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미사일 올라탄 김정은 그 도박의 끝은?
  • 감명국 기자·이영종 중앙일보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4.1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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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 강하고 과격한 통치 스타일 “한반도는 내내 불안할 것”

#1. 먼저 김정일로부터 두 왕자의 소개가 있었고, 정렬한 최고 간부부터 차례로 왕자들과 악수하기 시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간부들은 정철 왕자, 정은 왕자 앞으로 차례로 나가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고, 왕자들도 손을 내밀어 악수에 응했다. 당시의 조선노동당이나 정부의 최고 간부인 허담·장성택·김용순·김기남·권희경 등이 있었다. (중략) 나는 대열의 가장 끝에 서 있었는데, 그들이 점차 다가오자 심장 뛰는 소리가 마구 커지고 있었다. 자, 드디어 내 차례다. 제일 먼저 정철 왕자에게 손을 내밀었더니 왕자는 곧바로 손을 내밀어주었다. 내가 조금 힘을 주어 악수를 청하자 정철 왕자도 내 손을 꽉 쥐며 악수해주었다. 한숨을 돌리고 난 다음 정은 왕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정은 왕자는 손을 내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를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곱 살짜리 아이가 마흔 살 어른인 나를 향해 쏘아보듯 날카로운 눈빛을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정은 왕자한테 악수를 거절당한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 부자연스런 몇 초간이 나에게는 5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때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김정일이었다. “자, 후지모토 씨야.” 그 말을 듣자 정은 왕자는 비로소 손을 내밀었다.

 

#2. 1991년이나 199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은 대장이 ‘오델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서 보고 있던 정철 대장이 “이렇게 해봐” 하고 말하는 대로 따라했는데 구슬을 놓치고 말았다. 화가 난 정은 대장은 놓친 구슬을 형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다행히 큰일은 없었지만 그때 나는 정은 대장의 과격한 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중략) 정은 대장이 열 살이 되기 조금 전인 1992년 10월경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모님이 평소대로 정은 대장을 ‘작은 대장’이라고 불렀다. 그때 정은이 갑자기 큰소리로 화를 내며 “내가 아직도 유치원생인 줄 알아?”라며 이모님을 쏘아보았다. 언제나 형 밑에서 ‘작은 대장’이라 불려온 것이 이날따라 참기가 힘들었던 것일까. 그날 이후로 나는 정은 동지를 ‘작은’을 빼고 ‘대장 동지’라고 불렀다. 그렇게 불렀더니 정은 대장이 무척 좋아하는 기색이었다. 서기실의 김창순 부부장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른 간부들에게도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이제는 모두가 ‘정은 대장’을 ‘대장 동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은 대장의 과격한 기질이 그대로 드러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 일러스트 오상민
김정일 “정은이 뱃심과 배짱, 나보다 낫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평양 주석궁에서 1982년부터 2001년까지 김씨 일가와 함께 지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2010년 펴낸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는 김정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김정은은 승부욕이 남달리 강하고, 북한 주민들의 삶과 경제 수준에 대한 관심이 컸으며, 형 정철과는 달리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절대 권력자로 성장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지금 한반도 전체를 상대로 ‘도박’을 벌이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기록영화를 보면, 김정일이 생전 아들 김정은에 대해 평가하는 부분이 나온다. ‘정은이의 뱃심과 배짱은 나보다 훨씬 더하다’라고 한 게 그것이다. 아마도 지금 미국을 상대로 맞장을 뜨는 이런 배짱과 대담함을 기대하고 김정일은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 행보는 숨이 가쁜 정도를 넘어서 이제는 숨이 턱에까지 찬 느낌이다. 지난 2월 3차 핵실험 강행 이후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에 대한 반발로 본격화된 이런 움직임은 두 달 넘게 서울과 워싱턴을 겨냥해 파상적으로 이뤄지는 양상이다. 급기야 괌과 미국 본토 타격은 물론 서울 불바다 위협으로까지 번졌다. 이런 대남 위협을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대남 타격 위협도 지난 2월 말 가시화했다. 그는 먼저 폭풍군단이란 별칭을 가진 대남 특수전 부대 11군단과 공군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비행 훈련 및 낙하산 침투 시범을 참관했다. 여기에는 대남 침투용 특수 항공기인 AN-2기가 동원돼 눈길을 끌었다. 3월 들어 김 제1비서는 서해 최전방 방어부대인 장재도·무도방어대(7일)→월래도 방어대(11일)→무인공격기 훈련 지휘(20일)→대남 특수전 훈련 참관(22~23일) 등의 일정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제1비서는 “적들을 수장시켜버리라”거나 “항복 문서에 도장을 찍을 놈도 없이 벌초해버리라”는 위협 발언을 쏟아냈다. 남북한이 한창 냉전 대결을 벌이던 1960~70년대 김일성도 이런 노골적인 위협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적은 없었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 정도 수위까지 노골적으로 긴장 강도를 올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전례 없는 스타일의 도발 행동 이면에는 김정은 제1비서의 일그러진 대남관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국제학교를 다닌 해외 유학파 출신으로 서구 문물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 대남 인식도 깨어 있을 것이란 당초 기대와는 배치되는 행동이다. 김 제1비서는 2010년 9월 후계자로 공식 등장하기 전 탱크부대를 방문해 남한 진격 훈련을 지휘했다. 또 북한 군가 악보를 보고받은 자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남진(南進)의 길을 가자”는 내용의 격려 메시지를 직접 적은 사실도 기록영화를 통해 드러났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도발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지휘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김 제1비서의 최근 도발 위협 행보에는 군부 핵심 인사들이 수행한다. 김 제1비서를 중심으로 마치 병풍을 치듯 서 있는 군부 고위층이다. 우리 군과 정보 당국이 특히 주목하는 인물은 김영철 정찰총국장과 김격식 인민무력부장이다. 대표적인 군부 강경파다. 김영철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실행한 인물이라고 우리 당국은 판단한다. 최근 북한 소행으로 판명된 우리 방송국과 금융기관에 대한 사이버 테러도 그의 작품이다.

