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 가득 봄 바다 향 퍼진다
  •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5.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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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 4~5월 것이 달고 맛있어 어리멍게젓 비빔밥 일품

분분히 날리는 벚꽃에서 화사한 멍게 향을 맡는다. 어릴 적에 각인된 공감각이다. 내 고향은 마산인데, 벚꽃이 피고 질 때 어시장에는 멍게가 지천으로 깔렸고 멍게 딸 때의 향이 시내 전체를 휘감았다. 진해처럼 마산도 일제의 식민 도시로 건설돼 시내 곳곳에 벚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봄이면 ‘벚꽃비’를 맞으러 벚나무 밑을 찾아가곤 했다. 벚꽃에 온몸이 비를 맞은 듯 젖어도 벚꽃은 향이 여려 먼 어시장에서 날아오는 멍게 향을 이겨내지 못했다.

1980년 서울로 이주해 얼마 동안 나는 봄의 멍게를 잊었다. 서울에서 멍게를 먹을 수 있는 곳은 드물었고, 어쩌다 어렵사리 멍게를 먹게 되면 그 맛이 너무 반가워 계절 따위가 무에 중요한가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멍게를 먹었다. 그러다 서울에서 어느 때든 먹는 멍게가 예전 그 봄날의 멍게와 맛이 다르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고향 음식이라 생각해 멍게면 무조건 맛있다고 여긴 내 입이 간사스러웠던 것이다.

양식장에서 멍게를 끌어올릴 때 “바다에 꽃이 핀다”고 표현한다. 멍게는 겨우내 푸른 바닷물에 잠겨 있다가 봄이 되면 그 붉은 몸을 물 밖으로 내민다. ⓒ 황교익 제공
멍게는 여러 나라에서 먹는다

멍게는 측성해초목 멍게과 생물이다. 미더덕과 같은 목에 포함된다. 멍게는 미더덕의 향도 지니고 있는데, 미더덕보다는 휘발성 향이 강하고 쓴맛이 있으며 단맛은 깊다. 익히면 미더덕이 더 달다. 멍게와 미더덕이 비슷한 맛인 듯하지만, 둘을 놓고 비교해 먹어보면 많이 다르다.

미더덕은 벌레나 벌레집처럼 생겼다며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 많다. 미더덕은 세계의 바다에 고루 분포해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의 사정은 어떤지 인터넷에서 한참을 뒤진 적이 있다. 찾아보니 미더덕을 먹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다. 혹 내가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하여간 미더덕을 먹는 지역이 있다 해도 극히 일부일 것이다.

멍게는 많은 나라에서 먹는다. 일본에서도 먹고, 유럽에서도 먹으며, 남미에서도 먹는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먹는다. 특히 일본에서는 동북부 지방 사람들이 즐겨 먹는데, 2011년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 일본 멍게 주산지였다. 한때 국산 멍게 가격이 비싸면 이 지역 멍게가 수입되곤 했다.

①줄에서 떼어낸 멍게를 바닷물에 씻고 있다. 달콤한 향이 작업장 안에 가득하다. ②멍게 파스타. 박찬일의 요리다. ③어리멍게젓에 부추를 넣고 비볐다. 멍게 향을 제대로 즐기기에 그만이다. ⓒ 황교익 제공
플랑크톤을 먹고 자란다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멍게를 먹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남해와 동해에서 흔히 나는 것이니 오래전부터 식용했을 것이다. 멍게가 내륙 도시까지 유통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멍게는 바닷물 없이 웬만큼 버티는데도 내륙 유통이 이리 늦은 것은 내륙 사람들이 그 독특한 맛과 향에 적응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기 때문일 게다. 멍게는 한번 입맛을 들이면 중독 수준에 이른다. 내륙에서도 멍게 중독 소비자가 늘고 있어 그 수요는 꾸준히 늘 것이다.

자연 상태의 멍게는 바닷물 속 바위에 붙어산다. 껍질에는 울퉁불퉁 돌기가 돋아 있는데, 정상부의 커다란 두 돌기는 위에 구멍이 나 있다. 하나는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입수공이고 하나는 물을 뱉는 출수공이다. 바닷물을 빨아들여 함께 들어온 플랑크톤은 먹고 물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멍게를 가르면 흔히 ‘똥’이라 부르는 거무스레한 것이 있는데, 멍게가 소화를 하기 위해 쌓아둔 플랑크톤 등이다. 이 ‘똥’을 더럽다 하여 박박 씻다가 멍게의 향까지 달아나게 하는 일이 흔하다. 대충 씻어도 된다.

