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탈과 살인도 비즈니스가 되는 나라
  • 이지선│영화평론가 ()
  • 승인 2013.04.09 15: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스꽝스럽고 신랄하게 ‘죽이는 영화’ <킬링 소프틀리>

정체불명의 강도들에게 도박판이 털리고, 조직은 범인을 찾기 위해 킬러 잭키 코건(브래드 피트)을 고용한다. 원만하고 빠른 해결을 원하는 조직의 요구 앞에 잭키는 전문가다운 능력과 수완 그리고 자신만의 원칙에 근거해 ‘부드럽게’ 일을 해결해나간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로 브래드 피트에게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앤드류 도미닉 감독의 신작 <킬링 소프틀리>는 강도질, 마약, 청부 폭력, 살인이 횡행하는 미국 사회의 이면을 풍자한 영화다. 원작은 조지 V. 히긴스의 <코건의 거래>. 감독은 1974년 출간된 인기 범죄소설의 배경을 2008년 부시 정권 말기로 옮겨 돈을 향한 욕망이 모든 것을 추동하는 오늘의 미국, 자본의 작동 방식을 그려냈다.

영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 돌아가는 절차를 청부 살인이라는 하드보일드한 은유를 통해 보여준다. 강탈과 살인마저 비즈니스가 된 세계, 매끄러운 일처리와 비용 절감은 전문 킬러에게조차 미덕이다. 건조한 농담과 감상적 음악, 희망적인 연설과 절망적인 상황. 정반대의 것들을 교직해낸 영화는 우스꽝스럽게, 그러나 신랄하게 오늘의 미국 사회를 풍자한다. 모두에게 평등한 나라, 꿈의 실현이라는 희망. 그 모든 언설은 판타지일 뿐이며 돈이라는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 기업이 지금의 미국이라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던 중요한 시기, 희망을 말하는 현직과 차기 최고 지도자의 연설이 배경음악처럼 흐르지만 그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계약이 엄수되어도 지불은 언제나 자본이 지닌 특권이므로 멋대로 폐기되기 일쑤인 약속 앞에 피고용인의 입지란 그저 불안할 따름이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세기를 사는 이들에게 잭키의 마지막 일갈은 그래서 냉소적이지만 현실적인 지침이라 할 만하다. “웃기고 있네. 내 돈 내놔!”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