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하는 못된 버릇이 나라 망치고 있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4.03 13: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을 향한 작가 이문열의 돌직구

서울에서 경기 이천의 부악문원까지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이곳은 현대적 개념의 서원(書院)으로 불린다. 1998년 이문열 작가가 사재를 털어 자신의 집 앞에 세웠는데, 여기서는 문인들의 활발한 창작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3월28일 오후 이천에 이르자 개나리들이 꽃망울을 터뜨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악문원 너른 뜰에도 봄이 자리를 깔아가고 있었다. 이곳의 모든 문은 열려 있었다. 심지어 이 작가가 거주하는 별채의 문조차 잠그지 않은 채였다. 그는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는 대뜸 기자에게 “이슈가 되지도 않는 사람을 자꾸 왜 부르는지 모르겠다. 시사 프로그램에는 일절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부담스럽다. <시사저널>과 약속해놓고 후회하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번 터진 말문은 2시간 30분 동안 쉼 없이 이어졌다. 그는 여야 막론하고 분열을 위한 파당을 만드는 등 정당이 분열의 도구화가 된 것이 아닌가 하며 시국을 걱정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박근혜 정부를 지지했는데 잘해가고 있다고 보나?

내가 누구를 지지했다고 하는데, 왜 누구는 야당을 지지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면서 유독 나를 걸고넘어지는지 모르겠다. 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것을 두고 이른바 ‘문화 권력’이 잠잠해지고 자유로운 상상력이 작동할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제 출범한 지 한 달 된 박근혜 정부를 두고 잘하네, 마네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동안 많은 매체를 통해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말을 하지 않았나?

내가 겪었던 대선이 한 10번 되는데 이번에는 이전보다 절실함이 없었다. 나는 이제 남은 세월에 눈길이 간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엉뚱한 데 몰려다니다가 ‘우물쭈물하다가 그럴 줄 알았다’는 꼴이 될까 걱정되더라. 해왔던 세태나 권력의 행태에 대한 비판에서도 온몸으로 개입할 만한 절실함이 없어졌다. 되도록 관전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한다. 아무튼 박근혜 정부가 국민을 위해 잘하기를 바란다.

정치권이 어지럽다.

못된 버릇으로 자리 잡은 것이 있다. 선거에 진 뒤 승복하기 쉽지는 않지만 불복하는 버릇이 굳어진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야단맞아야 한다. 국민이 뽑아놓은 대통령을 국회가 자르려 드는 것도 불복이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시켜 6개월 동안 반신불수로 만들지 않았나. 이명박 대통령도 광우병 소고기 사태로 집권 초기부터 맥 빠지게 만들었다. 국민이 뽑아 한 달도 안 된 대통령에게 ‘OUT’하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을 또 봐야 하나 그런 걱정이 든다.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걱정된다는 말 같은데, 어떤 문제가 크다고 보는가?

말했듯이 불복이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 큰 문제다. 또 하나, 이 나라 정치가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때문에 뜬금없이 끼어든 ‘직접 민주주의’란 것에 휘둘리는 것이다. 천 년 이상 발전해온 대의제, 즉 간접민주주의가 괄시당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불복의 구조화라는 말이 생소하다.

점점 더 파당화(派黨化)하는 정당 정치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이다. 민주 사회에서의 다당, 복수 정당이라는 것은 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선거나 토론을 통해 결국 하나가 된다고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폭력이나 공포에 의해 복종하게 만들어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나 투표를 통해 승복해서 통합하는 것이 민주 사회의 미덕이다.

복수 정당제에서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갈등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겠지만 ‘분열을 위한 파당’이라는 것이 문제다. 정당이 분열의 도구가 된 것이 걱정스럽다. 무슨 일에서건 견해의 일치를 보는 것이 드물다. 매번 누가 이기나 힘겨루기나 하고 있다. 큰 문제에서는 하나가 되어 있고, 각 사안에 대해 얼마간 분열되어 있는 것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그런데 국제 사회에서 우리를 방어하는 데는 우리 체제가 북한보다 못하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다. 민주화 시대 이후 파당과 분열을 보면서 한국의 현실이 걱정된다.

분열된 모습에서 심각하게 보는 것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것에서도 분열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에 대한 태도 같은 것은 기본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 다르다. 어느 정도 다르다가도 하나로 의견이 모아지기도 하는 것인데, 우리는 자꾸만 간극이 벌어지는 것 같다.

