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국회의원 127명 ‘신입 안철수’에 벌벌 떤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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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의 아이콘’ 안철수가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여의도 국회로 화려하게 입성했다. 기껏해야 ‘초선 국회의원’ 꼬리표를 얻었지만, 그가 불러올 정치권의 후폭풍이 정치권 전반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먼저 대선 패배 이후 쇄신을 못 하던 민주당은 안철수발(發) 야권 재편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미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안철수 신당’은 야권 전체를 집어삼킬 듯 거대한 블랙홀이 돼 민주당의 턱밑까지 성큼 다가왔다.

 

“민주당은 난파선이다. 안철수 신당이 당장 출현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의 민주당이 불만스러워 떠나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민주당 탈당을 고민하고 있는 한 보좌관의 말이다. 4·24 재·보궐 선거에서 여의도 입성에 성공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 그의 정치적 행보와 무관하게 127석의 제1야당 민주당은 밑바닥부터 조금씩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 분열의 촉진제일 뿐이고, 이미 분열의 징후는 민주당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4·24 재보선 다음 날인 25일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민주당 대의원과 권리당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탈(脫)민주당’ 러시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 중 한 명은 “안철수 신당으로 옮길 수도”

‘안철수 신당’이 만들어지면 ‘당장 신당으로 옮기겠다’고 답한 이가 6.0%, ‘좀 더 지켜본 후 신당으로 옮길지 여부를 고민하겠다’가 26.9%로 각각 나타났다. 32.9%의 대의원 및 당원이 민주당을 떠나거나 떠날 것을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에 계속 남을 것’이라는 응답은 62.0%였다. 세 명 중 한 명꼴로 민주당에서 안철수 신당으로 옮길 수도 있음을 내비친 셈이다.

지난 대선과 달리 이번 보궐 선거에서 민주당과 분명한 선 긋기를 한 안철수 의원의 향후 행보는 ‘탈민주당’ 행렬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안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만 해도 새 정치를 기치로 민주당과 단일화 협상을 전개한 동지적 경쟁자였다. 지루한 갈등 끝에 안 의원의 전격적인 후보직 사퇴로 민주당은 자신들의 후보로 대선을 치렀다. 4개월 후 민주당은 안 의원이 출마한 보궐 선거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후보를 못 냈다는 게 맞다. 겉으로만 본다면 한 차례씩 양보를 주고받은 셈이다. 그런데 정작 둘 사이에는 미묘한 적대감과 불신이 깔려 있다.

지난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 당시와 비교하면 쌍방의 처지가 대조적이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시종일관 수세였던 안 의원이 이제는 정통 야당을 자처하는 ‘야권의 맏형’ 민주당의 운명을 손에 거머쥔 형국이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안 의원의 재등장으로 존립 기반마저 붕괴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회를 등에 업은 안 의원이 야권 재편의 블랙홀이 된 데 반해, 민심을 잃고 추락하고 있는 민주당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4월24일 서울 노원병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지지자들과 기쁨을 함께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안철수, 마음에서 민주당은 이미 지웠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대선 직후 민주당과의 결별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나의 신조는 한 번 한 실수는 두 번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월24일 밤 안 의원의 서울 노원병 보궐 선거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지난해 안 의원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ㅇ씨의 머릿속을 스친 ‘안철수 어록’ 중 한 구절이다. 이 발언은 지난해 12월 초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직후, 안 의원이 자신의 캠프 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내뱉은 말이다. 당시 이 모임에 참석했던 ㅇ씨는 4월25일 기자와 가진 통화에서 뜬금없이 당시 발언을 소개했다. 안 의원과 민주당의 향후 관계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

ㅇ씨의 부연 설명이다. “민주당의 공세와 정권 교체 여론에 떠밀리다시피 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안 의원이 한 이 말은 그가 앞으로 민주당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를 암시한다.” ㅇ씨의 말은 안 의원의 핵심 참모 중 한 명인 김성식 전 한나라당 의원의 달라진 위상으로 이어진다. ㅇ씨는 “지난 대선 당시 김 전 의원은 박선숙 전 민주당 의원과 함께 대선 캠프의 공동본부장을 맡았지만, 문재인 전 후보와의 단일화를 추진했던 박 전 의원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며 “하지만 김 전 의원의 위상은 4·24 보궐 선거에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김 전 의원은 보선 때 안 캠프에서 별도의 직책을 맡지 않았지만 사실상 선거를 총괄 지휘했다”고 밝혔다. 그는 “안 의원의 독자 세력화를 강하게 주장했던 김 전 의원의 위상이 달라진 것은 ‘두 번 실수는 하지 않겠다’는 안 의원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지난해 12월 초 캠프 관계자들에게 “두 번 실수는 없다”고 말하며 민주당을 마음에서 지웠다는 것이다.

