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제약사 한통속으로 혈세 빼먹었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4.1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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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망 피하는 제3자 거래까지 동원…<시사저널> 특종 보도 후 비난 빗발

<시사저널>은 지난 호에서(2013년 4월9일자)에서 ‘대학병원장·의사들이 제약회사 사외이사로 등재돼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병원·제약사 등 관련 업계에 큰 파문이 일었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직 의사가 제약회사 사외이사로 등재된 사실이 본지 취재 과정에서 추가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박영배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CJ제일제당의 사외이사로 있다. 이사회에 참여해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등기임원이다. 본지는 해당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박 교수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전화 통화조차 거부하고 서울대병원 관계자를 통해 “CJ제일제당의 무보수 사외이사로 있다. 서울대 의대에서 필요한 절차를 거쳐 외부 기관의 사외이사가 됐다”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한 대학병원 중견 교수는 “보수를 받고 안 받고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의사가 제약사와 어떤 관계로든 연결된 것은 비난받을 일”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의사·제약사 고위층이 회사 운영

최근까지 한 의대 부총장도 이 업체의 사외이사로 있었다. 그는 2000년대 중·후반 보건복지부 차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청 청장을 역임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그는) 지난 2월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면서 현직 의사를 사외이사로 둔 이유에 대해 “신약 개발 등에 전문의의 지식이 필요하며 평소 의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업계 10위권에 있는 이 회사의 제약 사업 부문은 복제약과 수액제 등을 병원에 납품하며 연 6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10년부터 약 1년 동안 자사 의약품을 처방해달라는 대가로 전국 병·의원 의사 266명에게 법인카드와 현금을 제공하는 수법으로 45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뿌린 사실이 드러나 최근 보건 당국으로부터 행정처분(판매업무정지 1개월)을 받았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상당수의 국내 유명 제약사에 현직 의사, 의대 명예교수, 전직 의사, 전 보건복지부 차관 등 의료계 관련 인물이 사외이사로 있다. 사외이사란 대주주와 관련 없는 사람이 그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해 대주주나 경영자의 독단과 부실 경영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직책을 말한다. 정부는 1998년 상장회사에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두도록 했다.

본지가 지난 호에서 첫 보도를 내보내자 “병원과 제약사라는 특수 관계를 고려할 때 현직 의사가 제약사의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학영 의원(민주통합당)은 “공공성을 가진 의료기관이 수익 내기에 몰두하면 궁극적으로 국민 혈세를 좀먹게 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국민이 가지고 있는 상식이나 사회적 통념 차원에서 심각하다”며 “의사가 외부 기관의 사외이사를 맡는 문제의 적법성 여부를 전문가들에게 묻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우리에게는 병원장이 제약사의 사외이사로 등재된 것을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도 “공정거래법이나 사외이사 관리법을 위반했는지 따져볼 일”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우리가 참고할 만한 좋은 내용의 기사였다”면서 향후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공정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나 검찰이 이번 사안에 대해 먼저 조사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변칙적인 리베이트를 주고받았는지 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병원과 제약사가 제3의 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지메디컴’이라는 회사는 2000년 서울대병원을 주축으로 설립된 일종의 구매대행사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구입해서 병원에 납품하는 역할을 한다. 공개 입찰 방식을 통해 물품을 싸게 구입하려는 취지에서였다. 처음에는 영리 목적이 아니어서 10년 동안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대병원은 외부 기업에 경영을 의뢰했고, 대웅제약이 2010년부터 이 회사의 경영을 맡았다. 이사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윤재승 대웅제약 부회장이 전체 지분의 25%가량을 가진 최대 주주다. 그는 대웅제약 창업주 윤영환 회장의 3남으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출신이다. 정난영 대웅 사장도 등기임원이다. 이재국 대웅제약 이사는 “윤 부회장과 정 대표는 그 회사 지분만 가지고 있을 뿐”이라면서 대웅제약과 별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사진에 대학병원 의사들도 포진해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서정욱 서울대병원 병리학과 교수와 박노현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이 회사의 등기임원 사외이사로 각각 12년, 2년 동안 등재돼 있다. 김승협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지난 2월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이들은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준공무원 신분인 국립대 병원 의사가 제약사 임원이 운영하는 회사의 사외이사로 있는 것에 대해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때 벤처기업과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합법적으로 의사가 사외이사로 진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의사 대신 병원에 리베이트 제공

개인뿐만이 아니다. 서울대병원·이화의대목동병원·경희의료원·원광대병원·혜인의료재단 등 대형 병원과 중외제약·녹십자·동아제약·한미약품공업·CJ 등 제약사가 주주로 있다. 의사, 병원, 제약사, 제약사 고위층이 한 업체에서 몸담고 있는 모양새여서 리베이트 거래설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지메디컴은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았고,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리베이트 정황은 엉뚱하게도 의사들 간 다툼에서 불거졌다. 2011년 10월 경희의료원 소속 교수들이 리베이트를 나눠 갖는 방식을 놓고 주먹다짐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감사에 착수한 보건복지부는 리베이트 거래 정황이 담긴 이중계약서를 발견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폭력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출처가 불분명한 수억 원대의 기금을 찾아냈고, 리베이트 실태를 확인했다. 이 회사와 케어캠프(구매대행사)가 모두 9개 대형 병원에 20억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뿌린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리베이트 제공 방법은 교묘했다. 이 업체와 병원은 실거래가 상환제의 허점을 악용했다. 실거래가 상환제란, 의료기관이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구입한 실제 거래 금액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업체가 100원짜리 약을 150원으로 부풀려 병원에 납품하면 병원은 그 돈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서 받는다. 병원은 150원을 업체에 의약품 대금으로 지급한다. 업체는 차액 50원에서 20원을 병원에 돌려준다. 20원이 리베이트인 셈이다.

