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그는 소설가
  • 허남웅│영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5.0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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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숏!숏!숏! 2013> 원작자로 주목

제1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감독도, 배우도 아닌 소설가 김영하씨였다. 그가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에 출연해서가 아니다.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무려 네 개나 소개됐기 때문이다.

<비상구>와 <오빠가 돌아왔다>는 동명의 영화로, <마지막 손님> <피뢰침>은 <The Body>와 <번개와 춤을>이라는 제목으로 스크린에 옮겨졌다. 이 중 <오빠가 돌아왔다>를 제외한 세 작품은 전주영화제가 소설과 영화를 묶어 기획한 <숏!숏!숏! 2013>이라는 제목의 옴니버스로 소개됐다.

김 작가의 소설은 그전에도 몇 차례 영화화된 적이 있다. 다만 단편 <사진관 살인 사건> <거울에 대한 명상>을 장편으로 묶은 <주홍글씨>(2004년)처럼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잘된 영화가 없다. 대부분 엎어지거나 <주홍글씨>처럼 스타를 캐스팅하고도 실패하거나…. 영화계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내 소설은 영화화하기 편한 작품은 아니다.”

<숏!숏!숏!>에 대해서는 좀 다른 반응이 나온다(인터뷰 당시 그는 아직 <오빠가 돌아왔다>는 보지 못한 상태였다). “나의 예상과는 다른 면이 있다. 게다가 영화가 잘 나와서 관객도 재미있어 하고 덕분에 나도 인터뷰가 늘어났다. 좋은 의미에서 <숏!숏!숏!> 영화들에 대해 놀랍다.”

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그런 것일까. <비상구>는 모텔에서 생활하는 20대 청년이 사랑하는 여자와의 섹스를 탈출구 없는 현실의 ‘비상구’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The Body>에서는 영화용 분장 시체를 둘러싼 현실과 환상이 극적으로 교차한다. <번개와 춤을>은 번개를 맞고 새로운 경험에 눈뜬 사람들의 기묘한 의식과 로맨스가 펼쳐진다.

ⓒ 허남준 제공
‘원작과 멀어졌으면 하는 바람’ 이뤄져

<숏!숏!숏!>에 참여한 이상우(<비상구>) 감독, 박진성·박진석(<The Body>) 감독, 이진우(<번개와 춤을>) 감독은 사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연출자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우 감독은 <엄마는 창녀다>(2009년) <아버지는 개다>(2010년)와 같은 도발적인 작품으로, 박진성 감독은 마니아들로부터 호평받았던 호러 영화 <기담>(2007년)의 원작자로, 이진우 감독은 장편 데뷔작 <팔월의 일요일들>(2005년)이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는 등 이들은 영화계에서는 이미 능력을 인정받았다.

김영하 작가도 처음 이들이 <숏!숏!숏!> 감독들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누군지 잘 몰랐다고 한다. 대신 ‘내 소설이 출발점이 돼 다시 돌아오기 위해 우회하기보다는 더 멀리 나아가서 아예 원작과는 멀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단다.

이는 소설의 영화화에 대해 김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경우다. 그래서 감독들이 자신의 단편을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게 각색해도 좋다며 감독들을 안심(?)시켰다.

<숏!숏!숏!>은 다행히 김 작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 됐다. 김 작가는 <비상구>의 순수한 날것과 같은 느낌이, <The Body>의 영화적 언어에 기댄 연출력이,

<번개와 춤을>의 예상치 못한 분위기 전환이 맘에 들었다고 한다. “<비상구>의 원작은 여자의 음모를 밀면서 시작하는데 영화가 이를 상징으로 처리하는 대신 그대로 다뤄서 놀라웠고, <The Body>는 실내에서만 진행됐던 소설과 달리 광활한 사구로 나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번개와 춤을>은 원작의 어두운 이야기와 분위기를 밝게 가져간 점이 흥미로웠다.”

자신이 손으로 쓴 문자가 카메라를 통과해 영상으로 바뀐다는 건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김 작가는 원작자로서 영화를 보는 게 한편으로는 불편한 경험이라고도 했다. 제 아무리 영화가 좋더라도 이야기를 더 잘 만들었으면, 대사를 더 잘 썼으면, 지문을 좀 더 잘 묘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원작자야말로 이야기를 유일하게 고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었던 사람 아닌가. 출판 당시에는 잊고 있다가 영화로 변형돼 나가면 그와 같은 내 마음이 개입되기 때문에 편치가 않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
데뷔 때부터 영화사들 구애받아

김 작가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특정 설정을 예로 들었다. “늙은 보르헤스가 강변을 산책하던 중 한 젊은이를 만난다. 신나게 얘기를 하다가 불편함을 느끼는데, 나중에 헤어지고 나니 젊을 때의 자기였던 것이다.” 그의 말로는 원작자와 영화의 관계가 바로 이와 같단다. “보르헤스의 소설에 나온 방식으로 젊었을 때의 나를 만나는 건데 편할 리가 있겠나.”(웃음) 그렇지 않아도 <비상구>는 김 작가가 20대 후반에 썼던 글이라서 40대 중반인 지금의 그가 보니 다소 민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김 작가의 소설 가운데 영화를 기다리는 작품은 꽤 많다. 그뿐인가.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996년)가 그랬던 것처럼 신작이 발표되기라도 하는 날엔 여러 영화사들이 영화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구애 경쟁을 벌일 정도다. 김 작가가 민망해하거나 말거나, 그를 향한 한국 영화계와 영화 팬들의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는다.

<숏!숏!숏!>과 <오빠가 돌아왔다>는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지만 조만간 일반 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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