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00,000,000,000원 공공기관 빚이 기 막힙니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05.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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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보도 후 박근혜 대통령 “공기업 부채 상세히 공개하라”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경 읽기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행태와 산더미로 쌓인 부채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 때가 되면 동네북 신세로 전락해 호되게 두들겨 맞는다. 그런데도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사저널>은 4월29일에 발행된 1228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실태와 함께 빚더미에 신음하는 공기업의 부실 경영을 집중 조명했다. 공기업을 비롯한 주요 공공기관 40곳의 임직원 연봉과 기관장 업무추진비 그리고 부채 현황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해 비교·분석했다. 실태는 참담했다. 낙하산으로 내려온 임원이 연봉으로 수억 원의 돈을 챙기는 동안 공기업은 부채로 수조 원의 돈을 까먹고 있었다.

<시사저널> 보도 이후 박근혜정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공공기관 부채를 집중 관리하겠다며 먼저 정보 공개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4월2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공공기관 부채 공개와 관련해 “이런저런 논쟁이 필요 없게 되고 기관에서는 더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다음 날 기획재정부는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를 통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등 전국 295개 공공기관의 ‘2012년도 경영정보’를 통합 공시했다.

부채가 많은 대표적 공기업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전력공사. ⓒ 시사저널 박은숙
공기업 재정은 ‘최악’, 연봉은 ‘최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공공기관의 부채 총계는 2011년 말보다 34조4000억원 늘어난 493조4000억원에 달했다. 2009년 처음으로 300조원을 넘어선 공공기관 부채가 2011년 4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500조원에 바짝 다가선 것이다. 이는 지난해 말 우리나라 국가 부채 443조8000억원보다 49조6000억원 많은 금액이다.

특히 공공기관 중 덩치가 큰 공기업의 사정이 좋지 않았다. 28개 공기업의 총 부채는 353조6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24조5000억원(7.5%)이나 늘어났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38조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한국전력공사 95조원, 한국가스공사 32조원 순이다. 공기업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도 2011년 193.4%에서 지난해 208.5%로 높아져 처음으로 200%를 넘어섰다. 역시 LH가 466%로 가장 높았고, 한국가스공사 385%, 지역난방공사 221% 등이다.

경영 상황이 악화됐음에도 임직원 연봉은 여전히 공기업이 많았다. 공기업 사장의 평균 연봉은 2억3200만원으로 준정부기관 기관장 1억5800만원, 기타 공공기관 기관장 1억4900만원과 차이가 컸다. 부채 규모와 부채 비율 1위인 LH 사장도 기본급 1억500여 만원에 경영평가 성과급 1억2100여 만원이 더해져 총 2억2600여 만원을 연봉으로 챙겼다. 부채가 그다음으로 많은 한국전력공사 사장도 기본급 1억1700여 만원에 경영평가 성과급 1억3600여 만원을 더해 총 2억5300여 만원을 받았다. 부채 규모 3위인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기본급 1억1700여 만원에 경영평가 성과급 1억8100여 만원을 더해 총 2억9800여 만원을 연봉으로 받았다. 부채 규모가 이렇게 큰데 무슨 명목으로 거액의 성과급을 챙겼는지 의문이다.

LH ‘파산 가능성’, 한전 ‘도덕적 해이’ 지적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기업 스스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여러 차례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국정감사는 공기업 성토장이 됐다. 

LH는 경영 상태와 관련해 강한 질타를 받았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미분양 자산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토지가 여의도 면적의 10배인 28.9㎢로 28조원, 주택이 8689가구로 2조4000억원 규모다. 문병호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부채가 80조원이나 늘어났다”며 “파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자회사의 경우 임직원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도마에 올랐다. 우윤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2008년부터 5년간 한국전력공사·전력거래소·발전 자회사 임직원들이 저지른 비위로 징계를 받은 건수가 총 556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전체 사건 4건 중 3건꼴로 견책 및 감봉에 그치는 등 온정주의적 처분이 판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완주 민주통합당 의원은 “한국전력공사는 매년 수조 원의 적자에 시달리는 만큼 직원들에게 직무 관련 청렴도와 높은 도덕심이 요구된다. 철저한 직무 감찰을 통해 각종 범죄와 비리를 척결할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고위직 임원이 근무 중 카지노에 출입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0년 이후 근무지를 이탈해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강원랜드에서 게임을 하다 적발된 임직원은 세 명이었다. 이 중 한 명은 총 33회에 걸쳐 카지노에 출입하다 적발됐지만 정직 3월에 그치는 등 솜방망이 처분을 받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특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가스공사가 평택기지 저장 탱크용 리프트를 발주하면서 관련 승인 기준을 지키지 않아 특정 업체에 24억여 원의 이익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공정한 인사 통해 바로잡아야

그렇다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공기업을 어떻게 하면 되살릴 수 있을까.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엉클어진 실타래를 누군가 나서 풀어야 한다”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기업 개혁의 출발은 사장 인선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야권 인사도 “민간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공기업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수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당수 공기업이 새로운 사장을 맞게 될 전망이다. 어떤 사람이 공기업 수장으로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박근혜정부는 우선 국정 철학과 전문성을 인선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 국정 철학의 경우 정부와 손발을 맞추며 경영을 해나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필요성이 거론되지만, 한편으로는 권력과 가까운 ‘낙하산 인사’의 병폐를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게 나온다. 전문성의 경우 업무에 대한 이해가 깊은 만큼 당장 사업을 추진해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강조하다 보면 관료 출신이나 내부 인사가 중용되는 ‘우물 안 인사’가 될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신뢰를 받을 수 있느냐다. 공기업 개혁의 핵심은 신뢰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여권 내부는 물론 국민이 인정할 만큼 공정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공기업 평가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처럼 단기 성과 위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처럼 보이게 하려는 ‘꼼수 경영’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MB 낙하산 출신인 한 전직 사장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공기업이 있다. 해외 진출의 맹점을 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몇십억 원 수준이던 해외 실적이 갑자기 몇천억 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미 가동 중인 해외 시설이나 공장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실적을 부풀리는 것이다. 그러면 단기 성과는 올라가겠지만 결국 속으로 골병이 든다”고 말했다. 중·장기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주는 일도 공기업 정상화에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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