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언, 망언, 망언… ‘라스트 사무라이’의 도발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3.04.3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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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일본 총리, 장기 집권 위해 “극우 앞으로”

“침략이라는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 관계를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4월23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이다.

“그동안 야스쿠니 신사에 매년 2~3차례 참배해왔다.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 방문 후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정금융상이 한 말이다.

일본 자민당 정권의 1인자와 2인자에게서 우려되는 발언이 잇따라 나왔다. 아베 총리의 노골적인 우경화 움직임 뒤에는 지지율 상승이 있다. 4월23일 야스쿠니 춘계 예대제(제사)에 국회의원 168명이 참배했는데, 참배 인원이 100명을 넘어선 것은 2005년 10월 추계 예대제 이후 처음이다. 이번에 참석하지 않은 아베 총리가 임기 중에는 반드시 참석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는 지난해 12월에 치러진 중의원 선거 때 발언한 “총리 재임 시절 야스쿠니 신사에 참석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는 표현에서 드러난다.

ⓒ 연합뉴스
“중도층, 우경화 흐름에 동조하고 있다”

아베의 높은 지지율은 중도층의 지지 때문이다. 일본 유권자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이 아베 쪽으로 돌아섰다. 이들의 지지는 단순히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문화평론가인 우노 히로시 씨는 “헌법 개정 등 이데올로기적인 부분 등이 포함돼 아베 정권을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경화 흐름에 동조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는 분석인 셈이다.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매우 닮았다. 젊은 시절 자민당 간사장, 관방장관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급성장한 아베의 뒤에는 항상 고이즈미가 있었다. 아베의 정치적 신념은 고이즈미와 흡사한데, 강경 보수 성향을 띠고 미국과의 관계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악화에는 크게 괘념치 않는 태도가 그렇다. 간단명료하고 단정적이며 정치적인 수사법 또한 비슷하다.

강경 보수 정치 노선으로 장기 집권에 성공한 고이즈미 모델을 아베 총리도 연구하고 따르고 있다. 고이즈미의 정치적 유산을 승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 중 하나가 이지마 이사오를 내각 관방 참여(參與)로 기용한 일이다. 아베가 두 시간의 설득 끝에 직접 영입했다고 전해지는 이지마는 고이즈미 전 총리 시절 그림자 실세로 불리며 정무적 조언을 해온 인물이다. 고이즈미가 총리 시절 고비 때마다 승부수를 던지며 정국을 주도해왔고 여러 선거에서 압승하며 2001년 4월부터 2006년 9월까지 4년 7개월 동안 4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한 데는 이지마의 역할이 컸다. 이지마는 아베 총리의 지근거리에서 위기관리·홍보·미디어에 관한 조언을 하고 있다.

북한은 아베가 강경 보수로 치닫도록 명분을 만들어주는 데 한몫했다. 북한 문제에 우리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일본이다. 정치인들의 북한 때리기는 인기 상승과 직결된다. 아베 역시 정치 초년생 시절부터 북한 때리기를 통해 스타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다.

아베와 북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고이즈미 정부 때 아베는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송환 협상을 위해 고이즈미와 함께 북한에 갔다. 이후 아베는 북한에 납치된 가족들을 변호하고 납치 가족 구명 행사에 앞장섰다. 그런 아베에게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강행은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고 강경 보수의 길로 치닫게 해주는 좋은 명분이다.

저널리스트인 하세가와 유키히로 씨는 “아베 정권이 내건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재검토 문제가 (북한의 핵 문제로 인해) 단순한 이념의 차원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최종적인 정치적 지향점은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개정 그리고 자위대의 국방군화(化)인데, 이를 위해서는 일본 국민과 일본 사회를 지금보다 더 보수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무드가 북한 문제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아베가 강경 보수로 치닫는 데는 1991년 부동산 버블 이후 20년 이상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일본 국민들의 패배 의식도 한몫하고 있다. 아베는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강한 경제, 강한 일본, 강한 군대를 역설하고 있다. 강한 경제의 방향은 ‘엔저 정책’이다. 밑그림은 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 대학 명예교수가 그리고 있다. 과감한 금융 완화 정책을 주장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은 하마다의 정책이나 다름없다. 인위적인 금융 확장 정책을 우려하는 주변국의 우려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베노미쿠스’(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는 지금까지 성공적이다. 일본의 주식시장은 폭등하고 있고, 부동산 시장도 들끓고 있다. 소비 심리는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신감을 얻은 아베 총리의 다음 단계는 ‘강한 일본’ 만들기다. 그 중심에 역사 인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작업이 있다. “과거사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전후 70년이 되는 2015년에 아시아를 향한 미래 지향적인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며 과거사를 부정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7월에 열릴 참의원 선거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중의원에서 다수당이 된 자민당이 참의원마저 장악하게 되면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개정, 자위대의 국방군화 추진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일파(知日派)인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아베는 역사 수정 움직임을 취할 수 있다. 무라야마 담화 등을 해제할 경우 한국·중국과의 관계에서 위기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강한 비난에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베가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작다.

한·일 정상회담 당분간 어려울 듯

2006년 3월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 관계가 최악이었던 때,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했다. 당시 관방장관이던 아베는 박 대통령과 회담 말미에 “나와 당신은 가치관이 비슷한 부분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역사 문제 외에는···.”

기본적으로 일본 내에서는 한·일 양국 정부 사이에 역사 인식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4월22일 마이니치 신문은 박 대통령 외교 참모의 입을 빌어 “한·일 정상회담이 최소 올해 가을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 배경에는 박 대통령의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 아소 다로 부총리는 박 대통령과 회담에서 역사 인식 문제로 충돌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이 일본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여러 번 요구했지만 아소는 “한·일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다”고 반박했다. 일본 내부에서는 이런 충돌이 한국측의 불신을 키웠다고 보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5월 초에 첫 방문지로 미국을 택했다. 보통 취임 이후 미국 다음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박 대통령은 5월 말 중국을 방문하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4월24일 중국을 방문해 북한 정세와 함께 대통령의 방중과 관련한 협의를 할 전망이다. 7월에는 일본 참의원 선거가 있고 8월에도 종전기념일(우리의 광복절)에 맞춰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 가능성이 있는 만큼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해결책을 모색할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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