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대통령 ‘총무원장’ 누가 오르나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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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자천타천 10여 명 물망

올해 불교계의 최대 화두는 10월에 있을 제34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다. 조계종은 국내 최대 불교 종단이다. 조계종에는 정신적 지주인 종정을 중심으로 총무원(행정 기능), 중앙종회(입법 기능), 호계원(사법 기능)이 있으나 실권은 총무원장이 갖고 있다.

그래서 조계종 총무원장은 ‘불교계 대통령’으로 불린다. 인사·재정 등을 아우르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조계종의 1년 예산은 300억원 정도인데, 대부분 총무원에서 집행한다. 또 전국 사찰의 주지 임명권, 호법부를 통한 감찰권도 가지고 있다. 여기에다 ‘종교’라는 특수성으로 사실상 속세법이 미치지 않는 성역이다.

그러다 보니 4년마다 열리는 총무원장 선거 때마다 ‘금권 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얼마를 써야 당선된다’거나 ‘누구는 얼마를 뿌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 공격성 폭로전과 비방도 난무한다. 세속에서 벌어지는 선거와 다를 바 없다. 때문에 선거를 치른 후에는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2009년 10월22일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교구별 대의원 스님들이 투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계종단, ‘금권 선거 추방’ 공감대 형성

종단 내외부에서는 4년마다 반복되는 구태를 벗자는 목소리가 높다. 금권 선거의 핵심인 총무원장 선거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지난해에는 조계종 종단쇄신위원회 주도로 ‘총무원장,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를 주제로 좌담회와 공청회를 개최했다.

현행 총무원장 선거는 전국 24개 교구 본사 240명(교구별 10명씩)과 중앙종회의원 81명 등 총 321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뽑는 간선제다. 총무원장 선거 개선 방안의 하나로 거론된 것이,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꿔 금권 선거를 차단하자는 것이다. 또 비구 중심의 선거인단을 사부대중(출가한 남녀 수행승인 비구·비구니, 재가의 남녀 신도인 거사·보살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검토됐다.

하지만 직선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올바른 선거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시점에서 직선제를 도입할 경우 오히려 금권 선거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오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친 종단쇄신위원회는 올해 1월7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총무원장 선거법 개정안’ 등 개정 제안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쇄신위가 제안한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 골자는 ‘선 추천, 후 선출’이다. 이 제도는 2~3명의 총무원장 후보자를 신망받는 인사와 원로의원, 종헌종법기구, 공직자 등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추천하면 교구종회의원 교구 본사 주지, 중앙종회의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방식이다.

현행 선거 방식과 비교해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진일보한 개선책이다. 우선 선거인단을 다양하게 구성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지금은 교구별 대표자 10명과 중앙종회의원이 투표권을 가졌으나 앞으로는 교구종회의원 전체가 참여하도록 했다. 교구종회는 본사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비구니, 재가자 등으로 확대했다. 중앙종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10월에 개최되는 차기 총무원장 선거 때부터 적용된다. 조계종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거일 60일 전인 8월에 예비후보자 등록 공고를 내고, 선거일 50일 전부터 3일간 예비후보자 등록을 받는다.

(위)자승 현 총무원장 ⓒ 시사저널 사진자료, (아래)영담 스님 ⓒ 청와대 제공. 지홍 스님 ⓒ 불광사 제공
자승 현 총무원장 출마가 변수

누가 조계종의 대권을 잡기 위해 출사표를 던질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천타천으로 10여 명의 스님이 거론되고 있다. 지금은 여론과 종단의 동향을 살피면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으나, 석가탄신일(5월17일)이 지나면 출마자가 가시화되고, 8월 초 하안거 결제 기간이 끝나면 출마 선언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때쯤 되면 각 후보의 선거 캠프 사무실마다 스님들이 북적거린다.

차기 총무원장 선거의 최대 변수는 자승 현 총무원장의 출마 여부다. 자승 총무원장이 출마할 경우 사실상 경쟁자가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2009년 선거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자승 총무원장은 조계종의 국회라고 하는 종회의장이었다.

전국 24개 교구 본사 가운데 20곳, 종회의원 80명 가운데 60명이 자승 총무원장 편에 섰다. 종회에는 세속 정치의 정당 역할을 하는 4대 종책 모임(화엄회, 무량회, 무차회, 보림회)이 있었는데, 자승 총무원장은 최대 계파인 화엄회 소속이었다. 지난 선거에서는 4대 종책이 모두 자승 총무원장을 지지했다. 선거에는 세 명의 후보가 나섰으나 자승 총무원장이 90%를 넘는 지지를 얻어 당선됐다. 사실상 ‘합의 추대’라고 해도 무방하다. 조계종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취임 초기 모든 계파를 아우르며 개혁과 화합을 도모했다. 지난해 5월 백양사의 ‘승려 도박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연임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자승 총무원장 반대파 승려들이 도박 장면을 몰래 촬영해 언론에 제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계종 내에도 회오리가 몰아쳤다. 총무원 부·실장들이 사퇴하고, 참회문을 내고, 108배 참회를 했다. 또 종회 5대 종책 모임도 잇따라 총회를 열고 모임을 해체했다. 무차회(5월14일), 무량회(5월31일), 화엄회·법화회(6월5일), 보림회(6월20일)가 해체됨으로써 조계종의 계파는 사라졌다. 종책 모임 해체에는 자승 총무원장의 의중이 실렸다.

하지만 백양사 도박 사건을 폭로한 전 금당사 주지 성호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의 ‘룸살롱 출입 의혹’ 등을 제기하며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혔다. 총무원장 사퇴 요구가 거세지자 자승 총무원장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연임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이 그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총무원장 추천위원회’가 추천하는 방식으로 연임 도전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단지불회 회주 명진 스님은 “약속을 지켜야 하고, 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짧게 말했다.

