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재·보궐 선거가 본격 레이스에 돌입했다. 서울 노원병,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에서 펼쳐지는 이번 선거는 거물급 후보들이 뛰어들어 작지만 무게감 있는 한판 승부가 될 전망이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세 지역구에서 각 후보들을 인터뷰하고, 지역 민심을 들여다봤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스포츠대회라 하더라도 스타급 선수가 참가하면 관심이 가기 마련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거물급 인물이 후보로 나서면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게 된다. 서울 노원병, 부산 영도, 충남 부여·청양에서 펼쳐지는 4·24 재·보궐 선거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대선 이후 미국으로 떠났던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노원병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 생각보다 빠른 그의 출마 선언에 정치권이 술렁였다. 부산 영도 지역에선 김무성 새누리당 후보가 유세 차에 올라탔다. 여기에 문재인 민주당 의원도 김 후보와 맞서는 김비오 민주당 후보를 지원하고 나섰다. 충남 부여·청양에선 충남도지사를 지낸 이완구 전 지사가 출마했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4·24 재보선은 단순한 지역구 몇 석을 넘어 대선 이후 정치 판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여겨지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4월8일부터 11일까지 세 지역 현장을 직접 찾아가 유력 후보들을 밀착 취재했다. 이들이 국회에 입성할 경우 정치권의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장 관심이 모이는 포인트는 안철수 후보의 행보다. 그의 새 정치를 위한 첫 단추가 끼워질 수 있을지는 물론, 국회 입성 이후 정치권에 불러올 파장에 대한 분석이 벌써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는 크게 세 갈래로 갈린다. 첫 번째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선 야권을 중심으로 정계 개편이 이뤄지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어차피 대통령 중심의 권력 구조에서는 대권 후보를 키우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야권에는 인물이 많지 않다. 안철수 후보는 그런 면에서 정치적 비중이 크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합치고 싶은 생각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어떤 형식으로든 안 후보와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얘기다. 반면 비관적인 분석도 있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안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게 되면 신당 창당을 시도할 텐데 쉽게 민주당을 탈당해 합류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신당을 창당해 연합 공천을 하는 것은 명분이 없고, 그렇다고 독자적으로 호남 패권을 장악하기엔 정치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명지대의 신율 교수는 좀 색다른 분석을 내놨다. 안철수 신당 창당 문제는 민주당의 5·4 전당대회와 결부시켜 생각할 문제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계 개편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주류가 이겨야 한다. 주류가 이겨야 비주류들이 나가는 명분이 생겨 안철수 신당이 이를 수용할 수 있다. 원내교섭단체를 만드는 등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가 돼야지, 단순히 국회에 입성한다고 해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정치적 세가 중요한 여의도 정치판에서 안철수 혼자만으로는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지적이다.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위기론이 여전히 안 후보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이유다.
안철수 후보는 노원구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안 후보의 공식 일정은 보통 새벽 6시 반 출근길 인사로 시작해 저녁 7시 반까지 이어졌다. 동네 상가, 경로당, 어린이집 등을 부지런히 돈다. 공식 일정 사이사이는 비공식 일정으로 가득 차 있다. 대선 때 못지않게 일과가 빠듯하다. <시사저널>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직전인 4월9일부터 10일까지 3일 동안 노원병 지역에 출마한 안철수 후보와 그에 맞서는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를 동행해 밀착 취재했다. 두 후보는 서로 다른 강점을 무기로 내세우며 지역 민심을 잡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안철수다!” 여기저기서 사인 공세
안철수 후보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인지도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일반적으로는 길에서 선거용 띠를 두르고 명함을 건네면 시민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안 후보의 경우는 달랐다. 시민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사인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그와 사진 찍기를 원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그에게 몰렸다. 상가 골목에서 그를 발견한 한 초등학생이 “안철수다!”를 외치며 한달음에 뛰어와 그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있던 어머니는 “아이가 안 후보 팬이다. 오죽하면 나한테 꼭 투표하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안 후보가 미용실 문을 불쑥 열고 들어가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주부들은 동시에 입을 가리며 “어머, 어머”를 외쳤다. 그들은 머리에 파마약과 염색약을 바르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안 후보와 사진을 찍었다. 한 동네 호프집 주인은 맥주잔에 커피믹스를 타 건네기도 했다. 그 가게를 나오며 안 후보는 기자에게 “이 큰 가게를 혼자서 다 보신답니다. 이거 참…”이라고 말하고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안 후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컸다. 안 후보는 이를 자신에 대한 기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시작 전부터 기대치가 높다는 것은 그 기대를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그 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대선 후보 안철수’를 기억하고 있다. 그와 악수를 하면 일부 사람들은 “대통령 되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미 알고 있다는 발언이다. 안 후보는 묵묵히 웃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후보를 사퇴한 부분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이번에는 끝까지 잘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대선 후보 안철수’와 ‘노원병 재보선 후보 안철수’의 모습은 달랐다. 그가 온다면 중계차까지 나갔던 대선 때와 달리 소수의 수행원 몇 명만이 그와 동행했다. 대부분의 현장에 <시사저널> 취재진을 제외한 다른 기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안 후보는 “대선 때와 지금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때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모여줬던 반면, 지금은 내가 직접 곳곳을 돌며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길을 가던 주민이 알아보자 후다닥 달려가 악수하고 명함을 건넸다.
