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역시 땅에 묻는 게 최고야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3.04.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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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재산 증가 최고 효자는 ‘부동산’

“재산 등록을 할 때가 되면 마누라가 어디 숨겨둔 거라도 나왔으면 하는데 막상 아무것도 없으면 오히려 허탈하다니까요.”(국회 4급 서기관 ㄱ씨)

선출직이나 4급 이상 공무원, 경찰·소방·국세·관세·감사원 등 특정 분야 7급 이상 공무원 18만8000명이 2월28일까지 재산 등록을 모두 마쳤다. 3월29일 국회·대법원·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관보를 통해 이 중 고위직 2387명을 추려 재산 변동 신고 명세(2012년 12월31일 기준)를 공개했다.

이를 통해 본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들의 2012년 재테크 성적표는 ‘수’를 줘도 점수가 부족하다. 경제 불황과 부동산 침체 속에서도 지난 1년 동안 재산을 늘린 사람이 세 명 가운데 두 명꼴이 넘는다. 2387명 중 71.6%인 1709명의 재산이 전년보다 늘어났다.

ⓒ 시사저널 전영기ㆍ박은숙ㆍ임준선
이들의 재산 늘리기 비법은 무엇일까? 이번에 공개된 행정부 내 재산 증가 상위 10인 공직자의 재산 내역에는 특징이 있다. 수도권 공직자들은 주식이나 예금으로 재미를 봤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주식이나 예금으로 만회하는 등 분산 투자에 성공했다. 반면 지방 공직자들은 부동산으로 자산을 늘렸다. 전체적으로는 부동산이 여전히 재산 늘리기에서 효자 노릇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 증가액 3위를 차지한 임명규 전라남도의회 의원이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한 대표적 경우이다. 임 의원은 전년에 비해 14억6133만원이 증가한 72억4957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임 의원은 전남 보성군 벌교읍과 조성면, 고흥군 도양읍 일대의 전답과 임야, 잡종지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본인과 배우자 소유 토지를 모두 합해 보니 무려 53만1800여 ㎡(16만여 평)에 달했다. 이 지역 땅값 상승에 힘입어 재산도 불었는데, 특히 녹동항 개발 사업과 도양 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 등 호재가 많은 전남 고흥군 도양읍 봉암리 일대 토지가 재산 상승을 이끌었다.

지방단체장·의원들, 부동산으로 재산 늘려

12억1925만원이 늘어나 증가액 5위에 오른 정만규 사천시장도 부동산과 예금이 많았다. 본인과 배우자 소유의 19억5700만원 상당의 토지 중 재산 증가를 주도한 곳은 사천시 송포동 요트 계류장 인근에 위치한 과수원이다. 지난해와 비교해 3억원 가까이 올랐다. 정 시장측은 “토지 면적을 신고하는 데 오류가 있었고 일부 매도 부동산의 신고 가액과 실거래가에 차액이 발생했다”고 증가 이유를 밝혔다.

이교범 하남시장은 지난해 57억6200만원에서 69억4700만원으로 11억8400만원이 늘어났다. 역시 땅이 상승을 이끌었다. 이 시장 본인이 소유한 토지 중 하남시 교산동 일대의 가격 상승 폭이 컸는데, 이 일대는 ‘천현·교산지구 친환경 복합단지 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부동산 경기가 다른 수도권 지역에 비해 괜찮은 곳이다. 금융기관 채무 때문에 2억700여 만원의 재산을 신고한 김영분 인천시의원은, 증가액이 9억5863만원에 달해 눈길을 끌었다. 증가액 대부분은 본인 소유의 건물에서 이뤄졌다. 같은 건물을 두고 지난해 13억500만원에서 올해 20억9610만원을 신고했는데 김 의원측은 ‘가액 변동 및 대지 면적 누락 신고에 따른 변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영석 경북도의원은 전체 재산 11억8617만원 중 9억3274만원이 증가했다고 신고했다. 증가액 대부분은 경북 구미시 해평면 일대에 매입하거나 토지 수용 덕에 대체 취득한 5501㎡(약 1664평) 넓이의 토지에서 나왔다. 4월2일 사의를 표명한 서울동부지검의 한명관 전 검사장은 세종시 조치원읍에 위치한 부친의 복합건물 지분 절반을 상속받으면서 총 8억3222만원이 증가했다고 신고했다. 최근 승진한 박찬우 안전행정부 1차관은 전년보다 7억8547만원이 증가한 14억8135만원을 신고했다. 충남 천안시 신방동에 위치한 토지 2080㎡(629평)와 건물 등을 상속받은 것이 재산 증가의 원인이다.

