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곧 웃는 날이 올 거야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4.3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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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 지망생 역 열연한 김인권

한 남자가 아내의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닌다. 힘들거나 심각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그는 지갑 속 아내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여자를 먹여살려야 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어디 있느냐고 자문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심각한 것도 감당 못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하다 보니 주연급으로 성장한 배우 김인권씨(35)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김씨에게는 그런 아내 말고도 세 딸까지 있다. ‘네 여자’를 감당해야 하는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있을까.

동갑내기 초등학교 동창과 7년 만에 대학에서 만나 26세에 결혼했다. 하숙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결혼식도 못 올리고 군대에 갔다. 줄줄이 세 딸이 태어나면서 결혼식은 계속 미뤄졌다. 힘들 때면 아내와 딸 사진을 보면서 감당해냈다.

4월23일 조용필의 19번째 앨범 쇼케이스 행사가 있던 날 같은 시간, 롯데시네마 건대점에서 영화 <전국노래자랑> VIP 시사회가 열렸다. 걱정과 달리 이날 행사는 성황을 이뤘다. 김씨는 이 영화에서 무명 시절 그가 느꼈을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소도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를 돕는 셔터맨이자 대리운전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고개 숙인 신랑이다. 국민 가수를 꿈꾸던 젊은 시절의 이상을 잠시 접고 사는 소시민 박봉남 역이 김인권의 몫이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방가? 방가!> 이후 세 번째 주연 맡아

몇 년 새 그의 개성 있는 연기를 알아봐주는 감독이 많아졌다. 대작에서는 ‘코믹 감초 연기’를 위해 곧잘 투입됐다. 그는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되기도 했는데, 이번 <전국노래자랑>도 그에게 주연의 영광을 안겼다. 이에 대해 그는 “주연이라기보다 주연들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나가는 시민들이 다 주인공이듯이 나도 그중 한 명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인권은 이 영화로 세 번째 주연을 꿰찼다. 2010년 육상효 감독의 성공작 <방가? 방가!>에 주연으로 발탁돼 진가를 알린 김씨. 2012년 말 육 감독이 다시 불러 주연을 맡은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은 그저 그랬을 뿐이어서 이번 영화에서 뜰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김씨는 “이 영화 제작자인 개그맨 이경규 선배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한 영화다. 그런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것만 해도 기쁘다”고 겸손해했다.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33년 전통을 지닌 동명의 대한민국 최장수 방송 프로그램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실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참가자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1980년 11월9일 첫 방송된 이후 참가자 100만명, 본선 출연자 3만명, 관객 1000만명, 방송 횟수 1650회를 넘어선 기록을 보유한 TV 프로그램이다. 방송에서처럼 이 영화에는 포복절도할 코미디도 있고,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도 있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사람, 손녀와 할아버지, 부부 등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았다.

영화로 만들어진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김인권씨의 ‘심사평’이다.

“예능으로 예능을 만들어낸 영화다. 송해 선생님에 대한 헌정의 느낌도 있다. 투병 생활을 한 오현경 선생님의 삶도 담겼다. 영화라기보다 국민 버라이어티 이벤트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이경규라는 예능의 신이 만들어낸 예능의 결정체다. (…)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웃음과 울음의 경계는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웃지 않고 보면 눈물이 나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보면 웃음이 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고 자랑만 늘어놓기에는 시사회를 본 사람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대체로 좋은 평가가 이어지지만 ‘구성이 이상하다. 출연진들의 사연으로 이야기를 꾸며가는데, 서로 단막처럼 느껴지고 이어지지 않는다’는 평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에 대해 김인권씨는 “이 영화는 고달픈 인생들에게 꿈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각자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의 발자취를 스크린에 응축해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 노래자랑이 배출한 폴 포츠’ 꿈 꿔도 될 듯

김씨는 영화 속 대사 “영국 노래자랑이 만들어낸 영웅 폴 포츠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꾼 것은 아닐까. 그는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넘치는 끼를 고루 갖춘 가수 지망생 캐릭터 ‘봉남’이 되기 위해, <전국노래자랑> 본선 무대를 장식할 싸이의 <챔피언>을 완벽하게 해내려고 엄청난 연습량을 소화했다.

게다가 <강남스타일>을 만든 작곡가가 곡을 쓰고, 최강 듀오 ‘형돈이와 대준이’가 피처링에 참여한 영화 주제곡 <전국을 뒤집어놔>를 직접 불렀다.

정말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영화 내내 가수 지망생다운 춤과 노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액션이라면 누가 대신 해줄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영화를 찍는 동안 내내 왜 이렇게 안 될까 하며 자책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고 애쓴 결과물을 보니 가수라는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국노래자랑> 개봉 직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이언맨3>가 개봉됐다. 흥행이 어떨 것 같냐고 물었다. 김씨는 “이경규 선배 말을 빌리자면 ‘<아이언맨>은 쇳덩어리일 뿐’이다. <전국노래자랑>은 사람 냄새가 나는 훈훈한 영화다. <아이언맨3>와 장르도 다르다. 관객들이 잘 봐주실 것으로 믿는다”며 성공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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