그의 걸음은 ‘걷기’보다는 ‘경보’에 가까웠다. 속도를 맞춰 따라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기자가 “체력이 대단한 것 같다”고 말하자 “미국에 갔을 때 많이 걸어다녔는데 그게 이렇게 도움이 되고 있다. 이걸 두고 미국 가서 사전 선거운동을 한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대답했다.
안철수를 만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자는 안 후보가 방문했던 곳을 돌며 그에 대한 느낌을 물었다. 그가 앞에 있을 때와 달리 차분한 평가를 내놓는 사람이 많았다. 우려를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정치 세력이 갖춰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를 만난 한 주민은 “안철수는 지지하지만 정당이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국회에 들어가면) 우선 마음이 맞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나가며 준비해나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당선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투표율이 얼마나 나와줄지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정치 전문가들은 안철수의 승리를 예측하면서도 다소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놓고 있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적어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게 될 경우 조직 동원력이 좋은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신율 교수는 “지금 북한 이슈에 묻혀 선거에 관심들이 없는데 이렇게 되면 조직이 센 사람이 유리하게 돼 있다”며 “부산 영도에서 김무성 후보가 압도적인 것도 그가 거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새누리당이라는 여당의 힘을 등에 업고 있는 허준영 후보는 안 후보에 비해 유리한 편이다.
허 후보의 일정 또한 안 후보와 마찬가지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허 후보는 빨간색 새누리당 점퍼를 입고 주민들을 만나고 다녔다. 4월10일 오후 그는 한 아파트 양로원을 방문했다. 그가 큰절을 올리자 한 노인은 “우리는 무조건 1번이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원역 아파트 인근 상점 주변을 돌며 명함을 돌렸다. 이미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져 있는 안 후보와 달리 그의 명함을 받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무덤덤했다.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확실히 인지도 면에서는 안 후보가 앞섰다.
그러나 그에게는 안 후보에게 없는 강점이 있다. 그가 명함을 돌리고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동안 한 단체의 간부가 나와 그를 격려하며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쌍화탕을 사와 그와 수행원들에게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게는 안 후보와 달리 강한 여당과 그를 지지해주는 조직이 있다. 경찰청장과 코레일 사장 등 요직을 두루 지내고 집권 여당의 지원까지 받는 그는, 지역 일꾼으로서의 경쟁력을 강조했다.
“안철수 후보가 노원 지역 만만하게 봐” 바쁜 일정 중 틈을 내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와 인터뷰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을 ‘알부남’, 즉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라고 소개했다.
그런 건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곳은 안철수 후보가 출마한 것에 대해 주민들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거부감이 많다. 그래도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 후보가 우세하게 나오는 것 같다. 여론조사는 그때마다 엎치락뒤치락하고, 대상 샘플링에 따라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연연할 것이 아니다. 허 후보가 강조하는 ‘지역 일꾼론’이 뭔가? 다들 무언가 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실천하거나 제대로 일해 본 사람이 없다. 나는 30년 동안 국가를 위해 일했고 실적을 냈다. 일의 맥을 알고 집권당의 뒷받침도 받는다. 가장 큰 국가 조직인 경찰과 가장 큰 공기업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지지부진한 사업들을 챙겨서 정확하게 해낼 자신이 있다. 나는 공직에 임하며 세금으로 큰 사람이다. 이를 환원하는 차원에서 봉사자로서 정치를 하려고 한다. 용산 개발 부도 사태에 대한 책임론도 나온다. 당시 용산 개발 사업은 워낙 땅값을 높게 낙찰받았기 때문에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코레일이었다. 그래서 부도가 나지 않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코레일 사장 재임 시절 경영평가도 잘 받고 운영을 잘해서 직원들 보너스도 주고, 이미 평가가 끝난 이야기다. 지금 경영진이 잘못해놓고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중간계투가 잘 던지고 나갔는데 마무리투수가 경기를 망치고 중간계투 탓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건 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공직 30년 동안 한 번도 전임자 탓을 해본 적이 없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려면 체력이 좋아야 할 것 같다. 나는 마라톤 풀코스도 뛴 적이 있고, 새벽 4시에 산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 시절엔 10㎞ 달리기를 하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체력은 자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