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서 노래 틀었더니 저작권료 내라 하네요”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04.0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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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단체들 ‘매장 음악’ 저작권 단속 나서면서 마찰 빚어

경기도에서 헬스클럽을 운영하는 홍 아무개씨는 최근 한국음악저작권협회로부터 ‘음악저작물 사용에 대한 안내문’이라는 우편물을 받았다. 공공장소에서 대중을 상대로 음악을 틀어주는 것에 대해 협회의 사전 승인을 받고 매달 이용료를 내라는 취지의 공고문이었다. 홍씨는 ‘음악을 사전 승인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면 민·형사상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글귀를 보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작은 헬스클럽에까지 이런 공고문을 보내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최근 자영업자들이 개인용으로 구매한 스트리밍 음악, MP3 음악을 식당·커피숍·쇼핑매장·운동시설 등에서 이용하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사법 처리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국음원제작자협회·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등 음악저작권 3단체가 저작권료 징수 규정을 강화하고 강력한 저작권 단속 활동을 벌인 결과다.

한 헬스클럽에서 음원 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방송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불씨가 된 스타벅스코리아 판결

매장 배경음악이 저작권 소송의 타깃이 된 것은 복잡한 저작권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세부적으로 복제권, 공연권, 전송권, 방송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으로 나뉜다. 음악을 다운로드해 MP3에 담는 행위는 복제권, 스트리밍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전송권, 모든 형태의 음악을 매장에서 재생하는 것은 공연권에 해당된다.

국내 500만명이 넘는 자영업자 대다수는 개인용으로 구입한 음악을 매장에서 영업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복제권·전송권·공연권 등과 관련해 음악단체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여기에 해당 저작권법 규정에 대한 법원과 음악저작권단체, 관련 업계와 시민단체의 해석도 제각각이어서 매장 음악저작권을 둘러싼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오픈넷측 “영세 매장 저작권료 징수는 위법”

매장 음악 저작권 소송의 불씨가 된 것은 스타벅스코리아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는 스타벅스코리아를 상대로 매장에서 틀어놓은 배경음악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스타벅스코리아가 시중에 유통되는 음반(판매용 음반)이 아니라 스타벅스가 별도로 주문 제작한 음반을 매장에 재생한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최종 판결했다.

음저협은 스타벅스코리아에 대한 판결문을 계기로 ‘매장에서 트는 음악’에 대한 단속에 나서고 있다. 음저협은 자영업자들이 멜론·벅스 등과 같은 국내 20여 곳의 음악 서비스회사의 스트리밍·다운로드 음원을 구입해 매장에서 재생할 경우 ‘판매용 음반’에 해당하지 않아 저작권 침해로 보고 있다. 돈을 주고 구입한 음원으로 CD 제작, MP3 파일 음악 사용, 불법 음악 제공업체의 서비스, 불법 배경음악 제공 기기를 사용하는 것 또한 단속 대상이라는 게 음저협의 입장이다.

스타벅스코리아와 유사한 매장 역시 단속망에 올랐다. 음저협은 스타벅스코리아의 판결을 선례로 유사한 형태의 다른 커피전문점뿐만 아니라 전자양판점, 기업형 슈퍼마켓 등을 대상으로 저작권료를 받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음저협 주장에 반박하는 곳도 있다. 인터넷 자유 개방 공유를 지향하는 시민단체인 오픈넷은 지난 3월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음악단체가 공연권 징수 대상이 아닌 소형 매장까지 단속하는 것은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피해 사례를 모아 집단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매장에서 음악을 트는 행위와 관련된 조항은 저작권법 제29조 2항이다. 저작권법 제29조 2항은 청중이나 관중으로부터 공연에 대한 반대급부를 받지 않는 경우에는 ‘판매용 음반’을 재생해 공중에 공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한 특수시설(저작권법 시행령 제11조)은 예외로 두고 있다. 특수시설에는 매장 면적이 3000㎡를 넘는 대형 마트·백화점·쇼핑센터를 비롯해 단란주점·유흥주점·경마장·골프장·스키장·에어로빅장· 무도장 등이 포함된다.

저작권법 제29조 2항은 대통령령에서 정한 일부 사업장을 제외한 나머지라면 누구나 ‘판매용 음반’을 재생해 공중에게 공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픈넷측은 “(이 조항은) 3000㎡를 넘지 않은 영세한 규모의 매장이나 커피숍, 패스트푸드점, 레스토랑, 헬스클럽 등은 저작권법이 규정한 공연권 납부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저작권료 징수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스타벅스가 문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타벅스는 저작권법 제29조 2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특수시설에 해당되지 않는다. 오픈넷의 남희섭 변리사는 “스타벅스가 저작권 침해 판결을 받은 것은 매장에서 재생한 음반이 자기 매장에서만 사용하기 위해 주문 제작한 것으로 ‘판매용 음반’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이 판결을 계기로 (음저협이) 동일한 계통의 다른 매장에 대한 단속에 나서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판매용 음반’에 대한 해석도 달라

