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부른 계파주의 이번 전대서 깨야”
  • 감명국 기자·정리│문정빈 인턴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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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표 경선 나선 김한길 의원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어느 날.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한 아파트 단지 풍물장터 행사장에 인기 탤런트 최명길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최씨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거기에는 기자도 끼어 있었다. 5분 후쯤 김한길 의원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며 “안녕하십니까? 최명길씨 남편 되는 김한길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구로을 지역에 출마한 김 의원의 색다른 선거 전략이었다. 그 총선에서 김 의원은 서울의 열린우리당 당선자 가운데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5·4 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한길 의원과 자리를 함께한 기자는 인터뷰에 앞서 9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절묘한 선거 전략이었다”는 기자의 말에 김 의원은 “꼼수 부린다고 생각한 것 아니고요?”라며 웃었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특유의 기획력과 아이디어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주역이 된 김 의원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장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등 당·정·청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시사저널>은 4·24 재보선이 치러지고 있던 4월24일 김 의원과 마주 앉았다.

 

ⓒ 시사저널 이종현
4월24일 현재 3파전으로 진행되는 대표 경선에서 여론조사상 2, 3위를 달리고 있는 강기정 의원과 이용섭 의원이 단일화에 나섰다. 경선은 좀 더 재미있는 양상이 되겠지만 일각에서는 “또 계파 대결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대 후보들의 단일화가 나한테 얼마나 불리할까 하는 걱정은 ‘조금’이다. 더 큰 걱정은 국민들이 이런 모양새를 어떻게 볼까 하는 점이다. 그분들이 ‘아름다운 단일화’라고 하는 것과 달리, 외부에서는 별로 아름답다고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부분들이 걱정된다. 그분들이 지금까지 말해오던 게 이번 전당대회는 ‘계파 전대’가 아니라 ‘혁신 전대’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마치 계파에 기대는 후보인 양 말해왔는데, 그분들이 말하던 혁신 전대가 고작 이런 것이었나. 그분들은 또 ‘호남 대표론’을 얘기한다. 하지만 호남 대의원들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다. 당 대표가 호남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호남 사람은 안 된다는 건 아닐 것이다. 호남 대의원들의 요구에 의해 단일화한다는 것은 호남 대의원들에게 상당히 실례를 범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 의원에 대해 ‘비주류의 수장’ ‘비노의 좌장’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우선 정확하게 말해야 하는 것이, 비주류라는 것은 계파가 아니다. 비주류라는 것은 주류가 못 된 사람들의 총칭이다. 나를 가리켜 ‘비주류의 좌장 격’이라고 쓰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수장이나 좌장이라고 하면 전혀 사실과 다른 얘기가 된다. 나는 비주류를 한 번도 집합시켜본 적이 없고, 비주류는 이래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친노와 주류는 계파라고 인정하는가?

그런 말을 잘 쓰지 않으려고 한다. 가능하면.

계파가 민주당에 큰 해가 된다고 보는 것 같다.

계파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 흔히들 가치를 추구하는 계파는 괜찮고, 이익을 추구하는 계파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계파주의라고 할 때 그 계파는 이익을 추구한다. 계파의 이익이 당의 이익과 서민·중산층의 이익보다 앞서는 그런 계파주의 정치가 미치는 폐해가 너무나 컸다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극복해야 한다.

민주당이 지금 갈팡질팡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참여정부 때 열린우리당 분당을 문제 삼는 의견도 있는 것 같다. 동의하는가?

정치는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하지 않은 것이 맞았던 것 같다. 솔직히 당시에 나도 열린우리당 창당을 찬성하지는 않았다. 열린우리당으로 바뀌더라도 우리가 다 빠져나가고 민주당이 따로 남는, 이른바 분열의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열린우리당에 마지막으로 합류했지만,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을 우리가 다 안아야 한다는 점을 부단히 이야기했다. 그때 열린우리당이 벌인 여러 가지 정치적 실험이 성공했더라면 결국은 밖에 있는 그분들(민주당)도 같이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정치 실험 중 많은 것이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니까 밖에 있는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버텨갈 수 있었던 것이다. 참여정부 말기에 내가 여러 의원들과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기로 한 것은 노 대통령 및 노 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과 의견의 접점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을 위해 밖에 있는 민주당과 하나로 합쳐지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노 대통령측은 “그렇다고 민주당을 우리가 함께 안고 가는 것은 다시 지역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기본 입장을 버리지 않았다. 반면 나는 “호남은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희생을 많이 하고 헌신한 분들인데, 그분들을 껴안는 것이 지역주의라면 그건 또 하나의 지역주의”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의 이견과 갈등이 결국 지금의 계파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그렇게 볼 수 있다. 나는 친노니 뭐니 이런 용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노 대통령께서 좀 직설적인 분이라 우리 편이라고 해도 마음에 안 드는 인사들은 정동영·김근태·손학규 의원까지도 공격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 김한길에 대해서는 한 번도 나쁘게 말씀하지 않았다. 나하고 충분히 그런 토론을 많이 했다. 내가 탈당을 결심하고 인사드렸더니 노 대통령께서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김 대표, 우리가 이렇게 헤어져도 내가 김 대표에게 진 마음의 빚은 그대로 간직하겠다”고 하셨다. 노 대통령과 나는 뭐랄까. 서로에 대해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인간관계를 끝까지 가지고 있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지난해 총선·대선 패배 원인이 뭐라고 보는가?