만약 자승 총무원장의 ‘연임 포기’ 약속이 지켜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내심 ‘포스트 자승’을 꿈꾸던 스님들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질 전망이다. 지난 선거 때 자승 총무원장 공동추진위원장 중 한 명이었던 불교방송 이사장 영담 스님의 출마도 유력해 보인다. 영담 스님은 종책 모임이었던 보림회 소속으로 자승 총무원장 체제에서 부원장급인 총무부장을 지냈다.

총무부장은 총무원의 정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사실상 총무원의 제2인자다. 영담 스님은 정치적인 역량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의장과 보림회가 해체되면서 새로 탄생한 (사)국제구호단체 하얀코끼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영담 스님이 출사표를 던질 경우 자승 총무원장의 직·간접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불광사 회주 지홍 스님도 총무원장 유력 후보군에 올라 있다. 지홍 스님도 영담 스님과 함께 지난 선거에서 자승 총무원장 공동추진위원장에 이름을 올렸다. 1998년 조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11~13대 중앙종회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불광사·금강정사 회주이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공동대표와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그는 어떤 종책 모임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다.

지홍 스님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한테는 (총무원장 출마)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럴 상황도 아니고 그런 생각도 없다”며 출마에 부정적이었다. 총무원장 선거에 대해서는 “우리가 (개혁) 노력을 해온 만큼 이번에는 돈을 쓰지 않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총무원장 후보로) 이름이 거론되거나 나서는 사람들 중에는 총무원장감이 없다. 새로운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중앙종회의장을 역임했던 전남 해남 대흥사 회주 보선 스님의 출마도 점쳐진다. 그는 총무원의 사법부인 호법부장과 11~15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냈다. 지난 선거 때는 무차회 소속으로 자승 총무원장을 지원한 뒤 종회의장에 올랐다. 종의회장 재임 때는 조계종 쇄신위원회가 상정한 사찰운영위원회법, 사찰예산회계법, 선거법 등을 가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서 사찰 운영에 대한 재가자 참여, 사찰 재정 투명화, 공명선거의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 보선 스님은 “아직은 입장을 말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에 때가 되면 (출마 여부를) 말하겠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포스트 자승' 꿈꾸는 스님들

동국대 이사장 정련 스님도 단골 총무원장 후보군이다. 그는 2005년 32대 선거에 출마해 지관 전 총무원장과 박빙의 승부를 펼쳤으나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33대 때도 예상 출마자 명단에 들었으나 실제 출마는 하지 않았다. 정련 스님은 부산의 내원정사를 천막에서 시작해 대규모 사찰로 키운 인물이다. 2007년에는 거제도에 불교계 최초의 재활병원인 마하병원을 설립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다. 종단 내에서는 계파를 초월해 두루 따르는 스님이 많다.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인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수불 스님은 1975년 범어사에서 출가했다. 현재 조계종의 대표 참선 수행처인 안국선원 이사장과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을 맡고 있다. 1989년 문을 연 안국선원은 수불 스님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곳이다. 현재는 부산을 비롯해 서울, 경남 창원시에 선원이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분원이 있다. 참선 대중화를 이루는 데 앞장섰다. 종단 내외부에서 신망이 높다고 알려졌다.

조계종 내의 대표적인 사회·생명운동 승려인 도법 스님도 총무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이자 화쟁위원장을 맡으며 조계종이 구태에서 탈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998년 종단 폭력 사태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을 맡아 종단 내분을 수습했고, 그 이듬해인 1999년부터 불교계의 대표적 사회운동 조직인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지금까지 그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종단의 ‘내분’과 ‘분쟁’을 수습한 해결사다. 그런 만큼 조계종의 개혁을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는다.

2004년부터 월정사 주지를 맡고 있는 정념 스님의 출마도 유력하다. 33대 때도 출마 의지가 강했고, 각계 사람들에게 출마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자승 총무원장에 대한 합의 추대 움직임이 있자 막판에 포기했다.

정념 스님은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으며, 약탈 문화재 환수 활동에 앞장섰다. 실제 의궤가 환수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정념 스님은 중앙승가대 동문회장을 맡았다. 그가 출마하면 중앙승가대 동문들이 든든한 지원 세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불회 회주인 명진 스님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기 총무원장 물망에 올라 있다.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부 때 줄곧 날 선 시국 발언을 쏟아냈다. 자승 총무원장과는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 사찰화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고, 그 후 지금까지 대립 관계로 지내왔다. 명진 스님의 총무원장 출마가 가시화될 경우 당선 여부를 떠나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 총무원장 선거 결과는 향후 정권과 불교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도 주시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종교 편향과 사찰 홀대 등으로 불교계와 끊임없이 갈등하는 관계에 있었다.

총무원장 출마와 관련해 명진 스님은 “아직은 선거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 여러 가지 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때가 되면 할 말을 하겠다”고 말했다. 


2009년 10월28일 태고종 제24대 총무원장 취임식 때 종단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 연합뉴스
제2의 불교 종단인 태고종도 오는 7월 제25대 총무원장 선거를 치른다. 태고종 총무원장 선거법에는 총무원장 임기 만료 2개월이 되는 바로 앞 주에 선거를 실시하도록 돼 있다. 현 총무원장인 인공 스님의 임기가 9월20일이어서 선거는 7월 중순쯤 실시될 예정이다.

태고종 총무원 관계자는 “자천타천 후보로 중앙종회의장인 도산 스님,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낸 월운 스님, 규찰부장을 지낸 현수열 스님이 유력하게 거론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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