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캐릭터 인형아 너도 가짜임이 분명해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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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불법 복제 인형 유통 경로 추적…어린이 건강 해치는 짝퉁 넘쳐나

5월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완구 매장 인형들이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뽀로로·마시마로·보노보노 등 인기 캐릭터는 아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인형이다. 봉제 인형의 경우 50cm 크기 정품은 하나에 5만원 정도 한다. 큰마음을 먹어야만 사줄 수 있다. 그런데 이것들 중 소비자의 눈을 속인 가짜도 섞여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인체 유해 성분까지 다량 함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국제범죄수사대는 올해 초부터 유명 캐릭터 상품을 불법 복제한 인형을 중국에서 들여와 유통시킨 수입업자들을 추적했다. 처음에는 뽀로로·마시마로·뿌까·보노보노·케로로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복제한 제품들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

서울시 화곡동의 한 봉제 인형 도매업체. ⓒ 시사저널 전영기
가짜 제품에 인증 번호 기입해 정품처럼 속여

그런데 수입업자와 도매업자를 적발하고, 압수한 제품을 검사한 결과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의 안정성 조사에서 압수 품목 15개 중 9개에서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많게는 기준치의 360배가 검출됐다. 4개 품목에서는 납 성분이 기준치 대비 최고 76배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해 성분이 다량 검출된 것이다. 주성균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무기분석실장은 “납은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축적되면 피부염과 운동신경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불임을 유발하고 정자 수를 감소시키는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프탈레이트는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하는 화학첨가제로 국내에선 2006년 이후 완구류에 사용이 금지된 것으로, 심하게 노출되면 간이나 신경에 손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4월23일 경찰 발표에 따르면, 적발된 수입업자와 도매업자들은 2009년부터 불법 복제한 제품 56만여 개(시가 43억원 상당)를 불·편법으로 전국에 유통시켰다. 이들은 또 품질 인증도 받지 않는 등 정상적인 제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제품들을 수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원찬희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팀장은 “주문자 제조 방식으로 중국 현지 공장에서 제조했지만, 품질 관리는커녕 어느 회사에서 어떤 원단을 써서 만든 것인지 불분명한 제품도 많다”고 밝혔다.

경찰에 적발된 제품 중에는 교묘하게 소비자들의 눈을 속인 것도 있었다. 복제한 가짜 제품의 꼬리표에 정품처럼 품질 인증 마크를 인쇄하고, 가짜 제품 인증 번호를 기입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해당 제품과 상관없는 서류를 꾸며 세관의 허술한 틈을 타 불법 복제 제품을 대량 들여오기도 했다. 돈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과 건강에 상처를 준 것이다.

재래시장 대형 완구매장에 가보니 비슷하게 생긴 것을 반값에 팔고 있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정품이라며 올려놓은 비슷한 제품을 3분의 1 가격에 팔고 있다. 그런 제품 대다수는 소비자의 눈을 속인 가짜였다.

완구 판매업자들의 말에 따르면 정품에 불량품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한 도매업자는 “정품이라고 유해 성분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품질 인증을 받을 때 시험용으로 제출한 제품과 시중에 깔리는 제품이 같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 재차 문의했다. 윤무진 섬유사업본부 팀장은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 시판 중인 제품들에 대해서도 샘플 조사를 하고 있다. 그 결과를 기술표준원 홈페이지에 게시한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기술표준원은 어린이 완구에 대해 리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 의뢰해 검사한 결과를 토대로 리콜 조치를 하고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1년 동안의 실적을 보니 인형 등 완구 제품에 대해 리콜 조치를 한 경우가 여러 건 있었다. 알 만한 브랜드의 정품들도 있었는데,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기준치를 넘어선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례는 백화점이나 완구 전문 매장에서 파는 정상 유통 제품에 대한 조사 결과일 뿐이다. 인터넷 판매 분이나 다른 경로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조사나 제재를 가한 일이 없다.

도매상은 정품·유사품 구분 없이 유통

기자는 불법 복제 완구 거래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4월24일 오후 서울 화곡동 완구 도매상 거리를 찾았다.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수입업자와 도매업자들이 거래한 곳이기도 하다. 어렵게 수소문해 해당 업체들을 찾아냈다. 이들 업체에 가보니 문제가 된 것들은 다 빼냈는지 진열된 제품 가운데서 불법 복제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도매업자 중에는 정품과 유사품을 구분하지 않고 총판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다른 도·소매업자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정품이라는 제품도 대부분 중국에서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들여오는 것들이라 원산지 표시로는 정품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 도매업체 사장은 “적발된 수입업자는 싼 것을 만들어 들여온 것일 뿐이다. 짝퉁인지 아닌지는 라이선싱협회에서 결정할 문제이고, 우리는 저가품도 필요해서 받았을 뿐이다. 품질 인증도 받고 정상 수입한 것으로 믿고 들여왔는데, 표적 수사를 당했다”고 항변했다.

