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들었으나 자를 게 없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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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성접대 사건 후폭풍…부메랑 맞는 경찰

이른바 ‘사회 지도층 별장 성접대’ 파문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다. 눈만 뜨면 새로운 소식이 들린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나 루머가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성접대가 있었다고 말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의혹을 규명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동영상은 사실상 증거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핵심 증거인 원본 CD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새 정부 첫 법무부 차관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됐고, 결국 6일 만에 그가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 확보 2분 동영상, 증거 능력 불충분

인터넷에서는 성접대를 받았다는 사회 지도층 리스트가 돌아다닌다. 이들은 이미 ‘여론재판’을 통해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들 중 몇몇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성접대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해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만일 제가) 성접대 사건에 연루됐다면 할복자살하겠다”며 강경하게 대처하고 있다.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위치한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 이곳에서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사건의 파장이 확산되면서 수사기관인 경찰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거론되는 유력 인사들의 불법 행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경찰에서 나온 정보로 언론에 실명이 거론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명예훼손 등으로 일부 언론사를 고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마음먹기에 따라 경찰도 소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김 전 차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경찰은 확보한 2분가량의 성접대 의심 동영상에 대한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했다. 이 동영상은 <시사저널>이 이미 지난 1월 초 직접 확인한 것이다. 동영상에는 팬티만 입고 오른손에 마이크를 든 한 남성과 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담겨 있다. 남성의 경우 옆모습이 정확하게 나온다. 경찰에서는 이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기자가 본 바로는 그 인물을 누구라고 특정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국과수는 동영상 분석 결과문에서 “(동영상 남성과 김 전 차관의) 얼굴 형태 윤곽선이 유사하게 관찰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해상도가 낮아 얼굴 대조 작업에서 동일성 여부를 논단하는 것이 곤란하다. 좀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원본 영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물증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가 사실상 쓸모없게 된 것이다.

경찰측은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과 동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의 증언 등을 통해 정황 증거를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설혹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다 해도, 그의 혐의를 입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영상의 여성이든, 성접대 제공자로 지목된 윤중천 전 중천산업개발 회장이든 성접대를 통해 어떤 대가를 받았는지 확인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수수사 경력이 풍부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대가성을 밝히는 일”이라며 “이것(대가성)이 밝혀지지 않으면 성관계 자체는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사건의 경우 구체적인 혐의가 확인된 후에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경찰 쪽에서 흘러나온 정보로 언론에 실명이 거론된 뒤에도, (경찰이 확보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며 “경찰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찰이 의도한 것이 ‘검찰 흠집 내기’였다면 김 전 차관이 사퇴한 것만으로 (경찰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상황에서는 경찰은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아 보인다. 먼저 청와대와의 관계가 악화됐다. 경찰은 새 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찰로서는 청와대의 신뢰를 받는 것이 급선무인 셈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사건의 첫 시작부터 청와대와 엇박자 행보를 보였다.

경찰은 최근 성접대 사건과 관련된 10여 명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청와대와 경찰 간 불협화음 노출

일단 김 전 차관의 실명이 보도된 시점부터 문제였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지난해 11월부터 조사했다. 기자가 문제의 동영상을 확인한 시점은 올 1월 초다. 2월 들어서는 ‘김학의 동영상’과 관련한 정보를 모르는 기자가 없을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김 전 차관이 법무부 차관에 임명되기 전이었다. 이때 경찰이 언론에 수사 내용을 공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김 전 차관 임명 후 몇몇 언론이 경찰 관계자의 이름을 빌려 대서특필했다.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가뜩이나 인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나오는 판국에, 이번 사태까지 터지면서 또 한 번 큰 곤욕을 치렀다. 김기용 전 경찰청장이 해임된 것 또한 이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경찰이 김 전 차장에 대한 의혹을 청와대에 정확히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진노했고, 김 전 청장 경질을 전격 결정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청와대 외압설까지 불거졌다. 3월25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직원이 국과수를 방문해 동영상 감정 결과를 확인했다. 이를 놓고 청와대가 경찰 수사에 개입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를 언론에 흘린 것도 경찰측이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즉각 “민정비서관실에서 경찰에 감정 결과를 직접 요구할 경우 수사 방해 및 외압 행사라는 의혹이 제기될 우려가 있어 직접 확인한 것이다. 국과수가 감정 결과를 경찰에 이미 회신했기 때문에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사태를 수습했다. 청와대와 경찰 간 불협화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수사가 지지부진해 이번 사건이 장기화되거나 유야무야될 경우 실체적 진실은 사라지고 검-경의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될 우려도 제기된다. 한 예로 현재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는 리스트에는 검찰 고위직은 물론 전·현직 경찰 고위 간부의 이름이 대거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워낙 자극적이다 보니 ‘변태 성행위’ 등 별의별 루머가 다 돌고 있다. 이 때문에 리스트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본인은 물론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다. 이를 노리고 억지 소문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이런 싸움에 승자는 없다. 모두 오물을 뒤집어 쓸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건은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다.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경찰 수사에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경찰은 3월29일 현재까지 확실한 물증은 물론 핵심 인물인 윤중천 전 회장을 조사하지도 못했다. 미진한 수사에 여론도 점차 등을 돌리고 있고, 김 전 차관의 경우 실명을 게재한 언론사에 대해 수십억 원대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할 경우 경찰은 자신이 던진 부메랑에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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