김격식은 황해도 해주 지역을 관장하는 4군단장 때 김영철과 함께 천안함 폭침 도발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등을 주도했다. 김정일이 간부들 앞에서 “우리 격식이는 나와 격식이 없는 동무”라고 언급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이 밖에도 군 총정치국장 최룡해와 다른 군부 인사들이 김 제1비서를 따라다닌다.

군부 인사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이 자주 드러나면서 김 제1비서가 군부 강경파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김정은의 도발 행보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으며, 이는 군부 핵심 세력의 의도대로 끌려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29세인 김정은이 아직 원만하게 군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일부 평가가 깔려 있다.

김일성 사망(1994년 7월) 직후 권력을 넘겨받은 김정일도 가장 먼저 군부의 지지 기반 확보에 힘을 쏟았다. 군부 핵심이나 원로 세력들에게 벤츠 승용차를 선물로 주고 환심을 사거나 특각(별장)을 준 적도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이런 시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둬 군부 지지 속에 권력 기반을 강화했다는 평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군부가 득세하고 있다는 점은 김정은 제1비서의 현지지도 방문지와 수행원 면면을 통해 드러난다. 김 제1비서는 지난해 11월 기마중대 시찰을 끝으로 3개월간 군부대를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 북한군 제323부대를 시작으로 33일간 모두 16번이나 군부대를 방문했다. 김 제1비서의 군 관련 활동에는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한 번도 빠짐없이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또, 김격식 인민무력부장과 현영철 군총참모장이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반해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은 방어대를 시찰할 때 한 번 수행하는 데 그쳤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3월11일 백령도 타격 임무를 부여받은 월내도방어대를 시찰하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
“북한 군부, 김정은 기에 눌려 숨도 못 쉬어”