과연 그럴까. 디자인에 대한 저작권 침해 여부도 이번 사건의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품질 인증에 허위가 있거나 제품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불법을 저지르는 수입업자와 총판이 도매업자를 속이는 것인지, 알고도 싸구려라서 모른 체하며 물건을 받는 것인지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또 다른 수입업자나 도매업자들이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지성숙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수사관은 “좋은 재질로 만든 것을 제출해 품질 인증을 통과한 뒤 수입 신고서 등을 정상적으로 만든다. 이럴 경우 실제 들여올 때 육안으로는 알 수 없는 불량 제품을 막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불법 복제 인형이든 싸구려 인형이든 저가 제품을 절실히 요구하는 곳은 따로 있다. 인터넷 판매업자도 그랬지만, 크레인 게임기(일명 인형 뽑기) 사업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만 해도 대다수 불법 복제 인형이 중간 도매상 등을 통해 인터넷 쇼핑몰 사업자나 소규모 문방구, 크레인 게임기 사업자 등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크레인 게임기 인형은 대부분 짝퉁

특히 경찰은 70만여 대로 추산되는 크레인 게임기 사업자들에게 많이 들어갔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크레인 게임기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는 한 도매업자는 “게임기에 비싼 정품을 어떻게 넣나. 수지가 안 맞으니 적당한 것을 골라 넣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걸 못 넣게 하면 크레인 게임기 운영자 보고 죽으란 얘기”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자체, 관할 경찰서와 공조해 불법 설치한 크레인 게임기들을 철거하고 있다. 업계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김동만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 사무관은 “무등록 크레인 게임기에 대한 집중 계도 및 단속을 벌인 것이다. 불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크레인 게임기들을 자진 철거하게 하고 경품 종류를 위반한 게임기들에 대해 시정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게임 산업 진흥에 관한 법령 및 문화부 고시에 따르면 크레인 게임기는 소매가 5000원 이하의 경품만 취급할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명 캐릭터 인형 정품의 경우 소비자가가 5000원 이하인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휴대전화에 매다는 미니 인형 정도가 5000원이다. 때문에 조악한 싸구려 인형으로 유혹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 사무관은 “노점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며 반발해 불법 크레인 게임기를 철거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결국 크레인 게임기를 통해 아이들 손에 전달되는 인형들은 중국산 싸구려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는 이번 적발에서 유해 성분이 검출된 제품도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크레인 게임기나 문방구에서 유해 인형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품질 인증 마크와 정품이라는 문구가 선명한 꼬리표를 단 제품도 더러 있다. 정품이라 해도 중국산이라 안심할 수 없다. 결국 소비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제품 정보와 품질을 따져 좋은 제품을 합리적 가격에 사는 것이 최선이다. 


옥션·인터파크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짝퉁 인형들. 기술표준원 홈페이지에서 제품 인증 번호를 조회했더니 다른 제품 사진이 떠올랐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짝퉁 인형을 특허받은 정품이라며 파는 판매자가 많다. 기자가 인터넷 쇼핑몰 몇 곳에서 ‘마시마로’ 인형을 검색해봤다. 이번에 적발된 짝퉁과 비슷한 것이 있어 제품 정보를 살펴봤다. 제품 안전 인증 번호까지 올려놓은 것을 보면 누가 정품이 아니라고 의심할까 싶었다. 인증 번호를 기술표준원 홈페이지의 제품 인증 정보 검색란에 기입해 제대로 인증받은 것인지 살펴봤다.

의심이 가는 두 제품을 확인해본 결과 하나는 품질 인증을 받은 제품과 판매하는 제품이 달랐고, 하나는 타사에서 인증받은 번호를 임의로 올려놓은 것이었다. 한 판매자와 연락이 닿았다. 같은 제품인데도 다른 업체에 비해 월등히 싸게 파는 이유를 물었다. 판매자는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 판매하는 중간 도매상이라 싸게 판다”고 말했다. 제품 상세 정보에 올려놓은 정품 인증 번호가 다른 제품의 것인데, 정품이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그는 “인증 번호가 맞는지 확인해보지 않았다. 정품으로 알고 판다”고 밝혔다. 판매자가 파는 제품 중에는 정품과 유사품이 섞여 있었다. 눈으로 봐도 제품의 재질이 크게 다른 것을 알 수 있고, 판매 가격은 정품과 두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런데도 정품인 줄 알았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원찬희 수사팀장이 정품 인형과 짝퉁 인형을 비교해 보이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부여받지도 않은 품질 인증 마크와 인증 번호를 인쇄한 짝퉁 인형 꼬리표. ⓒ 시사저널 박은숙
아이들을 짝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꼼꼼히 살펴보면 일반 소비자들도 얼마든지 짝퉁과 정품을 가려낼 수 있다. 우선 정상적인 제조사가 만든 정품인지 알려면 상표를 잘 살펴봐야 한다. 품질 인증 마크는 제자리에 인쇄됐는지, 제품 안전 인증 번호는 맞는 번호인지, 홀로그램과 바코드 등은 규정을 제대로 지킨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

정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소비자의 생명, 신체상의 위해 등 우려가 없도록 신경 써서 만든다. 짝퉁 인형들은 눈과 헬멧 등을 박음질이 아닌 본드로 부착하는 등 조잡하다. 뽀로로의 눈을 본드로 부착한 경우, 플라스틱으로 만든 눈이 쉽게 떨어져 아이가 삼킬 위험이 있다. 이런 것은 애초에 품질 인증을 받을 수 없는 제품이다.

짝퉁 제품의 비닐이나 인조 가죽에서는 프탈레이트계 가소제가 다량 검출됐다. 원단 자체도 손으로 만져보면 정품에 비해 거칠고 촉감이 좋지 않다. 일반 소비자들이 불량 원단을 사용한 제품을 골라내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아이에게 해가 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한 소아과 전문의는 “아이들은 정서 불안을 느낄 때 인형을 꼭 껴안는다거나 입에 물고 빠는 행동을 한다. 그래서 인형을 고를 때 재질 상태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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