이른바 ‘안철수와 민주당의 전면전’은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안 의원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지만 발걸음이 바쁘기 때문이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의 전망은 이렇다. “안 의원이 펼칠 새 정치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이 무척 크다. 안 의원이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또 다른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이제는 구호가 아닌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 비전을 구현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안 의원이든 민주당이든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당장 섣불리 충돌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전면전은 시기상조라는 전망도

안 의원의 최측근인 김성식 전 의원도 4월1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대안적인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까지 발전시키는 문제는 저희 역량이 쌓여야 하는 문제이고 숙제로 남아 있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안 의원은 더는 지난 대선 때 보여줬던 ‘유약한 정치 초년병’이 아니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 막후에서 안 캠프측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안철수 당시 후보의) ‘양보설’을 언론에 퍼뜨리고 있다”며 약자의 억울함을 보였다. 지난해 11월15일 당시 안 후보가 직접 나서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안 의원측 한 인사는 4월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 노원병 선거에서 과거 민주당 지지층으로 분류되던 호남 출신들이 안철수 의원 쪽으로 결집한 것을 안 의원측도 잘 알고 있다”면서 “이미 호남은 민주당으로부터 마음이 떠난 게 아니냐. 오히려 민주당보다 호남에서 안철수 신당이 더 지지를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의 발언은 안철수 대선 캠프의 전 국정자문위원실 부실장을 지낸 이상갑 변호사의 공개 발언과도 맥을 같이한다. 이 변호사는 4월25일 T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을 리모델링한다고 (해서) 국민들로부터 요구받고 있는 (정치 개혁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심장이기도 한 광주·전남에서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싹 헐고 다시 짓는 재건축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다”고도 했다. 대선 패배 이후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민주당에게 사실상 ‘무장해제를 하라’는 신호탄으로 읽히는 발언들이다.

안철수 의원측은 민주당을 향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정작 전당대회(전대)를 앞둔 민주당은 자중지란에 빠진 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친노·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대표 경선은 계파 갈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친노·주류측 후보인 이용섭 의원과 강기정 의원이 4월28일 단일화에 합의한 이후 양자 대결 양상으로 바뀐 대표 경선은 다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시사저널>이 4월25일 실시한 대의원·권리당원 설문조사에서도 이용섭 의원과 김한길 의원의 맞대결이 성사될 경우 오차 범위 내 접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안철수 효과’는 당장 민주당 전대에도 불어닥칠 전망이다. 안 의원측의 칼날이 날카로울수록 친노·주류측의 입지가 줄어드는 모양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 의원과 대립해온 친노·주류보다는 비주류가 향후 (안 의원측과의) 경쟁이나 통합을 위해서도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대의원·당원들 사이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 내부에서조차 “기존의 민주당 지도부 그대로 가서는 자력갱생을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온다. 기존의 민주당 지도부란 친노·주류를 일컫는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4월13일 부산 영도에 출마한 김비오 후보의 지원 유세를 벌이고 있다. ⓒ 연합a뉴스
안철수 바람에 친노·주류 입지 위축

민주당으로서는 5·4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될 새 지도부와 이후 당 혁신의 향배가 회생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안철수 의원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 유지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종속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이에 대해 당 대표 후보로 나선 김한길 의원은 4월24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변화의 모습만 보이면 안철수 후보에게 박수하고 있는 유권자 대부분을 다시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안 후보의 향후 선택의 폭도 그리 넓지 않다고 본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민주당이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쥐게 될지 여부는 역시 계파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느냐에 달려 있다. 수도권 지역 한 초선 의원은 “그동안 민주당이 반성하고 쇄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말만 있을 뿐 행동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며 “계파 갈등뿐만 아니라 중앙당의 비민주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나 권리당원 등 기층 당원에 대한 배려를 위한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호남 지역 한 초선의원은 “민주당이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며 “계파 갈등을 부추길 생각은 없지만, 지금껏 당을 이끌었던 지도부가 실패를 인정한다면 이번에는 새로운 지도부에게 기회를 주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다. 모두 ‘안철수 세력’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한나라당처럼 폭삭 망해야 정신 차리나”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두 번의 뼈저린 선거 패배를 경험했다. 지난 1997년과 2002년 대선 패배가 그것이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서 ‘준비된 대통령론’을 들고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또 2002년 대선에서는 부정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화두로 내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패배의 쓴맛을 봤다.

당시 한나라당은 패배의 아픔을 통렬히 반성하지 않고 안이하게 대처한 나머지 패배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민주당과 비슷하다. 1997년 대선 패배 직후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제3 후보인 이인제 후보의 출마로 여권 표가 분산된 것이 패배의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2002년 대선 때도 ‘정몽준 책임론’을 펴면서 당 내부의 쇄신과 혁신 노력을 게을리했다.

패배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지 않고 상황 논리만 내세우던 한나라당은 2004년 헌정 사상 유일무이한 현역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후 역풍을 맞았다.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으로 당이 존폐 위기에 직면하고 나서야 비주류였던 박근혜 의원을 당 대표로 내세우면서 ‘천막 당사’ 체제로 전환했다. 또 특정 계파를 초월한 푸른모임·민본21 등 혁신 모임이 만들어져 당 쇄신에 나섰다. 그 후 등 돌렸던 민심도 되돌아왔고, 결국 ‘10년간 야당의 서러움을 겪었다’던 한나라당은 2007년 정권을 되찾았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한나라당은 두 번의 대선 패배 이후에도 당 내부에서 문제를 찾지 못해 당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며 “민주당도 두 번의 대선 패배를 승복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다툼을 벌인다는 점에서 과거 한나라당과 닮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민주당은 지금 한나라당이 걸어왔던 2003년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며 “한나라당이 폭삭 망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민주당은 아직 위기의 징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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