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역사를 찾습니다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04.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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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3·1절을 어떻게 읽나요?” 학생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합니다. “삼점일절이요.” 같은 또래의 또 다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이완용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이완용이 누구입니까?” 그 학생이 답합니다. “일제와 맞서 싸운 분이요.” 코미디 프로에 등장한 문답이 아닙니다. 얼마 전 국내 한 방송 뉴스에서 기자가 거리에서 직접 학생들을 만나 묻고 들은 내용입니다. 이 학생들뿐만 아닙니다. 실제로 게임 캐릭터 이름은 줄줄 외면서도 역사 얘기만 나오면 ‘멘붕’이 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삼일절을 삼점일절로 읽고, 역사적 인물·사건에 대해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이들만의 잘못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학교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 교실에서 역사는 이미 찬밥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배우지 않아도 되는, 쓸모없는 과목으로 전락합니다. 대학 입시에 꼭 필요한 과목이 아니니 자연히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도 이렇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한 주에 최소 5시간 역사 수업을 받습니다. 유럽 국가들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사실상 역사 과목에서 졸업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어른들은 아이들을 향해 툭하면 역사의식이 없느니, 문제의식이 없느니 하며 눈총을 줍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과부가 그동안 동거해왔던 과학기술을 분가시키고, 오랜만에 독방을 차지한 것은 일단 잘된 결정입니다. 최소한 국가 백년대계라는 교육이 다시 무게를 잡고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된 셈입니다. 더불어 정권에 따라 널뛰듯 흔들려왔던 교육 정책도 바로 설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대학 입시를 둘러싸고 잡음이 적지 않습니다. 내년부터 적용될 ‘선택적 수능’ 등 논란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55쪽 기사 참조).

지난 이명박 정부를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경쟁’입니다. 샐러리맨으로서 능력을 앞세워 출세했던 대통령이 집권해서인지 사회 전반에서 경쟁 분위기가 더 고조되었다는 것이 다수의 평가입니다. 엘리트주의가 기승을 부린 교육 체제에서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말도 곳곳에서 쏟아졌습니다.

이제 교육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열 명 중 여덟 명은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오락 가락 입시 정책으로 더는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대입이라는 경쟁의 올가미를 과감히 벗겨내고 아이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역사를 충분히 배우게 하고,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체육 시간도 크게 늘려 떨어진 체력을 되찾게 해주어야 합니다. 수업도 주입식이 아닌 토론 형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현대 교육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스탈로치는 “입으로만 듣는 교육은 부스러기가 되어 학교에서 오는 길에 잊어버리고 만다”고 했습니다.

역사를 아는 사람만이 역사를 제대로 만들어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줄 교육이 지금 절실합니다. 아이들이 과거도 모른 채 미지의 미래로 나가게 내버려둬선 안 됩니다. 과거를 몰라서 당하는 아픔이 얼마나 많은지는 역사가 이미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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