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유학생 선발 안 된다?
  • 이규대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0: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도선사협회, 교환 학생 선발 과정에서 성차별 의혹 협회측 “장학금은 주는 사람 마음이다”

해양수산부(해수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도선사협회의 장학 사업 과정에서 성차별이 있었다는 의혹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해수부의 수장인 윤진숙 장관은 여성이다. 여성 대통령 행정부, 여성 장관 부처의 관련 단체에서 이른바 ‘유리 천장’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한국도선사협회는 ‘도선사’라는 이름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구성한 단체다. 도선사란, 말 그대로 배를 인도하는 사람이다. 항만·운하·강 등에서 선박에 탑승해 해당 선박을 안전한 수로로 안내하는 일을 한다.

항만이나 위험한 수로에서 선장 대신 배의 움직임을 지휘해야 하므로 고도의 전문 기술을 요한다. 도선사는 고임금 전문직으로도 유명하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0~11년 조사에 따르면 도선사의 평균 연봉은 1억539만원이다. 고연봉직으로 꼽히는 변호사나 의사보다도 높다.

한국도선사협회는 고액 연봉자인 회원들의 회비를 바탕으로 한 해 8억원 상당의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특히 해운 관련 후진을 양성하는 한국해양대 등에서 활발한 장학 사업을 벌였다.

해당 의혹은 한국해양대 재학생 2명을 ‘글로벌 해운 인력’으로 선정해 해외 유학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해외 유학생 선발 과정에서 성차별 의혹이 불거진 서울 여의도의 한국도선사협회. ⓒ 시사저널 이종현
심사위원 평가 1위 여학생, 최종 발표에서 제외

‘글로벌 해운 인력’으로 선정된 학생은 미국에 1년간 교환 학생으로 갈 기회를 갖는다. 매월 200만원씩 총 2400만원의 유학 자금을 지원받는다. 2009년부터 한국해양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유학생을 선발해왔다. 지원 액수가 크고 스펙을 쌓는 데도 좋아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해양대 교수들이 심사위원이 돼 지원자를 평가한다. 공인 영어시험 점수, 영문 자기소개서, 학과 성적, 면접 등이 기준이다. 올해 심사위원들은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6명을 선정, 순위를 매겨 협회에 추천했다. 이를 참고한 협회측이 최종 2명을 선정하는 식이다.

한국해양대 4학년인 신 아무개씨(여)는 올해 초 한 교수로부터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심사위원들의 평가 결과 자신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환 학생 선발 과정을 보면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높게 받은 학생 순으로 낙점됐다. 신씨는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막상 발표된 결과는 달랐다. 심사위원 평가에서 2위를 기록했던 남 아무개씨, 최종 여섯 명의 후보자에 속했던 전 아무개씨가 교환 학생으로 뽑힌 것이다. 둘 다 남학생이다. 뜻밖의 결과에 당혹한 신씨는 교수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교수들 역시 예상과 다른 결과에 놀랐다고 한다.

심사위원의 생각과 협회측의 결정이 달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학생을 선발할 최종 결정권은 엄연히 장학 사업을 진행하는 협회에 있기 때문이다.

관건은 심사위원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신씨의 탈락 사유가 적절한지 여부다. 일부 교수는 협회측에 자신들의 심사와 다른 결과가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을 요구했다.

문제는 나종팔 도선사협회 회장이 “여자라서 안 된다”는 취지의 의사를 교수들에게 전달했다는 데 있다. 그 근거로 ‘과거 혜택을 받은 일부 여학생들이 해운 계통이 아닌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다’는 점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발언이 실제로 있었다면, 잘못된 인식을 근거로 여성을 배제한 성차별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기자는 이런 의혹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4월2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도선사협회를 찾았다. 심사위원 평가에서 1위를 기록한 학생을 탈락시키는 데 적용한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협회 관계자는 “추천한 여섯 명 중 어떤 학생을 뽑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없었다. 일단 성적순으로 4명을 추렸다. 4명 중 2명은 가정 환경 조사 결과, 학업 진로 의사, 자기소개서 등을 보고 회장이 결정했다. 장학금은 주는 사람이 선의를 가지고 준다. 주는 사람 마음이다. 어떤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평가 점수가 가장 높았던 신씨에 대해서는 “그 학생은 성적도 나쁘다. 내가 30년 전에 (한국)해양대학교를 나왔다. 만약 그 학생이 협회에서 선의로 한 부분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언론에 투서했다면, 내가 가진 인맥과 힘을 동원해서라도 그 학생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회 관계자의 말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다. 기자와 마주앉은 자리에서 확인한 서류에 따르면, 심사위원 평가에서 2위를 기록한 후 협회측으로부터 최종 대상자로 선정된 남 아무개씨의 성적이 3점 초반대(4.5점 만점)로 가장 낮았다. 협회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남씨는 교환 학생 대상자로 선정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협회측은 “남씨는 어렸을 때 영국에서 자란 경험을 인정받아 선정됐다”고 해명했다.

신 아무개씨의 성적이 나쁘다는 주장도 사실과 달랐다. 신씨의 학점은 4점 초반대로 우수했다. 최종 후보에 오른 6명 중 세 번째였다. 결과적으로 협회측의 해명은 여러모로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간의 관행과 달리 신씨를 탈락시킨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협회 간부 “기사 나가면 지원 끊겠다” 협박

해양대학교 교수들은 입을 닫았다. 해당 의혹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알려진 이 아무개 교수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논란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는 듯했다. 이 대학 김 아무개 학장은 “협회가 나름의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관련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교수들이 장학생 선정 결과에 불만을 느끼고 문제를 제기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도선사협회 관계자는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교수들로부터 선정 결과에 대해 항의하는 전화가 세 번 왔다”고 말했다.

기자는 1등으로 올랐다가 최종 탈락한 신 아무개씨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신씨는 기자의 연락인 것을 확인한 이후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문제가 대외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듯이 보였다.

어렵게 신씨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어머니도 인터뷰를 망설였다. 목소리에는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 선후배 관계나 향후 취업 등에 문제가 생길까 두렵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한국도선사협회의 한 고위 임원은 4월26일 오후 기자에게 전화해 “만약 기사가 나가면 한국해양대에 대한 지원을 모두 끊겠다”고 말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신씨 어머니는 “우리 집은 해외 유학을 보낼 만한 여력이 없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왔다. 그 결과 좋은 기회를 얻을 것 같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겨 많이 힘들어한다. 아무쪼록 좋은 방향으로 문제가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