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이 말년에 2부 리그라니!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4.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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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등 위기에 처한 유럽 축구 코리안리거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시트콤 <푸른 거탑>에 나오는 말년 병장의 유행어를 이용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이런 젠장, 박지성이 챔피언십이라니. 말년에 2부 리그라니!’ 농담이 아니다. 정말 다음 시즌 박지성을 프리미어리그가 아닌 2부 리그 챔피언십에서 볼지도 모른다. 박지성의 소속팀 퀸스파크레인저스(QPR)는 6경기가 남은 현재 20개팀 중 19위를 기록 중이다. 잔류 마지노선인 17위와는 승점 7점 차다. 사실상 잔류는 물거품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1월 QPR에 합류한 또 다른 한국 선수 윤석영 역시 강등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강등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은 QPR뿐만이 아니다. 구자철과 지동원이 소속된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 박주영이 뛰고 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 비고도 강등 위기에 있다. 과거 차두리(당시 프랑크푸르트), 김두현(당시 웨스트브로미치)이 2부 리그 강등을 경험한 적이 있지만 유럽 축구 속의 한국 선수가 강등권에 무더기로 몰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QPR은 지난 시즌 최종 라운드에서 기적을 경험한 팀이었다. 최종전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맞대결을 앞두고도 QPR은 강등과 잔류 사이를 오갔다. 당시 QPR이 경쟁 중이었던 팀은 이청용이 소속된 볼턴 원더러스였다. QPR은 맨체스터 시티에게 2-3으로 역전패를 당했지만, 같은 시간 볼턴이 스토크시티와 비기며 승점 1점 차로 가까스로 잔류했다. 영화와 같은 기적이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퀸스파크레인저스(QPR)의 박지성. ⓒ EPA 연합
구자철-지동원, 16위 사수할 특공대

이번 시즌에도 QPR은 영화 같은 전개 속에 시즌 막바지를 달리고 있다. 다만 그 장르가 드라마에서 공포물로 달라졌을 뿐이다. QPR은 지난 4월7일 홈구장인 런던의 로프터스로드에서 벌어진 위건 애슬레틱과의 리그 32라운드에서 1-1 무승부에 그쳤다. 전반 20분 만에 최전방 공격수 바비 자모라의 퇴장으로 힘든 상황에 몰린 QPR은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버텨냈다. 후반 40분 역습 상황에서 로익 레미의 골로 앞서가며 승리를 거머쥐는 듯했다. 이 경기를 잡으면 QPR은 17위 팀과 승점 4점 차로 잔류의 불씨를 살릴 수 있었다. 특히 위건은 QPR과 경쟁 중인 18위 팀으로, 이 경기는 무조건 잡아야 하는 단두대 매치였다. 그러나 후반 추가 시간 프리킥으로 실점하며 승점 차를 좁히지 못했다.

QPR은 사실상 강등이라는 벼랑으로 떨어지기까지 한 발만을 남겨두고 있다. 남은 6경기에서 승점 7점 차를 극복해야 하지만 에버턴·아스널·뉴캐슬·리버풀 등을 상대해야 한다. 최소 4승 이상을 거둬야 하지만 이것은 QPR이 올 시즌 32라운드까지 거둔 승수다. 그야말로 기적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셈이다. 시즌 중반 마크 휴즈 감독을 경질하고 한때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까지 거론된 명장 해리 레드냅을 영입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레드냅 감독은 위건전에서 후반 막판 1골 차 리드 상황에서 공격수를 투입하는 알 수 없는 교체 전략으로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QPR의 강등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이제 관심은 박지성과 윤석영의 미래에 쏠리고 있다. 지금 상황만 보면 베테랑에 고액 연봉자인 박지성은 팀을 떠나고, 유망주인 윤석영은 남을 전망이다. 지난해 여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QPR로 이적할 당시 박지성의 계획은 2~3년가량 QPR에서 뛴 뒤 현역 은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팀이 강등되면 계획은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강등 시 이적할 수 있다는 옵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무슨 수든 찾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미러> <더선> 등 영국 언론도 박지성이 QPR을 떠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등 시 고액 연봉자 정리가 필요한데 팀 내 최고 수준인 주급 5만 파운드(약 8700만원)를 받는 박지성은 정리 대상 우선순위다. QPR의 구단주인 토니 페르난데스 에어아시아 회장 역시 “강등되면 젊은 선수로 팀을 새롭게 리빌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윤석영은 남을 가능성이 크다. 팀이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잡아야 하는, 적은 연봉의 유망주다. QPR 유니폼을 입고 두 달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 데뷔전을 치르지 못했다. 보여준 것이 없어 현실적으로 이적할 방법도 없다. 오히려 챔피언십은 경험을 쌓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의 무대이기도 하다.