하지만 국내의 대다수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 제1비서가 군부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군부가 김 제1비서의 기세에 눌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다고 평가한다.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출신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 북한 군부는 김정은에 아첨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금 김정은의 행동에 제동을 걸 인사는 아무도 없다”고 밝혔다(32쪽 인터뷰 기사 참조). 정성장 위원 역시 “김정은이 군부를 장악한 정도가 아니라, 지금 북한 군부는 김정은의 기세에 눌려 숨죽이고 있다. 지난 3월31일 개최된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군부의 대표적 간부들인 총참모장·인민무력부장·인민보안부장 등은 모두 정치국의 후보위원에 오르는 데 그쳤다. 상무위원과 위원에서 모두 밀린 것이다. 김정은은 여전히 군부에 대한 군기 잡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북한군 상좌 출신인 최주활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 군부는 그야말로 김정은에 대한 충성 경쟁에 빠져 있다. 총참모장이든 정찰총국장이든 그들이라고 해서 지금 남한과 전면전을 벌이면 백전백패라는 것을 왜 모르겠나. 그래도 김정은이 ‘이길 수 있나?’라고 물으면 ‘이길 수 있다. 자신 있다’라고 대답해야지 만약에라도 ‘못 이긴다’고 했다가는 바로 숙청 대상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나서서 김정은에게 직언할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인민군에 있을 때도 남한의 팀스피리트 훈련 등 한·미 연합 훈련 기간은 초비상이었다. 갱도 안에서 일주일 이상 생활하고 그랬다. 한·미가 북한으로 쳐들어올까 봐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지금 남한에서 미군과 합동으로 키리졸브 훈련이나 독수리 훈련을 하는 것은 북한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군부에 휘둘리는 차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군과 김정은 제1비서가 서로 잠정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부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 등 안보 위기 상황을 활용해 위상을 높이고, 김 제1비서도 위기를 고조시켜 주민 통제와 권력 장악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도라는 얘기다.

하지만 김 제1비서가 비교적 확고한 군부 장악을 통해 군사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는 반론이 지배적이다. 군부 고위 인사에 대한 롤러코스터식 해임·강등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도 언뜻 보면 불안 요소로 보이지만, 그만큼 김 제1비서가 군을 잘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강등 등의 조치가 군부의 불안감을 가중시켜 반발이나 충성심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단기간 충격적인 인사 조치를 되풀이하면 군부의 충성심 경쟁을 끌어내는 효과가 크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반목과 갈등을 심화시켜 체제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평양의 행동은 즉흥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 전술이 담긴 대남 전선의 시나리오라고 봐야 한다. 아직은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을 수령으로 확고히 하기 위한 권력 핵심 인사들의 작업이다. 그 핵심은 역시 고모인 김경희와 현재 군부의 최고 실세인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으로 봐야 한다. 두 사람이 김정은을 김일성과 김정일의 뒤를 잇는 확고한 수령으로 만드는 작업을 지금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북핵 전제로 대응 전략 바꿔야”

군부와 노동당 사이의 오랜 앙금도 김 제1비서로서는 풀어야 할 과제다. 지난해 7월 김 제1비서의 군부 과외교사 격인 리영호 총참모장이 숙청된 것을 두고도 김 제1비서의 군부 개혁과 외화벌이 사업의 내각 이관에 반기를 들었다가 반혁명죄에 걸린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최근엔 개성공단 폐쇄 문제를 둘러싸고 군부와 당이 갈등을 빚은 것으로 대북 소식통은 전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지난 4월11일로 출범 1년을 맞았다. 지난해 4월 노동당 행사와 최고인민회의 등을 통해 김정은이 당 제1비서와 국방위 제1위원장에 오른 걸 기준으로 한 것이다. 집권 2년차가 됐지만 김정은 권력의 많은 부분은 베일에 가려 있다. 정책과 관련한 의사 결정 과정이나 논의 내용들이 거의 대부분 비밀에 붙여지기 때문이다. 김 제1비서의 실체는 북한 선전·선동 전문가들의 찬양과 우상화 작업으로 인해 덧칠되고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미 정보 당국이 파악한 김 제1비서 관련 정보도 아직 미흡하다.

정성장 위원은 “사실상 지금 북한을 보면, 우리의 바람대로 핵 포기를 수용할 가능성이 전무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 전략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아직 젊은 김정은은 앞으로도 계속 한·미를 피곤하게 만드는 치밀하게 계산된 도발 시나리오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응책이 전혀 없다”고 우려했다. 최주활 전 위원은 “김정은의 목적은 분명하다.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게끔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항상 한·미로부터 공격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것을 막기 위해 계속 한반도 긴장을 유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제1비서가 한국과 국제 사회가 권고하는 개혁과 개방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권력이 지닌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치열한 권력 투쟁이나 주민들의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권력을 넘겨받았다는 점이 그것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 이데올로기라는 갑옷을 입지 않고서는 하루도 버티기 힘들 수 있다. 한계치를 모르고 압박 수위를 올려가고 있는 김정은 체제가 위기 속에서 어떤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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