주식을 통해 재산을 증식한 대표적인 인물은 김기수 전 청와대 비서관이다. 그는 2011년보다 15억8660만원이 증가한 86억8445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공직자 중 두 번째로 많은 재산 증가액을 기록했다.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배우자 소유의 토지(18억6993만원)와 본인 명의의 서울 종로구 소재 다세대주택(5억8900만원) 등은 가격이 소폭 떨어졌다. 대신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3573주 중 일부인 573주를 매각하면서 시세 차익을 얻었다. 게다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3000주의 삼성전자 주식 평가액이 지난해보다 7억8576만원 올라 주식 자산만 45억68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재산을 가장 많이 늘린 고위 공직자는 4월1일 사의를 표명한 최교일 전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최 전 지검장은 119억7000여 만원을 신고해 지난해보다 20억400여 만원이 증가했다. 최 전 지검장이 신고한 재산의 대부분은 배우자 명의로 되어 있다. 최 전 지검장의 배우자는 부친의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해 봉급과 배당 소득으로 약 24억3000만원을 받았다. 82억3000만원의 예금 중 72억원이 배우자 소유다. 배우자 명의의 예금만 1년 동안 25억4000만원 늘어났다. 10억원 상당의 65개 상장 주식 역시 배우자 몫이다. 김석진 안전행정부 윤리복무관은 “최 전 지검장은 보유 주식 및 직무 관련성과 관련된 주택백지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 통과했다”고 말했다.

정성후 전북대병원장은 독특한 해명을 내놓았다. 지난해 취임한 그는 78억8839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1년 새 약 13억원이 늘었다고 밝혔는데, 증가액 대부분이 예금이었다. 이에 대해 정 병원장은 “전북대병원 이사장을 겸직하면서 법인 증가분 11억여 원을 포함하는 등 잘못 신고한 탓”이라고 해명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전북 남원·순창이 지역구인 진보정의당 초선 강동원 의원(오른쪽 사진)이 공개한 재산에서는 두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하나는 국회의원 중 가장 적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3월29일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밝힌 국회의원 재산 등록 내역을 보면 강 의원의 재산은 부채만 1억1000여 만원이다. 국회의원 중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유일한 마이너스 자산가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본인 소유의 주택이 있지만, 은행 부채가 무려 6억2300만원에 달한다. 강동원 의원실 관계자는 “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로 시작해 줄곧 정당인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월급 받는 직업을 가진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부채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1980년대 중반부터 20여 년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왔다. 1985년 김대중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비서로 정치와 인연을 맺었다. 강 의원의 재산 목록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김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이다. 원래는 2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1점밖에 남지 않았다. 1986년과 1989년 김 전 대통령에게 직접 받은 작품인데, 이 중 1989년에 받은 ‘민족자주’라는 휘호를 지난해 처분했다. 이유는 ‘자녀 학비 등 가사 비용 충당’이었다.

재산 하위 10위에는 강 의원을 포함해 통합진보당의 오병윤(4위, 1731만원)·이상규(6위, 3912만원)·김미희(7위, 3999만원) 의원 등 진보 정당 의원이 네 명이나 포진했다. 뇌물 수수 혐의와 관련해 최근 무죄를 받은 민주당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재산이 5831만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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