인터넷이나 SNS를 여전히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내가 부정적으로 보는 건 이런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전 국민을 인터넷 광장에 모을 수 있다. 의사 결정 사항을 확인할 수도 있다. 국민투표도 1분 내에 할 수 있다. 인터넷 시대의 광장 확대 능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국가의 중대한 문제를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모아 결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내가 인터넷 문화를 싸잡아 욕한다고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인터넷 광장, 이 새로운 광장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법의식도 굉장히 애매해졌다. 내가 유심히 보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들어가 보았다는 말인가?

안 본다. 자해 행위를 내가 왜 하나?(웃음)

ⓒ 시사저널 최준필
인터넷 문화를 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내가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당한 피해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 위헌 판결이 났지만 익명을 보호하는 것을 나는 반대한다. 이 익명이라는 것이 흉기가 되어 사람을 해치고 어떤 일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 한 모퉁이의 자유, 익명으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키겠다고 많은 이를 죽게 만드는 것을 왜 내버려둬야 하는지 의문이다. 지금의 법 논리가 유감스럽다. 이 땅에 인터넷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났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 사람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만드는데, 이제는 현실적으로 규제를 해야 된다고 본다.

‘문화 권력’에 왜 그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나?

지금 한국의 지식인은 옛날의 나치나 볼셰비키처럼 억압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지하 시인이 문단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을 일컬어 쑥부쟁이라고 말했는데, 나도 그런 논리로 말하는 것이다. 쑥부쟁이가 문단의 길을 딱 가로막고 있는데, 어린 작가들이 문단에 들어가 눈치를 안 보고 어떻게 하겠나.

작가라면 현실에 참여해 약자를 대변하고 그 편을 드는 것이 양심적이지 않은가.

정말 그렇다면 인정을 하겠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이라서 못마땅한 것이다. 내가 정치에 간여했다고 하는 것도 국회의원 예비후보 추천하는 일을 70여 일 한 것뿐인데, 그것도 15명 중에 한 명으로 참여한 것인데, 그걸 직접 정치에 뛰어든 것처럼 몰아세우고 인터넷 도구 등을 빌려 나를 그렇게 규정해버렸다. 또 그걸 가지고 확대 재생산했다는 것에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또 얘기를 하자면 악다구니 쓰는 꼴로 보일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어쨌든 한쪽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몰매를 맞았다.

한국 문화를 지배하는 권위주의, 문화 권력은 정말 촘촘하고 거대하다. 작가에 대해 생사여탈을 쥘 수 있는 권력이다. 그래도 내가 희망을 갖는 것은, 문화 권력이 자신들의 힘이 계속 통용될 것이라고 믿었을 텐데 이번 대선에서 뜨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 선거에서 압승을 한 적도 없었기에 자성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유로운 상상력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나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 같은 자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좀 자유로워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양비론을 편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양비·양시를 하다가 역사에 대해 허무주의를 가진 작가로 비쳤는데, 이후 나를 적대적으로 보기 시작하는 무리가 생겨났다. 적대감이라는 것이 극대화되는 시기가 오면 싸움 구경을 하던 사람까지 적대시하게 된다. 그때 양비론자가 공격당하는 것인데, 내가 공격당하기 시작한 시기가 진보 진영이 힘을 얻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으로, 중간 지점이 공격을 받을 때였다.

1980년대를 다룬 소설을 집필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어떤 소설인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중 많은 부분이 1980년대에 시작된 일에서 이어지는 것들이 많아서 구상했다. 인과 관계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도 있고, 금기시하고 있는 것이나 일방적으로 해석을 끝내버린 것들을 드러내 전체적으로 해석해내는 작업도 해볼 생각이다.

어느 편에 서서 쓸 것인가, 아니면 전지적 작가 시점인가?

소설 속 관찰자가 작가다. 처음부터 의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기록으로 충실하게 쓰려 한다.

세대를 불문하고 참 막막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고전적인 시대에는 예측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많이 없다. 변화의 본질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예측이 안 되는 것은 지식의 폭발과도 관계가 있다. 정보량이 많으니 변수가 너무도 많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다. 19세기 말까지의 정보량을 1이라고 했을 때, 20세기 들어 50년 만에 2가 되었고, 다시 20년 만에 4, 또다시 15년 만에 8로 폭증했다고 한다. 요즘처럼 예측에 자신이 없는 때가 어디 있나 싶을 정도다. 예측할 수 없으니 충고도 못 하겠다.

 

이문열 작가는 인터뷰를 끝내고 부악문원 정원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가리키면서 “손가락만 한 것을 가져다 심은 것이 저렇게 컸다. 28년이 넘었다”며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이틀이면 읽을 책 한 권을 일주일째 붙들고 있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그가 한 말처럼 나이 들어 총기가 떨어지고 해서 얼마 남지 않은 세월에 눈길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