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발자국이 너의 것이길 바라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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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범, 최근 강원도 습지에서 흔적 발견…1962년 합천에서 마지막 생포

최근 한국표범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극동표범(아무르표범)에 속하는 한국표범은 1962년 경남 합천 가야산 남쪽 줄기인 오도산 기슭에서 생포된 것이 마지막 개체로 알려져 왔다. 이 표범은 1972년 창경원에서 사진엽서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후 지리산과 설악산 일대에 표범이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1989년 한국표범이 남한에서 멸종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발자국이 발견된 곳은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섬강 인근 습지다. 너비 8㎝의 발자국이 보폭 50㎝로 모래에 찍혀 있었다. 방사 형태의 발가락에 발톱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볼 때 고양이과 동물 발자국으로 보여진다.

1962년 경남 합천 오도산에서 생포된 이후 72년 창경원 엽서로 만들어진 표범 사진.
아름다운 가죽 탓에 마구잡이 포획

고양이과 동물은 보행할 때 발톱을 감추고 다닌다. 사냥을 하거나 싸우는 경우를 제외하면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다. 표범과 발자국이 닮은 고양이과 동물로는 스라소니가 있는데, 표범보다 체구가 약간 작은 데 반해 발자국은 12㎝로 더 크다. 표범 발자국 너비는 8㎝ 내외로 10㎝를 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해당 발자국을 감식한 대형 포유동물 전문가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장은 한국표범의 발자국이 맞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립생물자원관은, 한 과장의 개인적 소견이며 국립생물자원관의 공식 입장은 아니라고 밝혔다.

표범 생존 여부는 현장조사와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검증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이번에 발견된 발자국이 한국표범의 것으로 확인될 경우 정부의 멸종 판단이 적절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될 수도 있다.

표범은 호랑이보다 더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 동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가 뼈의 효능에 대한 맹목적인 미신 탓에 멸종 위기에 몰렸다면, 표범은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가죽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다.

19세기 중엽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모피 시장에서 표범 가죽은 최상품으로 취급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에 따르면, 1925년 표범의 가죽 한 장 가격은 50~150원이었다. 보통 60원 내외였는데 이 돈이면 쌀 열 가마니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한일강제병합 초기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매년 100마리 이상의 표범이 포획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그 수가 반으로 줄었지만 이때까지도 우리나라에 호랑이와 함께 표범이 상당수 서식하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시사 잡지 <라이프>에 48마리의 한국표범 가죽을 이어 붙여 만든 카펫 사진이 표지를 장식한 적도 있었다. 명성황후 접견실에 깔려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카펫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에 의해 유출됐다. 뉴욕 주재 한국총영사관이 반환을 요청해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으로 반환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이 2011년 해당 카펫의 소재 파악에 나서자 국립중앙박물관이 표범 가죽 카펫을 소장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표범의 생태는 다른 동물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표범이야말로 야생 세계에서 사냥 기술이 가장 뛰어난 동물이라고 평가한다.

갈색 몸바탕에 10㎝가량의 흑색 고리 모양의 무늬를 지닌 표범은 사슴, 고라니, 노루, 멧돼지 등을 주식으로 하는데 조류, 양서류, 파충류도 잡아먹는다. 은신처는 주로 바위굴이다. 호랑이와 달리 물을 싫어해 물속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주로 야간에 은밀히 움직이는데, 위험을 느꼈을 때는 나무 위로 잘 올라간다. 번식기를 제외하고는 홀로 생활한다.

가 보도한, 한국표범 가죽을 이어붙여 만든 카펫.
정부 멸종 발표 후에도 목격담 이어져

우리나라 민화 가운데 호랑이 옆에 표범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옛날 사람들은 호랑이와 표범을 통칭해 범이라고 불렀다. 둘을 구분하지 않아 표범을 호랑이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를 봤다는 이야기는 많은 데 반해 표범을 봤다는 이야기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과거 개를 잡아먹는 야생 동물을 지방에서는 ‘개호자’라고 불렀는데, 이는 ‘개를 잡아먹는 호랑이’를 뜻한다. 그런데 실제 호랑이는 개보다는 돼지, 소 등을 잡아먹었고 개를 즐겨 먹은 것은 표범이었다고 한다. 표범을 호랑이로 여긴 것이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지 10년이 넘은 2000년대에 들어서도 국내에서 표범과 관련한 목격담은 계속 이어졌다. 2002년 5월에는 강원도 인제군에 위치한 가마봉과 소뿔산을 연결하는 능선에서 표범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발견됐다. 너비 8㎝에 길이 9㎝, 보폭은 95㎝였다. 이 지역은 2000년 겨울 주민이 눈 위를 걷고 있는 표범을 목격했다고 밝힌 곳이다.

2003년 7월에는 경남 하동군 지리산 국립공원 내 개천에서 너비 8.5㎝, 길이 9㎝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이 지역 역시 표범이 서식하고 있다는 주민 제보가 있었던 곳이다. 2006년 12월에는 강원도 양구군 백석산 비무장지대와 연결된 대암산에서 표범으로 추정되는 눈 위 발자국이 발견됐다.

표범이 포식한 흔적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사체가 발견된 경우도 있다. 2004년 6월에는 목 부위에 폭과 깊이가 각각 5㎝ 정도인 송곳니 자국이 남아 있는 고라니가 발견됐다. 가죽은 발톱으로 깊게 파였고, 내장도 모두 파 먹힌 상태였다고 한다.

2006년 6월에는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 국립공원 내 한계령과 점봉산을 연결하는 능선 안쪽에서 머리와 앞다리가 뜯겨나가고 엉덩이 부분에 폭 5㎝ 정도의 송곳니 자국이 남아 있는 암노루가 발견됐다. 역시 가죽은 발톱으로 깊게 파여 있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한국표범이 아직 남한에서 서식하고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상훈 과장은 “민간에서 사냥꾼들이 표범을 포획했더라도 법에 저촉되다보니까 공개를 하지 않는다. 정부 기관에서 조사를 나가면 아무래도 말하기를 꺼린다”며 “이런 분들로부터 정보를 확보해 전문가들이 하나하나 검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과장은 또 “확인 작업을 통해 국내에 표범이 생존하는지를 우선 확인하고, 생존한다면 얼마나 되는지, 또 서식지의 환경은 어떤지, 위험 요인은 없는지, 관리 보존은 어떻게 할지 등 다양한 부문에 있어서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이번 발자국 발견을 계기로 미미했던 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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