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죽어 구천을 떠돌다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4.24 13: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 속에서 만난 사람│<불의 꽃> 펴낸 소설가 김별아

김별아 작가가 ‘나 같으면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이라는 한 많은 조선 여인을 소설 속으로 끌어왔다. 김 작가는 ‘조선 여성 3부작’을 쓰고 있는데, 제1부작 <채홍>에 이어 <불의 꽃>(해냄 펴냄)으로 또 한 명의 이야기를 막 끝냈다.

이 소설은 <세종실록>에 전하는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柳)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通奸)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라는 한 줄의 기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세종 초 벌어진 간통 사건으로 참형에 처해진 유녹주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 시사저널 전영기
김 작가는 이 여인이 왕의 명으로 저잣거리에서 참형을 당했지만, 정작 죄인은 귀양 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간통 사건은 일방이 죄를 지은 게 아닌데도 남자들이 죽임을 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 또한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4월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성적인 억압을 받았던 시대에는 억울해 죽을 것 같은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 많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없앨 수 있는 사랑이라면 시작도 없었을 것”이라며 15세기 고려의 풍속이 남아 있던 조선 초에 이런 간통 사건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실록에는 훗날 세종이 자신이 내린 징계가 과했다며 후회했다는 내용이 전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여인의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는 김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했을 법한 순정한 사랑 이야기를 채용했다. <불의 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도 제도에 억눌려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되지만, 그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추구하다 죽음을 맞은 조선 시대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묻는 소설이다. 남성의 시각 속에서 자리를 잃어버린 여성의 이야기를 다시 펼치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순애보다. 환경이 바뀌고 독자의 성향이 바뀌는 시기에 독자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늘 고민한다.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 사랑 이야기를 썼다.”

김 작가는 “올해 데뷔 20년차인데 그중 절반은 무명작가로 살았다. 이제는 나만의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은 익숙해질 수 없는 장르다. 문학은 필패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김 작가는 역사 속에 가려진 여성들을 발굴해 그 삶과 사랑을 전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고, <논개> <채홍> 등을 펴내며 실존 인물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역사는 교훈이 아니다. 옛 사람의 일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며 그가 3부작이라는 조금 긴 노정을 계획한 이유를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