점검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아담 윌크·찰리 쉬렉·에릭 해커 등 NC에 합류한 외국인 투수가 준척급 이상의 활약만 펼쳐준다면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일 수도 있다.

2013시즌은 홀수 구단 체제로 꾸려가야 한다. 한 팀이 3일에서 4일까지 휴식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일정을 잘 활용하면 세 명의 외국인 선발 투수의 기용 비중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예를 들면 금, 토, 일 주말 3연전에 쓴 뒤 다시 다음 주말 3연전에 이들을 또 기용하며 승수 쌓기에 나설 수 있다.

겁 없이 덤벼드는 도전자 정신처럼 껄끄러운 것도 없다. 조용히 칼을 갈고 있는 NC 다이노스가 거친 야성의 발톱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한국 프로야구 판도를 뒤흔들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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