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세 가족’ 새 주인은 누구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5.06 17: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당·진보 정당 진영·안철수 세력, 야권 대연대 가능할지 여부가 관건

“드디어 올 것이 오나 보다.”

5월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TV를 통해 진보정의당 강동원 의원(전북 남원·순창)의 탈당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호남 출신 민주당 초선 의원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강 의원은 “지역구민들이 개인적으로 조언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집단적으로 강권하고 있다”며 지역구 민심을 탈당의 이유로 들었는데, 이 의원은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나도 미치겠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러더니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뽑히지만 주류와 비주류로 갈려 그야말로 한바탕 전쟁을 치르는 판이니 제대로 굴러갈 리도 만무하고…”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과 진보 정당 그리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 지지 그룹 등 야권 연대 대상이 될 세 축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어느 쪽도 뚜렷한 지향과 노선,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함은 물론, 자기 자리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셋 중에서는 아직 보여준 게 아무것도 없는 안 의원 세력이 그나마 가능성 측면에선 가장 나은 상황”이라고 촌평했다.

4월26일 4·24 재보선 서울 노원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무소속 안철수 의원(가운데)이 국회에서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전당대회 이후 더 심란해진 민주당

127석의 제1야당 민주당은 5월4일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오히려 친노·주류와 비주류 간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당장은 신임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일 대오를 유지하겠지만, 안 의원의 국회 입성 자체만으로도 민주당의 입지는 더욱 축소된 상태다. 게다가 진보정의당 소속이긴 하지만 강 의원의 탈당 결행으로 민주당 내부의 불안감은 점차 증폭되는 양상이다. 강 의원이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사실상의 구(舊)민주계 인사이고, 그의 지역구가 민주당의 텃밭이자 ‘안풍(安風)’이 거센 호남이란 점에서다. 이미 민주당 수도권 의원 1~2명과 호남권 의원 3~4명이 안 의원측과 교류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세 갈래로 분열된 진보 정당 진영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4·11 총선 당시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과 함께 불거진 종북주의 논란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이미 바닥에 떨어졌다. 한때 ‘진보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이정희 대표를 향한 국민의 차가운 시선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보신당은 김종철·강상구 전 부대표, 박은지 대변인 등 적어도 진보 진영 내에선 촉망받는 3040 정치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지만, 정치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여전히 이념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진보정의당은 19대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 다수파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를 비판하며 딴살림을 차릴 때만 해도 진보 정당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노동·민생 현장과의 결속력을 키우며 대안 제시에 힘썼어야 했는데 대선을 앞둔 조급함 때문에 심상정·노회찬·유시민 등 명망가 중심의 세력화에 치중한 결과 보수 정당들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진보정의당 핵심 당직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진보 진영 내에서 재통합을 목표로 ‘새로하나’라는 모임이 출범했지만, 당분간은 진보 정당의 존재감이 다시 부각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비해 ‘새 정치’를 앞세운 안철수 의원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모호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새 정치의 실체를 보여줘야 하고, 잠재적 대권 주자 위상에 걸맞은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안철수 신당’을 포함한 실질적인 세력화도 급선무다. 당장은 ‘국회의원 안철수’로서의 실력 발휘도 필요하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현재로서는 자의든 타의든 정계 개편을 포함한 야권 전체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세력은 안 의원측일 수밖에 없다”며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들이 이를 주도하기엔 국민적 신뢰를 너무 많이 잃었고, 이를 단기간에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철수 의원측에서는 신당 창당 얘기가 나올 때면 기존 야권으로 범위를 한정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려 애쓴다. 안 의원실 관계자는 “기존 여야 관계는 노선이나 정책보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인맥을 중심으로 형성된 측면이 크다”면서 “안 의원은 국민의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대립 구도를 깨뜨리는 신당을 만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새누리당을 비롯한 범여권까지 포괄하는 큰 폭의 정계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5월2일 강동원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진보정의당을 탈당한다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안철수, 범여권 포함한 큰 폭 정계 개편 염두

반면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민주당과 안 의원 지지 세력이 뭉치고 여기에 진보 정당들까지 동참하는 연합체의 틀이 형성돼야 차기 대선에서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며 “지금은 야권 연대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야권의 대연대가 전제되지 않는 정계 개편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아직은 가능성 수준이지만 어쨌든 ‘안철수 신당’의 목표는 야권 대연대를 통한 정권 교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사실 민주당과 안 의원측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조건이 다른 데 기인한다. 민주당은 오래전부터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해온 현실 정치권의 한 축이다. 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127명이나 포진한 거대 정당이다. 문재인·이인영·박영선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김두관 전 지사와 손학규 전 대표 등 나름의 대권 후보군(群)도 형성돼 있다. 이에 비해 안 의원측은 이제 막 ‘여의도 정치’에 발을 디딘 상태다. 안 의원의 원내 지원군은 송호창 의원뿐이고, 자체 대권 경쟁 구도가 어떻게 형성될지도 미지수다. 국민적 지지와 가능성 측면을 제외하고 순전히 정치권 내부의 시각으로만 보면 애당초 민주당과 경쟁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향후 민주당이나 안 의원측 모두에겐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안 의원측과의 연대·협력 관계가 형성되면 지난해 총선·대선의 연이은 패배 과정에서 제기된 지나친 ‘좌클릭’ 논란도 피하면서 합리적 보수층의 지지까지 끌어안을 수 있다. 신율 교수는 “논리적으로만 보면 민주당으로선 ‘안철수 신당’에 흡수되지만 않으면 괜찮은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측은 기본적으로 민주당과 일정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면서 나갈 공산이 크다. 안 의원의 민주당 입당 가능성에 명백하게 선을 긋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는 ‘안철수 신당’이 출범하게 되면 단순히 야권의 한 주체가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서 새로운 세력의 출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도 중요하다. 안 의원측에선 “오히려 새누리당 쪽을 살갑게 대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결국은 연구소 형태를 거쳐 이르면 10월 재보선 전, 늦어도 내년 지방선거 전에는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이는 ‘안철수 신당’의 목표는 야권의 맹주 자리일 수밖에 없다. 안 의원 지지층의 일부가 새누리당 지지층과 겹친다지만 현실 정치에서 확실한 지지 기반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안철수 신당’의 성패는 일차적으로 호남 유권자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철희 소장은 “차기 대선까지를 감안하면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은 어떤 식으로든 새누리당에 맞설 수 있는 야권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며 “다만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선 향후 주도권을 누가 쥐고 갈 것이냐를 놓고 치열하게 맞붙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