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꺼진 땅값, 아베가 들어올리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4.03 14: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공시지가 하락률 주춤…“경기부양책 따른 일시적 현상” 분석도

“드디어 바닥을 보았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추락을 거듭했던 일본 지가(地價) 하락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침체’라는 단어가 익숙했던 일본에서 경기가 살아나는 증거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주요 신문들은 ‘부동산 경기가 상승할 것’을 기정사실로 보도하고 있다.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대도시뿐 아니라 지방까지 땅값 하락률이 낮아지거나 멈췄다.

해외 투자자들도 일본 부동산에 관심

일본 도쿄 도심의 빌딩 건설 현장. 부동산 시장이 깨어나면서 도쿄 일대에 초고층 빌딩들이 올라가고 있다. © AP 연합
부동산 경기가 기지개를 펴는 모습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쿄 역 주변에는 요즘 새로운 초고층 빌딩 건설이 한창이다.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에는 아파트·상가, 건물 임대 광고 전단지가 신문 두께만큼이나 두껍다.

3월21일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2013년 1월1일 기준 공시지가는 지난해에 비해 전국 평균 1.8% 하락했다. 5년 연속 하락 폭이 감소했다. 공시지가를 발표한 3월21일은 공교롭게도 금융 정책 완화를 주장하는 구루다 하로히코가 일본은행 총재로 임명된 날이었다. 공시지가 하락은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아베 총리의 금융 정책 완화와 엔저 정책이 부동산 시장에서도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땅값이 회복되고 자산이 증가하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이른바 선순환 효과를 예상하는 이도 적지 않다.

도심부와 도심에 접근하기가 좋은 지역에는 회복 기미가 눈에 띌 정도다. 지난해 5월 개장한 도쿄의 관광 명소인 스카이트리 전망대(634m) 효과로 인근 아사쿠사 지역은 도쿄 도 내 상업지 중에서 9.0%나 땅값이 올라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아사쿠사는 수년 전만 해도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빠져나갔던 곳이다.

도심에 위치한 주택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지반이 강해 지진에 안전한 지역으로 알려진 도쿄 도 에도가와 구 도요스 지역은 주택지로 인기가 높아 땅값이 오르고 있다. 원래 도심 지역은 주거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작은 상점이 여러 군데 생기면서 편의성이 커지자 고령자나 단독 세대가 거주하기 편리한 지역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도심부 주택 수요가 증가하는 이면에는 저금리, 주택론에 대한 감세가 한몫하고 있다. 게다가 내년부터 인상되는 소비세를 피하려는 가수요도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다.

도심을 살짝 벗어난 주변부 땅값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도쿄 남쪽에 위치한 가와사키는 도쿄와 전철로 30~40분 거리다. 요즘 가와사키 역 주변에선 재개발이 한창이다. 이 지역 땅값 상승률은 11.9%로, 상업용지로는 전국 최고다.

엔저로 인한 해외의 관심도 땅값 상승 이유 중 하나다. 과거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40년간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는 이시야마 가즈오 도와하우징 대표는 “실제로 아시아의 부유층 사이에 일본 건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가루이자와 같은 휴양지에 투자해 건물을 지으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아베노믹스로 디플레이션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부동산에 돈이 돌게 하는 원동력이다. 공시지가를 발표한 다음 날인 3월22일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부동산투자신탁(REIT)의 시가총액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부동산신탁에 자금이 유입된 징후는 개발 붐이 일었던 2007년이 마지막이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로 신탁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갔다. 최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다시 유입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일본 부동산 투자에 대한 외국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도시 주변을 넘어 지방의 토지 가격도 상승하는 추세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던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복구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피해 지역인 3개 현을 중심으로 25만~30만개 정도의 신축 주택이 들어설 예정인데, 주택지의 토지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미야기 현은 1.4% 상승했는데 현 내 이시노마키 시는 상승률이 20%를 넘어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 전체 땅값 상승률 상위 10개 지역에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 지역이 8곳이나 이름을 올려 이 지역 경기가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센다이 시의 경우 2011년 대지진과 쓰나미 이후 비어 있는 건물들이 많아 미야기 현청과 센다이 시 투자 유치 담당자들이 미국·유럽 등을 돌며 투자 유치 활동을 해온 곳이다. 한자와 타이이치 미야기 현 투자 담당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1~2개 기업과 구체적으로 접촉했다. 비어 있는 건물의 경우 일체의 리폼 비용을 현에서 지원해주는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금세 달라졌다. 지금 센다이에서는 중고 아파트조차 구하기 어렵고 임대 건물 역시 거의 만실 상태다.

지진 예상 지역은 땅값 하락 심해

후쿠시마 현의 이와키 시는 쓰나미 피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내륙 쪽으로 이동하면서 수요가 늘어나 토지 가격이 상승한 곳이다. 본격적인 복구 사업이 진행되면서 최근 상업용 건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후쿠시마 현 관계자는 “대지진 피해를 입은 동북 지역 부동산 시장은 최소 7~8년 이상 활황을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원전 사고 지역 중 경계 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여전히 토지 수요가 거의 없어 10% 이상 하락했다. 또, 거대 지진이 예상되는 도쿄 남쪽 고지·도쿠시마·와카야마 현 등은 지가 하락이 심각하다. 전체적으로는 상승했지만 자연재해 발생이 토지 가격 양극화 현상을 가져온 상황이다.

초고층 빌딩들이 다시 올라가고 있지만 일본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시점에서 유령 건물이 증가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락 폭이 줄었을 뿐 실제 땅값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 1.8%를 기록했다. 주택지, 상업지, 공업지는 각각 1.6%, 2.1%, 2.2% 하락했다. 게다가 땅값이 오른 만큼 임대료는 상승하지 않고 있다. 경기가 호전돼 임대료가 오르지 않게 되면 부동산에 투자한 자금이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금융 정책 완화와 추경 예산으로 달라진 경제 흐름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구조 개혁을 통해 성장 기반이 단단해지지 않는 한 땅값 상승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