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우린 부산 사나이 아이가?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4.30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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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동창생 추신수와 이대호, 미국·일본에서 새로운 경쟁

영화 <친구>는 2001년 820만 관객을 불러 모은 히트작이다. 이 영화는 혈육보다 가까운 친구이지만, 적이 되어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동수와 준석의 인생 역정을 다루고 있다. 야구판으로 치자면 추신수(31)와 이대호(31)가 그런 사이다. ‘초교 동창생’인 두 사람은 가장 가까운 벗이자 라이벌로 그라운드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니, 야구 안 할래?”

부산 수영초교 3학년이던 추신수는 같은 반 친구 이대호를 유심히 살폈다. 또래보다 월등히 큰 체구의 이대호라면 야구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대호에게 던진 말이 바로 “니, 야구 안 할래?”였다.

이대호는 추신수의 제안에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야구부를 찾았다. 야구부 감독은 이대호를 보자마자 될 성싶은 나무라 판단해 그에게 글러브를 쥐어줬다.

이때부터 추신수와 이대호는 단짝 친구가 됐다. 이들은 야구부에서 3, 4번을 쳤다. 당시 두 선수를 눈여겨봤던 안병환 전 경남상고 감독은 “대호와 신수는 말이 초교생이지 실력은 중학생 이상이었다”며 “지금처럼 잘 크면 프로야구판을 휘저을 대형 선수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이대호가 대동중, 추신수가 부산중으로 진학하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대호가 경남고, 추신수가 부산고에 진학하면서는 단짝 친구에서 라이벌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경남고와 부산고는 부산 고교야구계의 최대 라이벌이었다. 당시는 두 선수 모두 투타를 겸했지만 투수로서 더 주목받았다. 이때만 해도 실력은 추신수가 다소 앞선다는 평이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의 눈에 먼저 띈 것도 추신수였다. 추신수는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7번 등판해 18이닝 동안 탈삼진 32개, 12피안타, 5실점의 호투로 대회 최우수선수(MVP)와 베스트나인에 뽑혔다. 이대호도 3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펼쳤지만 추신수만큼 관심을 끌진 못했다.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맹활약을 등에 업고 추신수는 그해 미국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금 135만 달러(약 15억원)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당시 135만 달러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고졸 선수 가운데 최고액이었다. 국내 언론은 추신수를 가리켜 “제2의 박찬호가 될 야구 천재”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입단 후 추신수는 타자로 전향했다.

메이저 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념하는 4월15일 경기에서 추신수는 평소의 17번 대신 42번을 달고 나와 4경기 연속 안타와 26a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했다. ⓒ PENTA PRESS
메이저리그 접수한 추신수

2000년 추신수가 거액을 받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이대호는 계약금 2억1000만원에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롯데는 이대호를 가리켜 “뛰어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힘 있는 슬라이더를 던지는 우완투수”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추신수처럼 ‘투수 이대호’도 오래가지 못했다. 투구 메커니즘이 좋지 않고 투수보다는 타자로 키우는 게 낫다는 코치들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이대호는 데뷔 2년차이던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타석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대호는 2004~05년 2년 연속 20홈런, 68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2006년엔 타율 3할3푼6리, 26홈런, 88타점으로 타격 3관왕에 올랐다. 이대호 전성시대가 막을 연 순간이었다.

화려하게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던 추신수는 이대호가 타격 3관왕에 오를 때까지 자리를 잡지 못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의 이대호가 4월23일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홈경기에 4번 지명타자로 출전해 4타수 3안타를 때려, 7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 연합뉴스
했다. 마이너리그를 맴돌았다. 게다가 2006년엔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되며 프로 세계의 쓴맛을 봤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할 추신수가 아니었다.

추신수는 2009년부터 클리블랜드에서 풀타임 외야수로 출전하며 ‘야구 천재’다운 실력을 뽐냈다. 그해 타율 3할, 20홈런, 86타점, 21홈런을 거두며 빅리그에 이름을 알렸다. 2010년에도 타율 3할, 22홈런, 90타점, 22도루로 2년 연속 ‘타율 3할, 20홈런, 85타점, 20도루’ 이상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최고 외야수로 우뚝 섰다.

친구의 성공에 자극받은 것일까. 이대호는 2011년 타격 7관왕에 오르며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취득하고선 그해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선언했다. 추신수보다 11년 늦은 해외 진출이었지만, 몸값이 100억원을 넘으며 이대호는 친구를 앞질렀다.

한국·일본 평정한 이대호

엎치락뒤치락하며 성공 가도를 달린 두 사람에게 올 시즌은 각자의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해다. 먼저 추신수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클리블랜드에서 신시내티로 이적한 추신수는 올 시즌 종료 후 FA가 된다. 올해 연봉이 737만5000달러(약 82억원)인 추신수는 이대로 시즌이 끝나면 몸값이 치솟을 게 분명하다. 추신수의 대리인이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이기에 연봉 1000만 달러는 쉽게 넘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현지에서도 추신수의 예상 몸값이 총액 1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추신수는 4월26일 현재 타율 3할9푼2리, 출루율 5할3푼4리, 3홈런, 9타점을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대호도 현재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타격 전 부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추신수처럼 이대호도 올 시즌 종료 후 오릭스와의 계약이 끝난다. 벌써부터 이대호를 잡으려고 일본 최고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돈 가방을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다 메이저리그 복수의 구단에서도 이대호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대호의 친형이자 국내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O2 S&M’의 이차호 대표는 “여러 경로로 미국 진출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부인하지 않았다.

이대호가 다음 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면 두 선수는 고교 이후 처음으로 같은 리그에서 만나게 된다. 절친한 친구의 해후가 벌써부터 화제에 오르는 이유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얼싸안으며 해후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은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실제 둘의 사이가 그리 가깝지는 않다는 후문이다.

이들과 함께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야구대표팀에서 뛰었던 한 선수는 “추신수와 이대호 사이가 조금 껄끄럽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대표팀에서도 다소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선배가 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중 큰 말다툼을 벌였다”며 “대선수라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타순을 놓고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펼쳤다”고 전했다.

둘과 절친한 다른 전직 야구선수도 “신수가 한국에 왔을 때 대호와 만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이는 대호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두 사람은 앞으로도 우정보다는 서로 자극이 되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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