저작권법 조항에 있는 ‘판매용 음반’에 대해서도 해석이 엇갈린다. 오픈넷측에 따르면 매장에서 재생할 수 있는 음반에는 시판용 CD는 물론이고 인터넷 음악 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한 음악이나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되는 음악까지 포함된다. 오픈넷의 남 변리사는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음반’은 유형물에 고정된 ‘음 그 자체’(저작권법 제2조 제5호)를 뜻하는 것”이라며 “이미 음저협의 상위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음반’은 ‘음 그 자체’라고 유권해석을 하고 있다. 매장에서 다운로드한 음원을 재생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오픈넷측은 음저협이 카페나 일반 매장에서 저작권료를 받는 행위는 오히려 그들이 정한 징수 규정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남 변리사는 “음저협의 저작권료 징수 규정 가운데 ‘레스토랑·커피숍·카페·뷔페 등에 대한 징수 규정’을 살펴보면 생음악을 공연할 경우에만 징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며 “CD나 다운로드한 음원 등을 커피숍이나 레스토랑에서 재생하는 것은 이 규정에 해당되지 않는데도 저작권료를 징수하는 것은 오히려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오픈넷측의 주장대로라면 음저협은 스타벅스에 대한 판결을 무기로 부당한 권리 행사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음저협측에서는 스타벅스에 대한 대법원 판결 자체가 저작권법과 관련된 논란을 잠재울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맞서고 있다. 음저협 관계자는 “그동안 저작권법에서 ‘판매용 음반’에 대한 규정을 짓지 않아 29조 2항은 늘 논란거리였다. 스타벅스를 상대로 한 소송은 그 논란을 일단락 짓기 위한 ‘리딩케이스’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음저협측은 대법원 판결문 자체가 지나친 권리 행사로 이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와 관련해서는 “이번 판결이 영세한 사업장으로까지 크게 해석되는 것은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며 “영세 사업자는 예외 조항을 두는 새로운 징수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저작권법 제29조 2항을 둘러싸고 음악단체와 시민단체 사이에 엇갈리게 나오는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해석이 분분하다. 법무법인 세움의 정호석 변호사는 “이 조항은 원칙적으로 받지 않는 경우를 정해둔 것이지 본래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판매용 음반’이 아니면 모든 매장에 저작권료를 징수하고, 판매용 음반일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시행령 11조에 해당되는 장소만 저작권료를 징수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하지만 ‘판매용 음반’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다. 유권해석을 통해 통상적으로 정하는 것인데 판결문과도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시대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저작권법

‘판매용 음반’을 둘러싸고 공방이 이어지는 데는 ‘낡은 저작권법’ 탓도 크다. 과거 저작권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스트리밍, MP3 다운로드 음원 등 디지털 음악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판매용 음반’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색해졌다. 음악 저작권 단체 관계자는 “저작권법이 디지털 시대의 현실을 담지 못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저작권 단체 사이에서도 ‘판매용 음반’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다”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을 징수하는 주체가 여러 개인 것도 문제다. 일각에서 이로 인해 저작권이 남용되고, 결국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매장 음악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원트리즈뮤직의 노종찬 대표는 “아직 저작권료를 징수하는 것 자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작권료에 대한 개념이 없는 분들이 많은데 저작권료 징수 주체가 다원화된 바람에 일반 소상공인에게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법 피하기’도 가지각색 

2009년 저작권법 개정으로 공연 보상 청구권이 도입되면서 더욱 복잡해진 저작권 징수 체계 탓에 골치를 앓는 매장이 많아졌다. 공연 보상 청구권 도입으로 기존 매장 음악에 대해 저작권료를 요구하고 있던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뿐만 아니라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음제협)와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음실연)가 동시에 저작권료를 요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음악저작권단체가 동시에 저작권 징수에 나선 바람에 매장 음악과 관련된 음악 사용료가 1.5배 이상 불어났다. 음악저작권단체 관계자는 “공연 보상 청구권 도입 후 음저협이 받아오던 저작권료의 70% 가까운 비용을 음제협과 음실연이 요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업체들은 저작권법을 피할 수 있는 묘책을 마련하기 위해 나섰다. 일부 대형 마트에서는 아예 배경음악을 틀지 않거나 자체 제작한 음악으로 매장 음악을 대체하고 있다. 대다수 매장이 저작권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 50년 전에 녹음된 클래식을 선호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업체 차원에서 매장 음악을 공급할 수 있는 온라인 음악 사업에 뛰어든 경우도 있다. SPC그룹은 계열사 SPC네트웍스를 통해 지난 2월 ‘헬륨’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시작했다. 동종 업계 관계자는 “최근 문제가 되는 매장 음악 저작권에 대한 고민도 음악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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