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발 디뎠다 다 잃고 빈 수레만 남았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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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 뽑지 못한 민주노총의 혼란…정치적 영향력 상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죽도록 싸워 피 흘리며 얻은 조직’이었다.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는 조직’을 만들고자 모여 전국적인 조직으로 출범한 때가 1995년 11월11일. 950여 개의 합법 단위 노조와 조합원 45만명이 속한 민주노총은 1990년 출범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가혹하게 탄압받은 뒤 더 크게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민주노총 대의원 출신의 한 조합원은 그것을 ‘뿌듯함’으로 기억했다. “조선·자동차 등 우리 산업을 대표하는 노동자들과 보건의료 등 핵심적인 노동자들을 대표해 만든 단체다. 1990년대 민주노총이라는 네 글자가 주는 자부심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뿌듯함’ 그 자체였다.”

이런 조합원들을 보듬고 민주노총은 1997년 대통령 후보를 냈다.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국민승리21’ 후보로 15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초라한 결과를 낳았다. 이후 민주노총은 ‘노동자를 위한 정당’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1999년 8월29일 서울 여의도에서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진보 정당의 주역들이 이날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었고, 민주노총은 그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3월20일 경기도 과천 시민회관에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지만 정족수 부족으로 위원장을 선출하지 못했다. ⓒ 연합뉴스
이갑용의 선전과 주류 조직의 패배

2013년 3월20일 과천 시민회관. 민주노총이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임원을 선출한 이날, 또 다른 의미에서 민주노총의 역사가 쓰였다. 위원장과 사무총장 러닝메이트제로 치러진 1차 투표에서 기호 1번 이갑용-강진수 후보조는 투표에 참가한 대의원 570명 중 272표(47.7%)를 얻어 기호 2번 백석근-전병덕 후보조(258표, 45.3%)를 근소하게 눌렀다. 백 후보조가 승리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이 빗나간 결과였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후보조가 없었기 때문에 다득표를 한 1번 후보조에 대한 찬반 투표가 이뤄져야 했다. 하지만 2차 투표에 필요한 정족수가 모자라 결국 찬반 투표는 진행되지 못했다. 찬반 투표를 앞두고 대의원들이 눈에 띄게 빠져나갔고, 남아 있는 대의원 수가 268명에 불과해 의결 정족수인 460명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다. 1차 투표 최다 득표자인 이갑용 후보조에 대해 찬반 투표조차 진행되지 못한 것은 민주노총 새 위원장을 선출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민주노총에서 없었던 일이다.

이날은 두 가지 면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했다. 우선 위원장을 뽑지 못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2차 투표가 무산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천 현장에 있었던 한 노조 간부는 2차 투표에 참석하지 않은 일부 대의원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애초 백석근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던 ‘전국회의’ 쪽 대의원들이 이갑용 후보에게 투표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2차 투표에 정족수가 부족했던 것은 1차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은 백석근 후보 지지자들이 멋대로 빠져나갔기 때문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놀라운 일은 이갑용 후보의 다득표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할 만큼 의외의 결과다.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노총 안에서 조직세가 강한 전국회의의 선택이 중요했다. 후보자를 내지 않은 대신 백석근 후보를 지지하면서 저울추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많았다.

이날 선거에서 이갑용 후보는 ‘조직’을 이겼다. 이는 대의원들이 이제는 지난 10년간 주류가 장악했던 민주노총을 불편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과천에서 마이크를 잡고 최종 유세를 시작한 이갑용 후보는 이전 집행부들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를 두고 ‘상(上)네거티브’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후보는 민주노총이 지난해에 취한 정치 세력화 방향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요구했다. “민주당과의 (공조에) 면죄부를 준 그 사람들과 단절해야 하며,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울산 지역 민주노총 대의원은 “현장에서는 선거 결과에 대해 관심이 없다. 조합원들 가슴속에 민주노총의 자리가 없는데 우리끼리 정파적 이익이나 정치적 계산만 따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노총 중앙의 힘이 아래까지 전파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줄곧 제기되어온 문제다. 하지만 이번만큼 심각한 적은 없다. 민주노총에 대해 주변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해지고 지도부 선출까지 실패한 결과물은 민주노총의 존재감을 더욱 떨어뜨릴 악재다. 그리고 민주노총의 악재는 노동 정치의 악재이기도 하다. 지난해 8월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노동자 정치를 위해 민주노동당과 그 뒤를 이은 통합진보당의 당원과 당비에서 민주노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었지만 그 지분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리고 지난해 18대 대선을 앞두고 지지 후보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서 11월7일 김영훈 전 위원장이 사퇴하면서 지지를 모아줄 후보조차 정할 수 없었다. ‘민주노총이 빠진 대선’은 18대 대선을 바라보는 조합원들의 시선조차 냉소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 3월20일의 위원장 선거까지, 민주노총은 4개월여를 지도력 공백의 빈 수레 상태로 굴러왔다.

진보 정치 중심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아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민주노총에 중요한 나침반이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떤 노동 정치를 할 수 있을까. 당장 선택지가 많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 한국노총을 방문했지만 민주노총과는 거리를 뒀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대선 패배 이후 외부에서 떠밀려온 사회·민주적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좌클릭보다는 중도를 수렴하는 과정을 걷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과는 스킨십을 해도 지금의 민주노총은 민주당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특히 강성의 ‘이갑용’을 선택한 민주노총 내부 기류 또한 민주당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다.

민주노총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다시 진보 정치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먼저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진보 정당이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진보신당 등 여러 갈래인 상황에서 제3당의 영광을 누렸던 과거처럼 영향력을 찾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체 진보 좌파 세력을 하나로 모으는 데 새 지도부가 들어설 민주노총도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도부조차 선출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은 현재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3월26일 사상 초유의 지도부 선출이 무산된 사건의 해결책을 모으기 위한 논의가 진행됐다.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기존에 출마했던 이갑용-강진수 선대본부와 백석근-전병덕 선대본부를 놓고 재투표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다수 득표자인 이갑용 후보측이 반발하면서 또다시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논란이 거세지는 국면이다.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민주노총의 두 위원장 후보는 “민주노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풀릴 리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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