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마리화나 유혹에 빠졌다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5.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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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 넘쳐 부족한 감옥 문제 해결…세수 증대 효과 주장도

“범인을 체포해도 수용할 교도소가 없다.”

미래의 일이 아니다. 미국에 당장 닥친 현실이다. 미국의 교도소 수용 범죄자 수는 200만명에 달한다. 캘리포니아 주만 해도 33개의 성인 감옥 시설에 8만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현재 수용 인원이 14만명을 넘어 과포화 상태다. 이동식 다층 침대에 벌집과 다름없이 꽉 찬 교도소 내부 모습은 낯익은 장면이 되고 말았다.

수용 시설이 부족해지면서 생긴 사회적 부작용은 비극적이다. 지난 3월20일 미국 오리건 주 포트랜드카운티에 사는 한 남성이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한 부분은 살해 사건이 아니었다. 이 남성이 교도소에 방이 없어 살인 사건을 저지르기 며칠 전에 석방된 사실이 부각됐다. 범인은 이미 한 여성을 괴롭힌 혐의로 고발돼 법원 출두를 앞두고 있었는데, 교도소 시설이 부족해 구속을 면한 상태로 출두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워싱턴에서 ‘오락용 마리화나 합법화’를 축하하는 집회 참가자가 마리화나에 불을 붙이고 있다. ⓒ AP 연합
“마리화나 합법화하면 죄수 줄어든다”

살인 사건은 이 기간 중 일어났다. 범인은 노숙자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26세의 젊은 여성을 포함해 여성 두 명을 살해했다. 게다가 이 남성은 살인 사건으로 체포된 뒤 조사 과정에서 과거 다른 주에서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4년을 복역한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교도소 시설이 부족하지 않았다면 범인을 사전에 구속했을 것이고, 추가적인 살인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수용 시설 부족으로 시작된 논쟁이 이리저리 확산되면서 도달한 종착역은 예상외로 ‘마리화나’다. 교도소 논쟁 덕택에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교도소 시설 부족 문제는 결국 정부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도소에 갇힌 사람 중 상당수가 마리화나 관련 범죄자다. 마리화나만 합법화하면 된다. 그러면 정부는 세수를 늘릴 수 있고, 교도소는 적정 수용 인원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만큼 마리화나가 양성화될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세수 증대 효과를 정확히 산출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칼 데이비스 세금경제정책연구소(ITEP) 선임분석가는 “마리화나 합법화는 분명 세수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영리 재단인 카토(Cato)연구소의 2010년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마리화나 합법화는 미국 연방 재정만 따져도 연간 87억 달러의 세수 증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최근 워싱턴 주는 마리화나를 오락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합법화했는데, 전문가들은 워싱턴 주가 향후 5년간 19억 달러의 추가 재정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리화나 합법화는 세수 증대 효과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지방 정부들이 마리화나 사용을 규제하기 위해 투입하는 막대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마리화나 관련 범죄자가 일반 범죄자를 넘어서고 있고, 단순 소지 혐의만으로도 4만명 이상이 감옥에 수용돼 있다. 이들의 관리에 들어가는 예산만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마리화나 합법론자들에게 유리하다. 56%를 넘는 사람이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은 최근 연구 보고서를 통해 “마리화나 합법화는 폭력과 범죄의 증가는 물론 사회적 분열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리화나 합법화 반대론자들은 담배 등의 부작용에서 볼 수 있듯 합법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의료비가 증가하는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해 오히려 국민에게 세금 부담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약류 사용량이 늘어날 것이고, 그에 따라 오남용 피해가 극에 달할 것이라는 정반대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수용 인원이 넘쳐 과밀화된 캘리포니아 교도소 모습. ⓒ EPA연합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합법화 찬성

반대론자들의 바람과 달리 미국 내 감옥이 붐비자 이미 여러 주는 단계적인 마리화나 합법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마리화나 합법화가 대세인 셈이다.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18개주와 워싱턴 D.C.는 의료용에 한해 마리화나를 허용하고 있다. 특히 워싱턴 주와 콜로라도 주는 마리화나를 오락용으로 사용하는 것까지 허용하기로 입법화했고, 다른 주들도 마리화나 사용을 합법화하는 여러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감옥이 붐비는 것은 행정 당국에게는 매우 골칫거리인 것 같다. 보수적인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마저도 “앞으로 미량의 마리화나 소지자는 주차 위반과 같은 단순 법규 위반자로 처리돼 유치장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반면 공화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 주)은 “오바마와 부시 전 대통령도 마리화나를 피운 경력이 있다. 이들은 감옥에 갇혀 인생을 망칠 수도 있었지만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많은 사람은 그런 행운을 갖지 못한다. 훌륭한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해 감옥에 가는 것은 큰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합법화를 거들고 나섰다. 카터는 “포르투갈에서는 몇 년 전에 모든 마약이 처벌 대상에서 빠졌지만, 오히려 사용량이 급격히 떨어졌고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다”며 “마리화나를 합법화하자는 게 아니라 마리화나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도록 처벌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흐름에 곤혹스러운 쪽은 미국 연방 정부다. 미국 연방법은 마리화나를 불법 마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순 소지만으로도 구속할 수 있고 최대 5000달러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미국 법무부는 최근 주민투표로 확정된 여러 주의 마리화나 합법화 법안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할지, 아니면 효력을 인정할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만 1500만명이 정기적으로 마리화나를 흡연하고 있다는 현실, 마리화나로 늘어나는 세수. 가득 찬 감옥 시설 문제로 불거진 마리화나의 유혹은 ‘합법화’로 귀결될까. ‘동성 결혼’과 함께 합법화의 뜨거운 감자로 거론되는 마리화나 문제의 해결은 지금 종착역에 가까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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