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감회로 뚫리면 환락의 노예 된다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3.2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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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이 ‘마약’ 굴레 못 벗어나는 불편한 진실

요즘 연예인들의 신종 마약 사건으로 뒤숭숭하다. 연예인 4명이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데 이어 가수와 방송인 2명이 각각 대마초 판매와 흡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연예인이 혐의를 받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마약은 톱스타들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문제는 그런 ‘나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연예인들이 왜 마약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사회 문제의 전면에 등장하는가 하는 점이다.

스트레스 많을수록 마약에 손대기 쉬워

프로포폴은 성형수술이나 수면 내시경을 받을 때 간단한 수면 마취제로 쓰인다. 마취에서 회복되는 시간이 빠르고, 짧은 시간에 성분이 소변으로 모두 빠져나가므로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프로포폴은 뇌를 재우는 신호와 함께 쾌락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과도하게 만들어낸다. 정상적인 의료에서는 환자들이 도파민이 주는 쾌락을 느끼지 못하고 중독성도 없다. 하지만 환각 효과를 얻기 위해 잠이 들지 않을 만큼 소량만 주입하거나 반복 사용할 경우 중독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부터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지정하고 있다.

연예인들의 프로포폴 투약 사례에서 보듯, 약물에 한번 중독되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약물을 끊겠다고 다짐해도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약물을 다시 찾는 정도가 심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과 늘 연결되어 있는 연예인들의 경우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약물에 손대는 일이 잦다. 따라서 반복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약물 중독 상황에 빠지기 쉽다. 왜 그럴까.

고려대 생명과학부 백자현 교수와 서울대 치의예과 최세영 교수의 공동 연구팀은 3월13일, 만성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뇌세포가 바뀌면서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분비돼 약물 없이는 견딜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약물 중독이 재발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 부위와 작동 원리를 규명해낸 것이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코카인을 주입하는 실험으로 이러한 사실을 알아냈다. 코카인 또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많이 방출하게 만들어 환각 상태에 빠지게 하는데, 그동안 중독이 재발하는 원인을 알지 못해 치료하기가 힘들었다.

연구팀은 생쥐를 두 그룹으로 분류한 후 두 그룹 모두 만성 스트레스 상황에 둔 채 한 그룹의 생쥐들에게는 생리식염수를 주사하고, 다른 한 그룹의 생쥐들에게는 코카인을 주입하면서 상태를 관찰했다. 그 결과 코카인에 한번 중독된 일반 쥐들은 스트레스 자극을 받자 계속 코카인을 찾았다. 그런데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D2 수용체를 유전적으로 제거한 쥐들은 중독성을 나타내지 않았다. D2 수용체가 스트레스와 약물 중독 재발에 작동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트레스와 약물 중독 간 상호 작용의 원인이 처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그동안 약물 중독이 도파민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중독에 빠지는 과정이 제대로 밝혀진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D2 수용체가 중독 초기보다는 중독을 재발시키는 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연구팀이 일반 생쥐들에게 코카인을 꾸준히 투여했을 때는 스트레스가 약물 중독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코카인을 14일간 투여한 뒤 끊었다가 금단 기간에 스트레스를 주자 중독이 재발됐다. 약물을 끊었다가 다시 금단 현상이 일어나서 중독이 재발하는 데는 결국 만성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도파민 D2 수용체를 표적으로 해 약물 중독이 재발하지 않도록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그동안 약물 중독은 치료가 가장 어려운 정신질환 중 하나로 여겨졌는데, 앞으로 연구팀이 중독과 관련된 뇌의 특정 부위에 빛을 쪼여 행동을 조절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약물 중독 치료에 곧 다가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중독에 탐닉케 하는 건 바로 쾌감회로

약물 중독은 윤리적 타락이나 행동의 문제가 아닌 뇌질환이다. 중독은 자기 통제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있는 이성을 보면 ‘즐거움’을 느낀다. 음식을 먹는 것이 괴롭다면 먹지 않다가 결국 굶어죽을 것이다. 또 성행위가 즐겁지 않다면 종족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조물주는 개체와 종족 유지를 위해 뇌의 일부에 이런 행위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회로를 심어놓았다. 이곳이 바로 쾌감회로다.

뇌의 복측피개(ventral tegmental) 영역, 미상핵, 전전두엽 등이 쾌감회로에 속한다. 복측피개 영역에서 만들어진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미상핵과 전전두엽으로 들어가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음식이나 성행위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보다 훨씬 강력한 쾌감을 일으킨다.

그런데 쾌감회로로 장기간 고농도의 도파민이 들어가면 신경세포가 글루탐산을 많이 분비한다. 글루탐산은 미상핵 주변의 신경세포들이 좀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하는 물질들을 활성화시켜 신경세포들이 느낀 강력한 쾌감을 기억하고 이를 반복하도록 강요한다. 약물 중독자가 약물을 계속 복용하지 않으면 허전함이나 불안함을 느끼는 이유가 그것이다. 급기야 쾌감회로 전체가 변형돼 결국 뇌가 약물에 중독되는 꼴이 되어버린다.

중독에 빠져들 확률은 합리적 의사 결정 능력이 약할수록 크다. 우리 뇌에는 중독성 약물이나 도박이 주는 강한 쾌감을 느끼게 하는 뇌 부위가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위험이 따르는 쪽을 피하고 장기적인 결과가 이득을 가져다주는 쪽을 선택하도록 돕는 부위도 있다. 그런데 이런 부위의 조절 기능이 약화되면 사람은 일시적 만족을 가져다주는 충동적 자극에 쉽게 움직이고 결국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도박에는 항상 돈을 잃을 위험과 딸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공존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뇌에서 돈을 잃는 것에 대한 위험 인식보다 딸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먼저 작용한다. 사람들이 다음 판, 그 다음 판에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독성이 중첩되다 보면 나중에는 중독과 연관된 환경 자극에 대해서도 반응을 한다. 따라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도박 등의 중독 대상뿐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환경이 환자의 뇌에 더는 갈망을 일으키지 않도록 해줘야 할 것이다.

ⓒ 일러스트 김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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