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서 보는 평양은 ‘악마의 소굴’
  • 김동현│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연구교수 ()
  • 승인 2013.04.0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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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가, 대북 정책 갈수록 강경…한국 역할론 증대

북한과 미국이 서로 경쟁하듯 초강경을 치닫고 있다. 마치 퇴로를 차단한 느낌이다. 특히 북한의 호전적 공세가 예사롭지 않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2094호) 채택을 며칠 앞둔 3월5일, 북한은 정전협정 파기를 선언하고 “임의 시기, 임의 대상에 대해 제한 없이 마음먹은 대로 정밀 타격을 가할 것”(인민군최고사령부 김영철 대장의 발표)이라고 협박했다. 이를 기점으로 3월26일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27일 남북 간 군사통신선 차단에 이르기까지 위협 수준을 한껏 높이고 있다.

북한의 호전적 협박의 절정은, 핵무기 선제타격으로 서울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미 연합 ‘키 리졸브’와 ‘독수리 훈련’ 기간이 겹치면서 더욱 극렬해지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에서 핵전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유엔 안보이사회에 통보했다. 핵전쟁이 나면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3월23일 조선인민군 제1973군부대 관하 2대대를 시찰했다. 이 부대는 서울 침투 등 후방 교란이 임무인 것으로 알려졌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
미국 “북한의 국지 도발 가능성 커”

북한은 과거에도 구두 위협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지만, 강도나 빈도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미 양국이 우려할 수밖에 없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한국은 도발 억지력 강화 차원에서, 북한이 다시 도발해올 경우 “도발의 원점, 지원 세력과 지휘 세력까지 보복 타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정승조 합참의장은 북의 핵무기 사용 움직임이 파악되면 선제공격을 가하는 것이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라고 했다. 3월22일에는 한·미 양국이 ‘공동 국지 도발 대비 계획’에 서명했다.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서해 도서에 대한 포격, 군사분계선에서의 충돌,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 등 각종 도발 유형에 대비해 1차적으로 한국군이 타격을 가하고, 확전 시 미군이 지원을 하는 방안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한국의 과잉 대응이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를 우려한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한이 아직까지 미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정보국장은 3월12일 상원정보위원회에 출석해서 “확실치는 않지만 북한은 정권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기 전에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면 자살 행위가 될 것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함부로 도발하지 못할 것이라 믿는다. 미국의 확장된 핵우산 억지력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남한에 대한 국지적 도발 위협은 실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극단적인 자살 심리를 고려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지난해 ‘2·29 합의’가 파기된 이후 북한에 대한 워싱턴 정가의 입장은 더욱 강경해졌다. 지난 3월7일 글렌 데이비스 특사의 상원외교위 증언과 3월11일 토마스 도닐론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뉴욕 연설 등을 종합해볼 때 미국은 △북한을 절대로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협박에 굴하지 않으며 △나쁜 행동을 보상하지 않고 △대화를 위한 대화에는 관심이 없고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한국을 보호할 것이며 △미국이 한·일 동맹국과 중국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추구하고 △제제를 통해 핵 및 미사일 개발과 확산을 둔화시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강경 기류를 보이는 데는 변하지 않는 북한의 호전적 행동이 1차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북한을 혐오하는 미국의 정치 풍토를 들 수 있다. 워싱턴에서 평양을 좋아하는 미국인은 찾아볼 수 없다. 3월4일 서울을 방문한 도널드 그렉 전 주한 미국 대사는 “북한은 미국에서 조직적으로 악마시되고 있다(Institutionally Demonized)”고 말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믿는 공화당 의회는 오바마 행정부가 유화적인 대화 정책을 펴는 것에 반대한다.

의회의 반대로 오바마 2기 행정부의 입지도 좁아졌다. 오바마는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압력도 받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압력과 제재를 통해 핵 확산을 차단하는 한편, 대화 창구를 그나마 닫지 않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다만 대화를 하려면 북한이 먼저 비핵화에 대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지금 미국의 입장이다.

지금 당장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 한·미 양국의 우선 과제다. 확실한 것은 한·미 동맹과 북한 사이에 긴장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의 도발 억지 조치가 거꾸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부추기는 면도 있다. 한 예로 최근 B-52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핵폭탄 투하 훈련은 핵잠수함 훈련 참여와 함께 전략 차원에서 양면성을 노출했다. 한편으로는 한국 보수층에서 제기되고 있는 ‘자체 핵개발론’을 가라앉히고, 북의 핵 사용 가능성에 대한 응징 의지를 보여주는 두 개의 목적을 가겼던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북한이 두려워하는 B-52의 출격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 의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징후가 북한의 반응에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나마 남아 있던 평양 내 협상파들의 입지가 여지없이 무너졌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B-52 폭격기의 등장은 한반도 긴장을 부추겼을 뿐, 국지적 도발 방지에 기여했다는 증거도 보여주지 못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3월7일 백악관에서 척 헤이글 신임 국방장관(왼쪽)과 존 브래넌 신임 중앙정보국장(오른쪽) 지명을 발표하고 있다. ⓒ AP 연합
한·미, 북한에 퇴로 명분 줘야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북한 지도부의 어쩔 수 없는 선택 가능성이다. 이유야 어떻든, 도발을 하겠다고 연일 공언하다가 그대로 수그러질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연일 큰소리만 치고 가만히 있으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체면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의 도발 대비 강화는 불가피하지만, 안보 강화만으로 도발을 방지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북한이 물러설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서 잠깐 말한 것처럼 현재로서는 워싱턴 정가에서도 스스로 대북 강경 정책을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는 듯하다.

미국 내 일부 관리들이 북한과 다시 대화를 시작하려 해도 워싱턴의 정치 여건이 허용치 않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원한다면 오바마 행정부가 나서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핵과 도발은 반대하지만 대화를 통한 신뢰 구축 프로세스를 추구해간다는 정책은 인도적 지원과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은 북한의 일방적 취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불가침 공약을 준수할 것이라고 북에 통보할 수 있다.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신뢰 프로세스에 착수한 다음 평화 프로세스,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지향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고,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선언하는 것도 위험한 안보 위기 국면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류길재 통일부장관의 말처럼 아무리 상황이 심각해도 대화의 길은 모색되어야 한다. 이제 한반도 문제는 한국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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