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돌 움직여서 위를 흔든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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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 감사원장 유임 둘러싼 청와대와 감사원 갈등설

권력의 상징 청와대는 북한산을 배경으로 제일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아래 국무총리실과 정부청사 등이 죽 위치한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의 존엄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딱 하나 예외가 있다. 바로 감사원이다. 감사원은 청와대보다 더 북쪽으로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청와대까지 포함해서 성역 없이 모든 국가 기관을 감사하라는 뜻이다. 헌법적으로 독립기구인 감사원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감사원의 수장 교체 문제를 둘러싸고 지금 청와대와 감사원 간 불꽃 튀는 신경전이 포착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과 양건 감사원장의 갈등설로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양건 감사원장이 4월16일 국회 법사위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감사원도 몰랐던 사무총장 전격 교체

4월18일 감사원의 대(對)언론 창구인 공보담당관실은 언론사의 문의 전화로 온종일 바빴다. 김정하 감사원 사무총장(정무직 차관급) 등 고위 간부들의 거취와 관련한 기자들의 문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앞서 이날 오전 일부 언론은 ‘전날 김 총장과 1급 간부 5명 등 감사원 고위 인사들이 청와대에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첫 언론 보도가 나온 지 한나절 만인 같은 날 오후에는 김 총장의 후임으로 김영한 제2사무차장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김 차장은 이튿날인 19일 양원장에 의해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 제청됐다.

감사원의 주요 보직 인사와 관련한 보도가 쏟아졌지만 정작 감사원은 뒤통수를 맞은 분위기였다. 감사원 공보담당관실 관계자는 “우리도 언론 보도를 본 후 뒤늦게 내용을 인지해 아직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다른 언론사에도 구체적인 확인은 해주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관계자는 감사원 인사 관련 보도가 나오기 불과 이틀 전인 4월16일 기자와 만나 “항간에 감사원 사무총장 교체설이 떠돌지만 내부적으로는 전혀 움직임이 없는 상태”라며 “김 총장이 지난해 11월 임명된 만큼 유임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뒤쫓는 감사원 내부 분위기와 달리 정치권 등 감사원 외부에서는 오히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담담해하는 분위기다. 더 나아가 감사원장 교체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감사원과 청와대가 양건 감사원장의 거취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뒷말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양 원장이 이명박(MB) 정부 시절 임명되긴 했지만 헌법적으로 독립기구의 수장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데다 무엇보다 임기가 아직 2년 이상 남아 있어 유임될 가능성이 점쳐졌다. 결국 양건 감사원장은 유임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양 감사원장은 유임됐지만 감사원과 청와대 간 갈등은 진화되지 않았고, 감사원 사무총장 인선을 둘러싸고 다시 대립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유임 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던 양 원장을 ‘식물 원장’으로 만들려는 신호탄이 감사원 사무총장 전격 교체 과정에서 터졌다는 반응이다. 사실상 청와대의 감사원장 교체 시나리오가 가동됐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이상민
“사무총장 교체 카드로 양 원장 압박”