거기에도 계파주의가 작용했다. 우리 당이 대선을 위해 일사분란하게 역할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4·11 총선이라는 뼈아픈 패배 이후에도 반성과 평가 없이 또 그 세력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굳이 하나 더 들라고 한다면,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서 안 후보를 무찌르려고 한 것이다. 당시 내가 문재인 후보에게 직접 여러 번 얘기했다. “단일화가 굉장히 중요한데, 안 후보를 단일화에서 쓰러뜨리고 이기면 본선에서 진다. 안 후보를 껴안는 단일화를 해야 한다”라고. 그런데 결과적으로 안 후보를 쓰러뜨리고 단일화에서 이겼다. 그리고 본선에서 졌다.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 거기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꼭 두 달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갈팡질팡하니까 현 정부가 실책을 해도 제대로 견제를 못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자칫 선명성이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하는 것 같은데.

물론 지금 민주당이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 지금 정상적인 지도부가 아니라 이른바 관리형 지도부이기 때문이다. 빨리 정상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아야 한다. 강력한 지도부가 등장하는 것이 제1야당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겠는가. 어떤 분들은 ‘제2의 박정희 시대’가 오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박정희 정권 독재와 평생을 싸우다 가신 제 아버지(김철 전 사회당 당수)처럼 그 아들인 제가 대를 이어서 박근혜 정권과 제대로 맞서겠다.” 이렇게 몇 군데서 얘기했다. 2006년 당시 내가 여당 원내대표일 때 야당의 당 대표는 박 대통령이었고 원내대표는 이재오 의원이었다. 그런데 이재오 원내대표가 임기를 다 못 채우고 중간에 김형오 의원으로 바뀌었다. 그게 뭘 뜻하는지 아는가. 박근혜 대표가 이재오 원내대표를 통해 야당 대표로서 여러 가지로 여당과 맞서고자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다 보니 그 책임을 물어서 이재오 원내대표를 교체한 것이다. 그러면 그 질문에 답이 좀 될 것 같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아직 가시화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에조차 지지율에서 밀리는데.

안철수 신당은 그야말로 가상 질문이다. 그 지지율 수치는 바로 민주당의 강한 변화를 요구하는 수치이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민주당이 변하지 않고 이대로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여론조사 결과라고 보기 때문에, 당원과 대의원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새 지도부가 제 역할을 할 때에도 그 수치가 나올 수는 없다고 본다. 민주당이 제대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철수 후보(인터뷰 당시는 당선 확정 전이었음)에게 박수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대부분을 다시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봤을 때 안 후보의 향후 선택의 폭도 그리 넓지 않다고 본다.

당내 일각에서는 친노·주류 쪽보다는 김 의원 쪽이 안 후보와 더 가깝기 때문에 이른바 비주류와 안철수 세력 간의 연대 가능성을 곧잘 얘기하곤 한다.

안철수 후보 개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세력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안 후보와 나와의 친분 관계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지금 민주당이 너무 ‘우클릭’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다.

우선 그것을 우클릭·좌클릭이라고 얘기하는 게 적당한가도 의문이지만, 앞서 말한 대로 지금의 지도부는 과도기다. 당원들로부터 권한을 제대로 위임받은 지도부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뜨거운 토론을 거친 후에 결론을 내는 것이 맞다. 이제 좌클릭·우클릭의 개념으로 모든 것을 볼 게 아니라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보다는 서민과 중산층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 밀착형 정책 제시가 우리 당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나는 그것을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이라고 얘기했다.

만약 당 대표가 된다면 박근혜 대통령과 국정을 논의할 텐데, 박 대통령을 설득할 방안이 있나?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게 1995년이다. 내가 진행하던 <김한길과 사람들>이라는 MBC 토크쇼에 초대 손님으로 모셔서 한 시간 동안 얘기했다. 프로그램 맨 마지막에 진행자가 클로징 멘트를 하는데, 그때 내가 이렇게 얘기했다. “박근혜씨와 내가 동갑인데 우리는 같은 세월을 너무나 다르게 살았다. 박근혜씨가 청와대에서 안주인 노릇을 대신하던 때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긴급조치 때문에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면회하러 가서 세월을 보냈다(김 의원 선친 김철씨는 박정희 정권 시절 사회당 당수와 대선 후보를 지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 이렇게 한 시간 동안이나 잘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 진심이었다. 우리 전 세대의 불행을 우리 자식 세대가 그대로 이어받아 일부러 대척점에서 싸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쩌다 보니까 내가 만약 당 대표가 된다면 야당 대표로 박 대통령을 그 부모의 아들과 딸로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내 클로징 멘트가 그대로 잘 이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 세대의 불행을 전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최선의 길을 찾는 목표를 공유하고 거기서 입장 차이가 있는 대척점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선친은 대권 도전에 나선 바 있는데 본인은 그런 욕심이 없나? ‘킹’보다는 여전히 ‘킹메이커’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다.

흔히 하는 말을 빌려서 내겐 정치적인 야망이 없다. 혁신이라는 게 필요한데 혁신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므로 고통이 필요한 것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가장 인기 없는 당 대표, 가장 욕 많이 먹는 당 대표가 되는 것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 당 대표라는 자리를 발판으로 다음 정치적 위상을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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