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발가벗기고 훔쳐본 남 모습 즉각 퍼뜨리고…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5.07 09: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개인 일거수일투족 생중계…사생활 침해 우려 커져

대낮 거리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마침 길 가던 사람이 이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생중계했는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 세계 수많은 사람이 시청했다. 살인자를 막거나 피해자를 구호하려는 사람이 없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중계됐다. 이 영상을 본 사람 중 일부는 못 볼 것을 봤다는 후회와 탄식을 쏟아냈다. 길을 가다 살인당한 사람이나 터치 한 번 잘못한 이유로 실시간 동영상을 보게 된 사람이나 무방비 상태였다.

네티즌이 아프리카TV에서 개인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들의 진화

이런 일이 실시간 벌어지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진행하는 개인 라이브 방송도 인기다. 그 유명한 아프리카TV에서는 메인 화면에 이런 여성들의 방송을 따로 모셔놓고 있다. 생방송 시간에 들어가 보면 어떤 방송에서는 성인 사이트 못지않은 댓글이 이어진다. 도중에 매니저라 일컫는 열혈 회원이 악성 댓글을 단 회원을 걸러내 ‘강퇴’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보란 듯이 다른 아이디로 들어와 야한 주문을 한다. 영어 방송을 한다는 한 여성은 영어를 가르치기는커녕 아는 회원 댓글을 보고 진한 농담을 주고받는 데 열을 올린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해 전파해 사회의 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하거나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한 동영상을 실시간 보여주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라이프 캐스팅족’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5월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온라인 미디어 홍보행사 ‘디지털 뉴프런트’ 개막식에서 “사람들이 미래에 유튜브가 TV를 대체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여겼지만, 그 미래는 이미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를 하는 유튜브가 전통 미디어인 TV를 넘어섰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 달간 유튜브 방문자 수 10억명, 이들의 유튜브 시청 시간은 60억 시간이 넘는다. 전 세계인이 매달 한 시간씩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하는 셈이니 놀랄 일이다.

광우병 논쟁이 벌어졌던 2008년 ‘아프리카TV’라는 사이트가 인기를 끌었다. 노트북과 화상 캠으로 무장한 BJ(Broadcasting Jocky)들이 시위 현장을 생중계하면서 개인 방송의 관문을 크게 열었다. 이후 아프리카TV는 수많은 인기 BJ를 낳았다. 아프리카TV는 한 달여 전 회사 이름까지 아프리카TV로 바꾸고 모바일 게임과 방송 콘텐츠의 플랫폼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스트림이라는 신개념 소셜 방송 사이트가 한국에 상륙했다. 유스트림은 동일본 대지진 때 기존 방송이 할 수 없는 현장 생중계를 개인이 스마트폰 하나로 별다른 제약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주목받았다.

이런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들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담은 영상, 게임 방송, 스포츠 중계 등을 검색해볼 수 있는 채널로 인식돼왔다. 그런데 이 사이트들이 진화를 거듭해 신개념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의 자리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연예인들이나 기업들의 홍보 마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도구로 각광받기에 이른 것이다. 유튜브·아프리카TV·유스트림 등 자칭 ‘소셜 방송’이라는 매체들은 이용자에게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TV와 달리 양방향 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광고하고 있다. 건전한 콘텐츠 환경을 위해 애쓴다고 홍보하는데,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 실시간 생중계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확산하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걸러진 정보, 편집된 영상을 내보내는 것이 지금까지 방송이 해온 일이다. 실시간 생중계 또한 숙련된 방송인들이 시청자들을 의식해 연출한 영상들을 실시간 편집해 송출한다. 또 많은 시청자를 의식해야 한다. 이것은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에서도 통용되는 사항이다.

시청자 수가 적은 것은 플랫폼에서 노출될 확률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광고 수익을 올리는 동영상만 노출되는 사이트에서 개인이 만든 동영상이 뜨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동영상 하나 만드는 데도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스마트폰 유스트림 앱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되는 장면이 페이스북에 뜬 모습. ⓒ 시사저널 이종현
정제되지 않은 영상 넘쳐날 우려도

그러나 새롭게 펼쳐진 플랫폼에서 개인 방송은 눈치 볼 것도, 거리낄 것도 없어 보인다. 누구나 무료로 계정과 채널을 만들어 PC·모바일·태블릿 등 다양한 기기를 이용해 간편하게 방송하는 ‘라이프 캐스팅족’이 될 수 있다. 민낯 같은 실시간 생방송을 SNS로 전파해 인기를 끌면 지인의 지인을 통해 무한 확산시킬 수 있다. 안 떠도 그만인데 떴다면 이를 가공해 각 사이트에 올릴 수도 있다. 자기 검열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보내는 영상이 넘쳐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인지라 사생활 침해 우려도 있다. 하지만 유스트림코리아 관계자는 “유스트림의 개인 방송은 우선 본인과 관계있는 지인·가족·단체가 SNS·메신저 등으로 방송을 공유한다. 유스트림코리아는 4월부터 좋은 개인 방송을 찾는 대로 홈페이지 하단에 ‘개인 방송’ 카테고리를 만들어 노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24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성인 콘텐츠 같은 것들이 오를 틈을 주지 않는다고도 했다.

하지만 ‘라이프 캐스팅족’이 어디 기쁨 주고 사랑받는 방송만 하겠는가. 한 지상파 방송 PD는 “자극적인 방송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개인들이 늘어날 소지가 다분하다. 무분별하게 들이대는 카메라가 얼마나 많아질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국영상응용연구소 대표이자 심리학자인 심영섭 박사는 “일단 사생활이 엄청나게 위협받는다. 이미 기존 방송에서 사생활 자체가 자본화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사생활이 콘텐츠가 되어 ‘힐링’이라는 이름을 달고 감정 산업으로 번창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 박사는 연출한 가짜 장면을 실제인 양 꾸며 관심을 끌려는 행태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 박사는 24시간 실시간 생중계가 가능한 개인 방송 확산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못하고 소비되면서 생기는 인권 침해’와 ‘자기 검열이 없어지는 현상’을 꼽았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다. 거리와 시간이 좁혀지고 있다. 모든 콘텐츠가 영상 플랫폼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동시다발적이 되면서 검열되지 않은 무분별한 영상들이 나돌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라는 말이 더 많이 입에 오를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