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은 총 내려놓고 보도블록 교체 중
  • 진희관│인제대 통일학연구소 소장 ()
  • 승인 2013.04.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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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동신문 등을 통해 본 평양 현지 분위기

북한의 강경 발언들이 연일 쏟아지면서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정전 체제를 ‘백지화’시키고(3월11일), 전시 상황을 선포하고(3월30일), 전방 야포 및 로켓부대는 ‘1호 전투근무태세’에 돌입했다(3월26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3월28일자 로동신문 정론의 제목은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라’다. 급기야 4월3일에는 개성공단 가동을 잠정 중단하고 출입 제한 조치를 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는 어떤 표현이 나올까 싶을 정도의 협박을 쏟아내고 있다.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북한의 정확한 속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문장 구조들을 유심히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과연 어떤 노림수가 있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보다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은 정확한 대비 태세를 위해 중요하다.

4월11일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추대 1주년 청년학생 무도회가 열렸다. ⓒ 조선중앙통신
“대외 무역 다각화하고 투자 받아들여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으로선 선제공격을 할 의도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최대의 표현들을 찾아 사용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3월31일 당중앙위원회 3월 전원회의에서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했다. 핵무력을 강화하고 경수로를 개발하겠다는 것은 지금의 한반도 위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는 내용이지만, 경제 건설 노선은 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다. 특히 경제를 “지식경제로 전환시키며 대외 무역을 다각화·다양화하고 투자를 널리 받아들여야 한다”는 표현을 썼다. 대외 무역을 발전시키고, 해외 투자를 받아들이자는 것은 군사적 긴장 관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4월1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법령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가 채택됐다. 이 법령에서도 핵무력이 정당방위 수단임을 강조하면서 안전성 보장과 핵물질의 불법 누출을 엄격히 준수한다거나, (적대 관계 해소 시에는) 핵전파 방지를 위해 국제적 노력에 협조하며, 궁극적으로는 비핵화 노력을 지지한다고 언급했다. 예컨대 핵무력을 건설하기는 하되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며, 경제 건설을 위해서는 주변국과 협력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조선로동당의 방침이다. 즉, 보도를 통해 알려지는 군사적 위기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사실 4월9일 발표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담화에서 한국의 외국인들에게 대피하도록 언급한 발언은 다음 날 로동신문에 매우 작은 크기로 실렸고 위치도 뒤쪽인 5면에 게재되었다. 3월의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키는 발언들이 1, 2면에 적지 않은 크기로 실린 것과 비교하면 비중이 매우 작게 다뤄졌다. 로동신문의 분위기도 4월 둘째 주로 접어들면서 달라지고 있다. 4월8일 1면에는 ‘태양절을 높은 정치적 열의와 로력적 성과로’라는 큰 주제 속에 만경대(생가) 및 연합기업소, 농촌, 과수원의 기사들을 게재하고 있다. 2면에서도 ‘…공격 정신을 발휘한 인민 군인들’이라는 사진 기사에서 평양 시내 보도블록을 교체하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을 네 컷이나 게재하고 있다. 이후에도 연일 태양절과 김정일 추모(국방위원장 추대 20돌)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대남 기사는 비판 기사와 함께 남한의 반전 시위를 사진과 함께 실었다. 남한 주민들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기사를 싣고 있는 것이다. 4월 첫째 주가 지나면서 로동신문 논조는 군사적 위기 고조가 아니라 ‘살 만한 북한’이 되고 있다는 것을 태양절을 맞아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3월의 대남 발언들의 문장 구조엔 초강경 단어들이 동원됐지만 여전히 조건문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월26일자 최고사령부 성명에서 “실제적인 군사적 행동으로 과시하게 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결심’이라고 하면서 ‘과시’ 또는 ‘보여주게 될 것’이라는 표현, 그리고 ‘전 세계 진보적 인류’에 ‘호소’한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보여줄 수 있다는 결심을 넘어서지 않고 있는 셈이다. 다음 날 대표적인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의 인터뷰 내용(로동신문 3월28일)에서는 “우리의 인내성과 자제력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데 대해 다시금 주의를 환기시킨다” “만일 우리의 경고를 외면하고 리명박○○와 같은 대결의 길로 계속 나간다면 비참한 파멸밖에 없다”고 끝을 맺고 있다. 한국이 주의해주기를 바라고, 대결의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피하자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북한이 우리 새 정부에 대해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도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실명 비난을 하지 않고 있다가 3월에 이르러서는 ‘청와대 안방주인’(3월27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정도다. 더욱이 최근까지도 이명박 정부의 ‘추종 세력’이라는 형태를 빌어 비난한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남북 관계의 악화 원인은 이명박 정부에 있으며, 여전히 유지되는 이유는 그 추종 세력들에 의해 벌어진 사태라는 것이 북측의 해석이자 표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해석이 다양하다. 예컨대 북한은 박근혜정부에 대해 기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실명 비난은 자제

3월27일 오전 통일부 업무보고 이후 다음 날 로동신문의 대남 논조가 적지 않게 달라진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조평통 대변인 인터뷰 기사는 이후에 실린 것으로서 26일 최고사령부 및 외무성 성명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북한 내부에서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으려는 모습도 보인다. 지난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 때 북한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연일 전국적으로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청년들이 군 재입대 각서에 서명하는 등 내부적으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지금은 평온한 일상의 모습이다. 3월11일 백령도와 마주하고 있는 북한의 월내도 방어대를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홍보 영상은 지금의 북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정은의 ‘대담함’을 홍보하면서 동시에 ‘자상한’ 지도자상을 강조하고 있다. 배경음악은 모란봉악단의 서정적인 노래를 사용해 군사적 위기보다는 지도자로서 김정은의 이미지를 고취시킬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지금 북한의 군사적 위기 고조를 노리는 행동과 발언은 공세적이라 평가하기 어렵고, 오히려 김정은의 지도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고, 종국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를 재건하는 데 무게 중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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