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권력이 김학의 밀자 여기저기서 집중 ‘견제’
  • 김현일 대기자·조해수 기자 ()
  • 승인 2013.04.0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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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인선 둘러싼 검찰 내 120일 암투 전말

“(박근혜 당선인 쪽에서) 마음에 둔 사람이 있습니까?”

“김학의 고검장이 어떨지… 그쪽(청와대)에서는 어때요?”

“채(동욱) 고검장이 괜찮을 듯싶은데….”

“그래요? 그런데… 그게 아닌데… 채 고검장은 대야(對野) 카드라….”

“알겠습니다. 김 고검장이라….”

 

지난 1월 ‘청와대(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당선인’측 핵심 인사 간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공석 중인 새 검찰총장 인선을 놓고 신·구 정권은 조심스레 탐색전을 펼쳤다. 당초 박근혜 대통령측이 채동욱 검찰총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소문은 여기서 기인한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측은 애초 2011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헌재로 자리를 옮긴 안창호 헌법재판관을 ‘생각’했으나 “헌법기관을 무시하는 행태”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김학의 전 차관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선 ‘헌법기관 무시’ 시비 자체가 안 재판관을 견제하려는 특정 지역의 ‘작전’이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쨌든 신·구 정부의 권력 교체기에 요직 인사가 진행되면서 갖가지 음모와 술수가 난무했다. 잡음도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왼쪽, ⓒ 연합뉴스)이 지난 4월4일 제39대 총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당초 박근혜정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오른쪽, ⓒ 뉴스뱅크 이미지)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MB는 채동욱, 박근혜는 김학의 밀어

지난해 12월 대선을 전후해 가장 심하게 요동친 기관은 검찰이었다. 검사들의 잇단 비리에 이어 대선 직전에 터진 ‘검란(檢亂)’이 결정타였다. 검찰총장(한상대)을 후배 검사들이 정면으로 치받고, 검찰총장과 그 지휘를 받는 중수부장(최재경)이 주먹다짐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의 일그러진 모습은 말 그대로 난(亂)이었다. 이 민감한 시기에 검찰총장이 처참하게 낙마하면서 상황은 더욱 꼬였다. 한상대 총장 당시의 채동욱 대검 차장과 김진태 서울고검장이 자리를 맞바꾸고, 최재경 중수부장과 김경수 전주지검장을 맞바꾸는 미봉 상태를 새 정부 출범 때까지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MB(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당선인측과 검찰 정상화를 서두르기로 합의한 것은 당연하다. 정상화의 첫걸음은 공석 중인 검찰총장 인선이었다.

가뜩이나 고약한 변수가 꽉 찬 상황에서 진행된 검찰총장 인선은 MB의 청와대가 전에 없던 검찰총장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를 구성하면서 더욱 꼬였다. 일각에선 아예 추천위를 태동시킨 자체를 음모론적 시각에서 말하기도 한다. MB 정부가 ‘새 정부 쪽에서 천거한 김 아무개’를 자연스럽게 밀어내기 위한 수순으로 읽는 것이다. 민간인이 포함된 추천위가 특정인을 추천하지 않으면 달리 어찌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측이 호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해선 ‘딱 떨어지게 시비할 거리’가 상당히 알려져 있었다는 점에서 그런 결과(김 전 차관이 최종 후보군에서 제외되는)를 예측했고, 따라서 다분히 의도적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 ‘딱 떨어지게 시비할 거리’란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별장 성접대 스캔들’인데, 이런 이유를 들어 이 스캔들이 확대된 것도 검·경 대립의 소산이 아니라 검·검 대립, 즉 검찰 내부 암투 결과라는 것이다.

별장 성접대 사건, ‘검·경’  아닌 ‘검·검’ 갈등

지난 2월7일 열린 추천위에선 이런 예측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추천위는 채동욱 당시 서울고검장(사법연수원 14기), 김진태 당시 대검차장(14기), 소병철 대구고검장(15기) 3인을 후보로 천거했다. 당초 법무부가 추천한 인사는 안창호 헌법재판관(14기), 김학의 당시 대전고검장(14기), 채동욱 당시 고검장이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국회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은 “법무부 추천 3인 중 채동욱 고검장은 MB 정부가 선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 쪽에서는 김학의 고검장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야당 인사들까지 꿰고 있을 만큼 검찰총장 인선의 ‘판’은 뻔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추천위원들이 법무부가 제시한 원안에 반발하고 나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틀어졌다. 추천위가 ‘거수기’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추천위원들은 표결을 진행한 끝에 과반수 득표를 얻은 김진태 당시 차장과 채동욱 당시 고검장을 가장 먼저 최종 후보자로 올렸다. 다음 2차 표결 때 소병철 고검장이 남은 한 자리 후보로 추천됐다. 박근혜 정부가 밀고 있던 김학의 전 차관이 탈락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 전 차관을 강력 추천한 사람이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라고 들었다.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그룹 ‘7인회’의 핵심 멤버로 알려질 정도로 박 대통령과 아주 특별한 사이인 김 전 장관은 검찰 인사와 사법 개혁 부문에서 절대적인 존재다. 친박계 경기고 출신들도 동문인 김 전 차관을 민 것으로 알고 있다. 김 전 차관이 최종 후보 3인에 들었다면, 검찰총장은 떼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의 회고다.

