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학병원장이 제약회사 사외이사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4.0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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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명과학·한올바이오파마 등…시민단체들, 도덕적 해이라고 비판

현직 병원장과 의사가 제약회사 사외이사로 활동 중인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이들은 모두 제약사의 이사회 구성원으로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등기이사다. 수십 년 동안 제약사와 의사가 주고받는 뒷돈(리베이트) 관행이 당국의 근절 의지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사외이사제를 이용해 병원과 제약사가 유착한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시사저널>은 제약업계 상위 10위권에 있는 제약사를 중심으로 사외이사 현황을 살폈다. 제약사가 최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최근 사업보고서 등을 조사한 결과, 주요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병원장 및 의사가 제약사의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 중에는 대학의료원 원장급도 포함돼 있다.

이철 연세의료원 원장은 LG생명과학 등기 사외이사로 돼 있다. 임기는 2014년 3월까지다. 세브란스병원 원장을 지낸 이 원장은 현재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대한기독병원협회 기독병원경영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LG생명과학 관계자는 “이 원장은 2011년부터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겸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제약사 “의사 자문 필요했다”

서울대 약대의 한 교수는 LG생명과학의 사외이사로 있다가 3월15일 계약이 만료돼 퇴임했다. 그 교수는 과거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 자리에는 양세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교수가 들어갔다. 2016년 3월까지가 임기인 양 교수는 대한소아내분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과거 의사의 제약사 사외이사 문제는 의대와 병원의 심의를 거쳐 결정됐다”면서 “양 교수의 LG생명과학 사외이사 건도 현재 의대에서 심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심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정남식 세브란스병원 원장은 2008년 한올바이오파마 사외이사로 있다가 2009년 임기 만료로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사직 자리를 고려대 의대 교수가 2010년까지, 서울대병원 교수가 2011년까지 각각 물려받았다. 이후 세브란스병원 교수가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3월22일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육종인 세브란스병원 구강병리학과 교수가 2016년 3월까지의 임기로 그 자리에 들어갔다. 의사들이 사외이사 자리를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한올바이오파마 관계자는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 전문의의 조언이 필요했다”고 의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이유를 밝혔다.

대학병원 관계자도 “제약사에 의사의 전문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순기능도 있어서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 측면도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로서의 조언과 사외이사의 역할은 분리돼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의대 교수는 “제약사가 신약 개발 등에 의사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해서 반드시 사외이사, 그것도 등기임원으로 선임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했다.

지훈상 분당차병원 원장은 유한양행 사외이사로 있다. 그는 연세의료원장, 대한병원협회장 출신이며 현재 차의과대학 의무부총장이기도 하다. 분당차병원 관계자는 “몇 해 전부터 유한양행 사외이사로 있다”면서 “원장이 출타 중이므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홍준표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과장 교수는 대웅제약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심우영 강동경희대병원 피부과 과장 교수는 동화약품 사외이사로 있다.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는 이종구심장크리닉의 이종구 원장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이 원장은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에 자문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영길 강남차병원 명예병원장은 일동제약 사외이사다. 내분비내과 전문의인 최 병원장은 경희의료원 원장, 대한노화방지의학회 회장, 강남차병원 원장을 지냈다. 1999년에는 다른 제약사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던 그는, 현재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 고문이다. 김일순 연세의대 명예교수도 제약사인 대웅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의대 교수, 학장, 병원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특정 분야에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위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대 명예교수의 제약사 사외이사 재임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고위층 출신도 제약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병원과 제약사 비리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다. 윤성태 전 보건복지부 차관(재임 기간 1989~92년)은 녹십자의 사외이사다. 이종윤 전 보건복지부 차관(재임 기간 1999~2000년)은 11년 이상 종근당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이 전 차관은 이 회사 주식(349주)도 보유하고 있다. 오대규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도 이 회사의 사외이사로 있다.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국장과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그도 종근당 주식(4397주)을 보유하고 있다.

사외이사란, 대주주와 관련 없는 사람이 그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해 대주주나 경영자의 독단과 부실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1998년 상장회사에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했다. 그러나 병원과 제약사라는 특수 관계를 고려할 때 현직 의사가 제약사의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더라도 의사가 특정 제약사의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은 누가 봐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정부가) 깊이 들여다보고 시정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시사저널>은 제약사의 사외이사로 있는 의사와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학병원측은  한결같이 ‘할 말이 없다’ ‘제약사에 전문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사외이사로서 활동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제약사 관계자나 동료 의사의 시각은 달랐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등기임원으로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외이사 특성상 회의 출석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의사와 제약사 사이의 리베이트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민감한 시기에 의사가 제약사의 사외이사로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수억 원 상당의 주식 보유한 이도