감사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관계자는 사무총장 교체 발표가 있기 전, 기자와 만나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았다. “청와대가 사실상 양 원장에게 ‘알아서 나가라’는 식의 전략을 쓰기로 한 것 같다. 양 원장의 임기를 어쩔 수 없이 보장할 수밖에 없다면, 양 원장이 원장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도록 하는 전략이다.” 그는 자신의 분석을 뒷받침할 증거로 “차후 진행될 사무총장 인선 과정을 지켜보면 청와대의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얼마 후 그의 분석처럼 실제로 최근 감사원 사무총장 인선 과정을 둘러싸고 수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감사원은 사무총장 인선 등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온 직후에야 김정하 전 사무총장과 최재해 제1사무차장, 김영호 제2사무차장, 이욱 공직감찰본부장, 정길영 기획관리실장, 왕정홍 감사교육원장 등 수뇌부 인사 6명이 일괄 사의 표명을 했다고 뒤늦게 확인했다. 감사원측은 이와 관련해 “임기 후반기를 맞은 양 원장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양 원장에게 재신임 여부를 일임하기 위한 결정으로 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감사원 내부에서조차 감사원 사무총장 인선 과정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감사원은 철저히 배제시킨 듯 청와대 주도로 인선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정황 탓이다. 현행 감사원법 제18조에 따르면 사무총장(고위감사공무원단, 4급 이상 간부 포함) 인선은 감사원장의 임명 제청을 통해 청와대가 임면한다. 감사원장과 사무총장의 업무적 긴밀함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사무총장은 사실상 감사원장의 복심이라고 불릴 정도의 핵심 측근이 맡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감사원은 지난해 10월26일 “양 원장이 김정하 제2사무차장을 청와대에 임명 제청했다”고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혔다. 이어 같은 해 11월7일 “청와대는 김정하 제2사무차장을 신임 사무총장에 임명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감사원 수뇌부의 일괄 사의 표명 소식이나 후임 사무총장 유력자의 실명도 모두 감사원이 아닌 청와대 등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기사화됐다. 감사원의 한 감사관은 “감사원장이 임명 제청권을 갖고 있지만, 결국 청와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국무총리의 장·차관 임명 제청권이 유명무실한 것처럼”이라면서도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 사무총장 인선과 비교한다면 이번 인선은 무척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측은 “청와대에 사의 표명을 한 것이 아니라 감사원장에게 사의 표명을 한 것으로 안다. 원장이 숙고한 후 청와대에 (후임 사무총장) 임명 제청을 요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감사원 사이에 불협화음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감사원 사무총장 인선과 관련해서도 이미 한 차례 파열음이 일었다. 청와대는 4월12일 국정원 기조실장 등의 인선 관련 브리핑을 예고했다. 당초 인선 발표 대상에는 감사원 사무총장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인선 브리핑에서는 신임 감사원 사무총장 이름은 제외됐다. 인선 브리핑이 있은 지 5일 만에 감사원 수뇌부가 일괄 사의를 표명했고, 뒤이어 청와대가 내정자를 발표(19일)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양 원장과 청와대가 인선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거나 “청와대가 감사원과의 불협화음이 표면화될 것을 우려해 내부적으로 교통정리를 한 후 인선을 발표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양 원장의 정치적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

감사원과 청와대가 갈등을 빚는 배경을 두고 양 원장의 과도한 정치적 행보가 발단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감사원의 돌출 움직임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가 출범한 지난 1월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꼽은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감사 결과를 감사원이 공식 발표하기도 전에, 특정 언론사에 관련 내용이 유출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감사원은 “감사 정보가 유출된 바 없다”고 부인하지만 정치권은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에 면죄부를 줬던 감사원이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과도하게 충성 행보를 보인 것이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감사원이 원장 유임 논란과 관련해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을 두고서도 양 원장의 정치적 행보와 연결 짓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지난 3월 감사원장 교체 논란이 일자 감사원측은 일부 언론을 통해 “1987년 헌법 개정 때 감사원장 임기가 4년으로 보장된 이후 임명된 원장들은 모두 임기를 보장받았다”고 주장했다. 간접적으로 청와대에 임기 보장을 요구한 셈이다.

이는 가뜩이나 지난 정권 때 임명된 지금의 원장을 불편해하던 청와대 등 현 정부에 공격 빌미가 됐다. 관가 내부 사정에 밝은 사정기관 관계자는 “지난 3월 말 감사원측 인사가 청와대로 찾아가 박 대통령과 양 원장의 독대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청와대측 인사는 ‘유임 결정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무슨 독대 요청이냐’며 핀잔을 줘 돌려보냈다고 한다”고 말했다.

양건 감사원장은 유임됐지만 정치적인 독립성이 생명인 감사원에게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4월16일 국회 법사위 감사원 업무보고에서 여야 위원들은 한목소리로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일부 위원은 “양 원장이 박 대통령의 유임 통보 전화를 받았다며 언론에 자랑하는 것 자체가 독립성에 대한 훼손”이라고 질타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양 원장과 직접적인 대립각은 줄이는 대신, 취임 5개월짜리 사무총장을 교체해 양 원장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고육지책의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주변에서는 보고 있다. 감사원은 내외부 감사위원회의를 관장하는 원장과 실무 감사 등 내부 업무를 관리하는 사무총장으로 나뉘어 업무를 분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결국 새 정부가 임명할 사무총장을 통해 청와대가 감사원 쇄신을 직접 주도할 경우, 양 원장은 반쪽짜리 원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조직 장악력이 떨어질 양 원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양 원장의 업무 스타일을 두고 내부 구성원 개개인마다 호불호는 있을 수 있지만, 정치적인 독립성을 훼손할 만한 행동이라고까지 비난하는 이는 없다”면서 “어떤 원장이나 사무총장이 온다고 하더라도 감사원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런 구조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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