김학의 전 차관이 최종 후보 대열에서 낙마하면서 상황은 더욱 험하게 헝클어졌다. MB 정부의 권재진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 임명 유보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박근혜 정부의 신임 법무부장관 취임 이후 검찰총장 임명 제청이 이뤄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런 와중에 박근혜 정부가 추천위를 다시 열어 후보군을 새롭게 선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새로운 후보란 당연히 김 전 차관을 의미했다. “믿기지 않지만 최종 후보 3인이 결정된 후에도 김 전 차관이 결국 검찰총장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왔다. 새 정부의 첫 검찰총장은 전 정부와 야권의 비리 수사를 주도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청와대와의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다. 결국 청와대가 원하는 사람이 총장에 임명되게 마련이다”라는 얘기가 정치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하지만 여론의 비난에 부딪히면서 후보 교체가 불가능해지자 박근혜 정부는 김 전 차관을 법무부 차관에 임명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변함없는 신임을 재확인시킨 셈이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도 감당키 어려운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김 전 차관이 별장 성접대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김 전 차관 개인도 개인이려니와 검찰 전체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사안인 만큼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갈등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사건을 처음 접수한 경찰이 새 정부 첫 검찰총장으로까지 거론되던 검찰 고위 간부의 성상납 문제를 터뜨려 검찰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검·경 갈등 이전에 검·검 갈등이며, 야당까지 한데 어우러진 한 편의 대하드라마로 이해하기도 한다. 경찰의 ‘은근한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검찰총장 자리를 둘러싼 검찰 ‘내부 전쟁’ 측면이 더 컸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검찰총장 후보로 국회 인사청문을 요청한 채동욱 후보자에게 야당 의원들의 이례적 칭찬이 쏟아진 것도 그 반증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말 검란의 당사자였던 한상대 전 총장(왼쪽, ⓒ 연합뉴스). 최재경 대구지검장(전 중수부장)(오른쪽, ⓒ 시사저널 임준선).
민주당의 적극 지지 받은 채동욱 총장

신임 검찰총장 인선과 관련한 야당의 움직임은 아주 시사적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채동욱 검찰총장 카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무난한 국회 청문회 통과’였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국회는 4월3일 채 총장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여야 합의로 채택했다. 여야 모두 ‘적격’ 판정을 내렸다. 지난 18대 국회 이래 법사위에서 실시된 검찰총장 또는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민주당이 ‘적격’ 의견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문회에서 야당은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보다 채 총장을 오히려 더 ‘위무 격려’했다. “캐면 캘수록 좋은 소리만 들린다”는 식의 찬사까지 이어졌다. 청문회가 아닌 ‘칭찬회’였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런 것들이 얽히고설킨 상황에서 한상대 전 총장과 관련한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언급은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박 의원은 4월2일 채 총장 인사청문회에서 “한 전 총장이 지난 연말 검란 당시 자신의 자리 보전을 위해 부하인 검찰 주요 간부의 비리를 야당에 제보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검찰 주요 간부란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현 대구지검장)을 가리킨다. 한 전 총장의 불명예 퇴임과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 및 채동욱 당시 대검차장의 좌천으로 봉합했던 ‘검란’에 모종의 음모가 개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 체류 중인 한 전 총장은 박 의원의 발언을 전해 듣고 “해괴한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박 의원은 같은 날 오후 회의에서 한 전 총장이 부인한 사실까지 다시 거론하며 한 전 총장 덕에 상당한 검찰 비리를 확보했음을 암시했다. 한 전 총장은 김학의 전 차관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청와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던 김 전 차관의 낙마, 검란 당시 대검차장으로 검란에 책임이 있다고 여겼던 채동욱 총장의 막판 뒤집기 승리, 여러모로 유리할 것으로 전해졌던 김진태 대검차장의 낙마 등등 지난해 검란 이후 서초동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친박계 한 의원은 “채 총장은 박 대통령의 마음속에 있었던 인물은 아니었다. 원래는 검란 이후 검찰 조직을 무난하게 추스른 김진태 차장이 (박 대통령 마음속에) 가까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결국 박 대통령이 김 차장 대신 채 총장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이 의원은 “김 차장의 아들이 사구체신염으로 군 면제를 받는 등으로 청문회가 또 시끄러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가뜩이나 인사 시비로 곤욕을 치른 박근혜 정부가 더 이상의 낙마를 피하기 위해 채 총장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단지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가 최근 일각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검찰과 악연이 깊은 박지원 의원의 멘트는 강한 여진을 남기고 있다. 그의 말은 평소 유감이 많았던 한 전 총장을 단순히 흠집 내는 수준을 뛰어넘어 “나에게 검찰의 급소를 찌를 (전 검찰총장이 준) 정보가 있다. 그러니 조심하라”는 대정부 경고로 봐도 무방할 것이란 얘기가 그것이다. 중수부 폐지 등 내부적인 난제 해결 외에도 ‘채동욱 총장 체제 검찰’의 행로가 조용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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