약대 학장 출신인 현직 교수를 사외이사로 둔 제약사도 있다. 이에 대해 한 제약사 관계자는 “약대 교수가 제약사에 사외이사로 있는 것도 개운치 않은데, 현직 의사가 제약사에 한 식구로 있다는 것은 불편한 사실”이라며 “정부가 아무리 리베이트 문제를 감시해도 의사와 제약사에 이와 같은 유착이 있는 이상 리베이트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장이나 의사가 사외이사로 있을 경우 해당 제약사가 그 병원에 리베이트를 주고 약품을 납품해도 막을 길이 없다는 얘기다. 의사와 제약사 간 공고한 유착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민들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민단체 대표는 “제약사는 그 의사에게 보수를 많이 주고 그에 합당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며 “보수만큼의 책임을 느낀 의사들이 제약사에 쓴소리를 할 수 없으리란 것은 상식에 속한다”고 리베이트 관행이 뿌리 뽑히지 않는 까닭을 설명했다.

제약사가 사외이사로 영입한 의사는 일반 동네 병·의원 의사가 아니라 의대 교수급이다. 그것도 의료원장, 병원장 등 병원에서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정 학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제약사가 그런 의사들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이유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제약사가 이들에게 합법적으로 대가를 지급하고 약품 공급과 관련해 경쟁사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한 것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사외이사로 선임된 의사는 제약사로부터 얼마나 받을까. 제약사의 정기총회 등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집행된 금액을 살펴봤다. 제약사의 내규와 사외이사로 있는 의사의 직급에 따라 보수가 정해진다. 한 명당 적게는 연 24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을 받았다. 또 수억 원대의 주식을 소유한 의사도 있다. 의료원장급과 병원장급은 연 5000만~6000만원, 고위 공직자 출신은 연 6500만원 이상, 대학병원 과장급 의사는 연 30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제약사는 한 대학병원 과장급 교수에게 2억8000만원 상당의 주식 3만주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비상근 임원이라서 그 의사에게 연간 1억원가량의 보수를 지급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것”이라고 말해 비공식 거래가 있음을 시사했다.

제약사가 현직 거물급 의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은 ‘보험’ 성격이 짙다. 제약사는 약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조직이므로 약을 처방하는 의사와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제약사들이 사외이사 자리에 급이 높은 의사를 앉히려는 이유다.

정부는 2010년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쌍벌제까지 도입했다. 리베이트 쌍벌제는 수십 년간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만 처벌하던 관행을 깨고 경제적 이득을 본 병원이나 의사도 처벌하는 제도다. 2011년에는 검찰을 중심으로 한 정부합동의약품 리베이트 전담수사반도 만들었다.

정부의 노력에도 리베이트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감사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경찰, 국세청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1조1418억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병원·의사·약사에게 제공한 제약사와 도매상을 적발했다. 리베이트 형태도 현금과 신용카드에서 제약사 교육 강연료, 고급 수입 시계, 가전제품 등으로 교묘해졌다.

의사-제약사 유착이 리베이트 ‘뿌리’

지난해 10월에는 사상 최대 리베이트 사건이 발생했다. 48억원대 리베이트를 의사 등에게 뿌린 혐의를 잡은 전담수사반이 동아제약 본사를 압수수색했고, 그 결과 1400명의 의사가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에 현직 의사 119명은 사법 처리됐다. 이들은 모두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2010년부터 2011년까지) 동아제약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았다. 리베이트 쌍벌제 이전에 리베이트를 받은 나머지 1300명의 의사는 보건복지부가 추가 검토한 후 2개월 자격정지 행정 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전담수사반이 2년 여 동안 기소한 인원은 208명, 자격정지를 통지한 인원은 6100명에 달한다. 정부는 최근 전담수사반 활동을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여전히 리베이트 비리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올 4월부터 처벌 강도를 높였다. 앞으로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가중처분 적용 기간을 제공자·수수자 모두 기존 1년에서 5년으로 연장했다. 또 의·약사로 대표되는 리베이트 수수자의 자격정지 기간을 리베이트 수수액과 연동하고 반복 위반 시에는 가중 처벌을 한다.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초법적인 리베이트 행정 처분 강화안을 단호히 거부한다”며 “처벌만 강조하지 말고 현 리베이트 쌍벌제의 모호한 규정 등 문제점부터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또 “현 정부는 쌍벌제 이전 리베이트 수수 의사들에게 근거 없이 행정 처분을 내리고 있다”며 “이는 억울하면 소송하라는 식의 전형적인 공권력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전국의사총연합은 헌법소원, 해당 법안의 집행정지 가처분신청,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한 피해보상 소송 등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환자 치료를 우선 생각해야 할 의사가 제약사의 눈치를 보게 된 상황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리베이트를 주는 제약사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급기야 올해 초 시민단체인 의약품리베이트감시운동본부가 일부 제약사를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값으로 부담한 돈이 리베이트로 쓰인 만큼 그 금액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 단체측은 “공정위가 2007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는 매출액의 20%를 리베이트로 사용한다”면서 “소비자(국민·국민건강보험공단·지방자치단체)의 손해액은 연간 2조18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의사와 제약사의 유착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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