박지성과 윤석영의 QPR처럼 두 명의 한국 선수가 뛰고 있는 분데스리가의 아우크스부르크도 잔류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지난 시즌 구자철 영입으로 후반기 대반전에 성공하며 14위를 기록해 잔류의 기쁨을 맛봤던 아우크스부르크는 올 시즌에도 한국 선수의 활약에 기대를 걸었다. 구자철을 볼프스부르크로부터 1년 더 임대했고, 지난 1월에는 공격력 강화를 위해 프리미어리그의 선덜랜드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던 지동원도 임대해왔다.

2011년 아시안컵에서 맹활약을 펼쳐 성을 딴 ‘지구특공대’로 불린 두 선수가 뭉치자 후반기 아우크스부르크는 놀라운 기세를 보였다. 전반기에 1승 6무 10패로 최하위에 쳐졌던 팀이 3월 중순까지 4승 3무 2패를 기록했다. 18위에 있던 순위도 1부 리그 잔류 마지노선인 15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변수가 발생했다. 구자철이 월드컵 최종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카타르전에서 옆구리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고 만 것이다. 치료까지 6주가 걸려 구자철은 사실상 시즌 아웃된 상황이다.

구자철이 빠진 가운데 지동원은 홀로 분전 중이다.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는 플레이메이커와 측면 공격수를 모두 소화하던 구자철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2연패 중이다. 순위도 16위로 내려갔다. 17위 호펜하임에 승점 1점 차로 추격당한 상태다. 분데스리가는 17, 18위가 2부 리그인 분데스리가2로 자동 강등되고 16위는 2부 리그 3위와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15위가 목표이지만 최소한 16위를 지켜야 플레이오프를 통해 잔류를 노릴 수 있다. 15위인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승점 5점 차로 벌어져 있어 플레이오프 진출이 현실적 당면 과제로 여겨지고 있다. 플레이오프가 열리는 5월 말에는 구자철도 출전이 가능하다. 지동원만 남은 아우크스부르크는 남은 6경기에서 16위 자리를 어떻게든 사수해야 한다.

지난 1월 QPR에 합류한 윤석영. 사진은 지난해 7월 런던올림픽 예선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드리블하는 모습. ⓒ 연합뉴스
박주영, 잃어버린 신뢰와 멀어지는 잔류

올 시즌 아스널에서 셀타 비고로 임대된 박주영도 불안하다. 팀은 승격한 지 1년 만에 2부 리그로 내려갈 판이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 후 스페인에서 새 희망을 찾으려 했던 박주영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최근 박주영은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다. 이아고 아스파스와 파비안 오레야나에 밀려 주로 벤치에 머물렀던 박주영은 아스파스가 경기 중 상대 수비수에게 박치기를 해 4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하자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전(무승부)과 라요바예카노전(패배)의 박주영에 대한 스페인 언론의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바르셀로나전이 끝난 뒤에는 ‘북한의 도발 때문에 정신적으로 쫓겨 부진했나’라는 평을 받았고, 라요바예카노전 후에는 ‘박주영은 완벽히 실패한 영입이다’라는 직설적 비판까지 받았다.

올 시즌 초만 해도 박주영은 장밋빛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축구 첫 메달을 안기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셀타 비고 팬들에게 큰 환대를 받으며 입단해 이른 시점에 데뷔골을 터뜨릴 때만 해도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줄 알았다. 하지만 득점을 꾸준히 보여주지 못하며 벤치에 앉는 시간이 길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에게 믿음을 보내던 파코 에레라 감독도 성적 부진으로 전격 경질됐다. 대표팀의 최강희 감독도 지난 3월 카타르전에서 박주영을 외면했다. 팀 내 상위권 연봉을 받는 아시아 선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스페인 언론은 거리낌 없이 비난의 십자 포화를 날리고 있다. 박주영과 함께 셀타비고의 백업 공격수로 뛰고 있는 마리오 베르메호가 “팀 성적이 중위권만 됐다면 박주영이 이런 대접은 받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성원을 보내야 한다”며 안타까운 호소를 하기도 했다.

박주영과 셀타 비고는 작별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 현재 셀타비고는 6승 6무 18패로 리그 19위를 기록 중이다. 프리메라리가는 17위까지 리그에 잔류하고 나머지 3팀은 강등된다. 잔류를 하기 위해 진입해야 하는 17위와는 승점 3점 차다. 격차가 크지 않아 뒤집을 수 있지만, 현재 지휘봉을 잡고 있는 아벨 레시노 감독은 박주영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눈치다. 1년 임대 계약 종료 후 팀을 떠나는 게 예정된 운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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