그 리베이트를 의사 개인에게 지급하지 않고 병원에 줬다. 이지메디컴은 정보 이용료, 창고 임대료 등의 명목으로 건국대병원 구매원장에게 매월 3400만원을 주는 등 3개 병원에 1년여 동안 2억4700만원을 제공했다. 또 삼성서울병원 등 사립병원에 대해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구매 대행하는 케어캠프도 유사한 방식으로 병원에 17억원을 되돌려줬다. 이 회사는 삼성물산이 대주주로 있다. 의료 도매상업계 관계자는 “이지메디컴이나 케어캠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돈에서 남긴 차액을 6 대 4로 나눠 병원에 되돌려줬다”면서 “2000년 이후 의료기기 유통 시장에서 이들이 활동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병원에 뿌린 리베이트 액수는 수백억 원대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회사들은 두 번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비리가 없어서 무죄가 아니라, 비리는 있지만 처벌 근거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의료법, 의료기기법 개정을 통해 약업계·의료계 전반에 걸쳐 있는 리베이트 영업을 없애야 할 것”이라며 “법률 미비로 무죄를 선고하는 것에 대해 재판부는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똑같이 리베이트를 받았더라도 개인(의사)은 처벌할 수 있지만 기관(병원)은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리베이트는 국민 혈세 축내는 일”

국회는 법을 보강하기로 했다. 이른바 리베이트법 개정안은 개인뿐만 아니라 병원 또는 약국이 리베이트를 받을 경우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약품·의료기기 제조(수입)업체, 도매상, 판매(임대)업체뿐만 아니라 컨설팅·마케팅·광고대행사 등 제3자를 통해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에 넣었다. 이 개정안은 4월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후 입법예고 등의 절차를 거쳐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리베이트는 의사나 병원과 제약사만의 불법 거래가 아니다. 국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금이 리베이트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의약품(의료기기)이 어떻게 거래되는지 살펴보자. 제약사(제조사)가 만든 의약품(의료기기)은 의료 도매상을 통해 각 병원에 공급된다. 병원이 여러 제약사와 계약을 맺는 것보다 의료 도매상 몇 군데를 통하는 것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구매대행사를 선호한다. 의료 도매상들의 물건을 한꺼번에 구매해서 납품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가격도 싸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으로서는 이 업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의료 도매상과 병원 사이에 유통업체가 한 단계 더 생긴 꼴이다. 이지메디컴 관계자는 “공정한 입찰을 통해 최저가의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병원에 공급하므로 병원·환자 모두 만족하는 체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 나오는 말은 다르다. 의료 도매업협회 관계자는 “이지메디컴과 케어캠프는 입찰을 진행하면서 의료 도매상으로부터 수수료를 챙긴다”며 “의약품은 0.8%, 의료기기는 10%의 수수료인데, 의약품 3억원 입찰 건이라면 2400만원을 가만히 앉아서 먹는 셈”이라고 밝혔다. 이지메디컴에 연결된 의료 도매상은 2만여 개다. 의료 도매상들은 이지메디컴을 무시하고 과거처럼 병원과 거래할 도리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지메디컴과 케어캠프가 약 6조원 규모로 커진 국내 의료기기 유통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의료 도매상 사장은 “서울과 수도권에 있는 대형 병원 80여 곳이 이지메디컴과 거래한다”면서 “서울대 치과병원 등 일부 병원은 이지메디컴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에 의료 도매상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지메디컴을 통해 물건을 팔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 “낙찰돼 제품을 공급해도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그 수수료가 어디서 나오겠는가”라며 국민 세금이 리베이트로 흘러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했다.

최근 이지메디컴과 케어캠프 관련 2심 재판에서 재판부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을 해쳤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약값을 실제보다 부풀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고, 받아낸 돈의 일부가 리베이트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학영 의원은 “이지메디컴과 케어캠프가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병원에 뿌린 리베이트만 20억원이고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차액은 최소 32억원”이라며 “국민 세금이 의사들 배불리는 데 쓰이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환자 치료를 우선 생각해야 할 의사가 일부 제약사와 한통속이 되어 국민 세금을 축낸다는 사실에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올해 초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값으로 부담한 돈이 리베이트로 사용된 만큼 그 금액을 돌려달라는 민사 소송을 제기한 의약품리베이트감시운동본부측에 따르면, 연간 2조원 이상의 세금이 손실된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국내 의료기관은 비영리 법인이다. 의료법 시행령(제20조)은 ‘비영리 법인은 의료업을 할 때 공중위생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영리를 추구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영리를 추구하는 일부 병원과 의사 때문에 환자 치료에 전념하는 수많은 병원과 의사들이 모두 비난받게 생겼다. 기자가 병원과 제약사의 유착 관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들은 한 대학병원 임원의 말이 생생하다. 그는 “제약사뿐만 아니라 각 재단에 사외이사로 있는 의사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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