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의 서슬에 비둘기파 다 숨었다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3.05.06 17: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통일안보 분야, 김장수·김관진 등 강성 군 출신이 장악

결국 개성공단이 ‘식물화’됐다. 공장 기계 소리는 멈췄고, 인적도 드문 유령 공단이 된 것이다. 4월3일 북한이 우리측 개성공단 관계자의 진입을 막은 이래 26일 우리 정부의 근로자 철수 조치가 나오기까지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이 한 달 동안 남북 간에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접전이 있었고, 이로 인해 개성공단이 마비되는 결과가 빚어졌다.

최근 박근혜정부 대북 정책의 특징을 보면 ‘전격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전격 대화 제의’(4월11일), 개성공단 사태 해결을 위한 ‘남북 당국 간 공식 실무회담 전격 제의’(4월25일) 등 청와대의 중요한 대북 정책 결정에 대한 언론 보도에 이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러한 ‘전격성’은 정부 내에서조차 충분한 사전 협의나 공감대 없이 박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통한다. 박 대통령의 4월11일 대화 제의 전후 통일부장관, 청와대 대변인, 국무총리가 각기 다른 뉘앙스의 대북 발언으로 혼선을 초래한 것만 봐도 그렇다. 특히 정홍원 총리가 박 대통령의 대북 대화 제의 다음 날 ‘남북 대화 시기상조론’을 주장하다가 청와대의 질책을 받은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각에서는 “총리실이 세종시로 이전한 효과가 이것이냐”는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국가 안보 정책을 결정하는 청와대 회의에 국무조정실이 참가하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청와대와 총리실을 연결하는 소통 채널이 약화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격적 정책 결정은 중·장기적인 구상이나 전략 없이 단기적인 국면 관리에 치중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정부의 실무회담 제의는 “내일(4월26일)까지 답변을 주지 않을 경우 중대 조치를 취하겠다”는 발표문처럼 갑작스러울 뿐만 아니라,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모양새로 나왔다. 결국 개성공단에서의 근로자 전원 철수로 이어진 회담 제의는 대화를 위한 신중한 모색이라기보다 ‘최후통첩’에 가까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개성공단이 갖는 평화의 가치라든가, 남북 공동의 이익이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당면한 남북 긴장과 위기 속에서 주도권 장악이라는 전술적 관점이 더 비중 있게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4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 옆에 김장수 실장, 맞은편 맨 오른쪽에 김관진 장관이 있다. ⓒ 연합뉴스
김관진 효과, 불필요한 남북 긴장 높여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등장하면서 한반도의 분위기가 이전 정부와는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이젠 우려로 바뀌고 있다. 새 정부의 통일·외교·안보·국방 분야 핵심 인사들이 군 출신 매파들로 채워지면서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있다.

이를 짐작케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은하3호를 쏜 뒤 국방부에서는 “우리가 북한 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있지 못하고 항상 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주도해왔다”는 반성이 있었다. 김관진 국방부장관 주도로 이에 대한 대책회의가 이어지면서 그 이후 북한 핵에 대한 선제 타격, 북한 지휘부 궤멸, 김일성-김정일 동상 파괴 등 강경 흐름으로 논의가 전개됐다. 특히 북한이 개성공단으로의 출경을 차단한 4월3일, 김 장관은 새누리당의 ‘북핵 안보전략특별위원회’에 나가 “(개성공단 인질 억류) 사태가 발생하면 (인질 구출 작전과 같은) 군사적 조치를 할 것”이며 “매년 을지프리덤가디언 군사 연습 때 구출 연습을 실시해왔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이 말에 북한은 더욱 발끈하며 사실상 개성공단 가동을 포기하는 조치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4월8일 북한의 김양건 대남담당 비서가 개성공단을 방문한 것은 개성공단 잠정 중단을 위한 수순 밟기였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통일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대화 제의보다 국방부의 대북 강경 발언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수시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한반도 정세를 주도하겠다”는 김관진 장관 주재 대책회의의 효과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대북 강경론자인 ‘김관진 효과’를 놓고 일각에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한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평가하지만, 동시에 “불필요하게 남북 간에 긴장을 조성하고 멀쩡한 개성공단을 마비시킨 것도 또 다른 ‘김관진 효과’”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4월23일 김관진 국방장관(왼쪽)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군 장성 보직 및 진급 신고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보실은 군과 다른 전략적 관점 가져야”

개성공단을 ‘인질 구출’이라는 군사 작전 대상으로 인식하는 관점을 갖기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부 언론을 통해 의료진과 식자재가 반입되지 않는 개성공단에서 우리 근로자들이 한계 상황에 처해 있는 것처럼 묘사되자, 청와대는 우리 근로자들이 ‘비상사태’에 처한 것으로 보고 더는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각은 우리 근로자들이 귀환한 직후에도 이어졌다. 일부 언론은 우리 근로자들이 공장 주변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채취해 먹은 것을 두고 ‘먹을 것이 없어 공장 주변의 풀까지 뜯어 먹은’ 것이라는 그릇된 묘사를 하기도 했다. 정작 개성공단의 우리 근로자들은 전혀 안전의 위협을 못 느낀다는데 정부가 먼저 나서 한계 상황이라고 규정하고, 급기야 인원을 철수시켰다는 점에서 청와대의 판단이 과연 적절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뒤따른다. 설령 당사자들은 안전하다고 할지 몰라도,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단 1%의 위험성에도 대비해야 하는 정부와 청와대의 고충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김장수 실장이 간과한 것은 당면한 국민 보호라는 책임감이 너무 앞선 나머지 남북 화해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함부로 다룬 결과 남북 협력의 길이 더욱 요원해졌다는 점이다. 군 출신 인사들이 장악한 청와대 안보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방부와는 다르게 더 높은 수준의 전략적 관점에서 움직였는가”라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 북한 전문가의 충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만일 개성공단이 완전 폐쇄된다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의 공동 이익과 이를 존중하는 협력의 정신이 붕괴된다. 이러한 협력의 정신은 만들기는 무척 어렵지만 붕괴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러나 군 출신 인사들의 사고 체계는 북한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협력하는 것’은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 대한 포기는 물론, 일부 피해조차도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은 그럴 수 있다. 또 그래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 안보실과 통일부는 달라야 한다.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단순한 경제적 이익 손상과 더불어 개성이 다시 북한군에 의해 군사기지화됨으로써 안보 위협이 가중될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개성공단의 잠정 폐쇄는 안보와 경제 양면에서 뼈아픈 손실을 초래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