멍게는 몸 안에 정소와 난소를 다 지니고 있으며, 무성생식과 유성생식 두 가지 방법을 동원해 번식한다. 무성생식은 어미의 몸에서 새끼가 솟아나와 서로 붙어 군체를 이루는 것이며, 유성생식은 알과 정자를 바닷물에 뿜어 수정을 하는 것이다. 수정된 알은 곧 유생이 되어 며칠 바닷물 속을 떠다니다 바위에 달라붙어 성장한다. 이렇게 하여 3년 정도 자라면 먹을 수 있는 크기가 된다. 이런 자연산 멍게는 이제 귀하다.

양식 멍게라고 해서 자연산 멍게보다 맛이 덜한 것도 아니다. 양식 과정에서 먹이를 주거나 하는 것이 아니며 자연산이나 양식이나 바닷물 속에서 내내 자라는 것은 같기 때문이다. 1970년대 시작된 멍게 양식은 초기에는 산란기인 겨울에 넝쿨식물 줄기를 바다에 내려 멍게의 유생을 부착해 키웠다.

요즘은 어미 멍게를 폐쇄된 공간에서 넣고 환경을 조성해 유생을 부착한다. 먼저 수온을 맞춰 어미 멍게가 산란하게 하고 그 유생을 가는 줄에 부착시킨다. 멍게 유생이 붙은 가는 줄은 6개월 정도 통제된 환경에 둬 유생이 잘 자라게 둔다. 여름에 접어들면 새끼 멍게가 붙은 가는 줄을 굵은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돌돌 만다. 멍게가 크게 자라도 잘 붙어 있을 만한 끈이 필요한 것이다. 이 굵은 줄을 양식장에 가져가 바닷물 아래로 내린다. 이렇게 바닷물에 내린 멍게는 이듬해 봄부터 거둘 수 있다. 햇수로 2년생인데 이즈음의 멍게는 조금 잘아도 연하고 향이 곱다.

최절정의 멍게 맛을 즐기려면

앞서 ‘나는 얼마 동안 봄의 멍게를 잊었다’고 했다. 멍게면 다 같은 맛인 줄 알고 분별없이 먹은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맛있는 멍게는 첫입에는 쌉쌀하지만 이어 달콤한 맛이 올라온다. 멍게에서 가끔 휘발성의 쓴맛이 강하게 올라올 때가 있다. 이건 맛없는 멍게다. 이 맛의 차이는 멍게 제각각의 개체에 따라 나는 것이 아니다. 계절이 문제다. 4~5월의 멍게가 달고 맛있다. 6월 넘어 날씨가 더워지면 휘발성의 쓴맛이 강하게 올라온다. 살도 물러진다. 봄날의 멍게가 최절정의 맛을 자랑한다.

4~5월의 멍게를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냉동하는 것이다. 냉동한다고 맛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잘 손질해 급속 냉동한 것은 숙성되어 향이 더 짙어지고 살은 쫄깃해진다. 냉동 멍게를 파는 가공업체들이 있는데, 4~5월의 것이면 구입해둘 만하다. 집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깐 멍게를 옅은 소금물에 헹궈 비닐에 돌돌 싸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냉동으로 절정의 맛을 그대로 보관하는 것은 어렵지만, 멍게의 향을 증폭시켜 즐기는 방법도 있다. 어리멍게젓이다. 먼저 멍게를 따고 ‘똥’을 씻어낼 때 멍게 안의 물로 씻는다. 그러니까 멍게 물로 멍게를 씻는 것이다. 그대로 채반에 잠시 두어 물기를 줄이고 중량비 약 2.5%의 소금을 더해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2.5% 정도면 젓갈에는 무척 적은 양이다. 이 적은 소금으로도 괜찮은 것은 멍게 물로 멍게를 씻었기 때문이다. 이를 어리멍게젓이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어리’는 ‘얼’이고, ‘얼’은 ‘얼간’, 즉 ‘소금을 조금 친’이란 뜻이다. 15일 정도면 충분히 숙성된다. 두고두고 먹자면 공기와 접촉되지 않게 비닐로 돌돌 싸서 냉장하면 된다.

어리멍게젓은 멍게의 단맛과 향은 살리고 휘발성의 쓴맛은 없앤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비빔밥을 해서 먹기에 딱 좋다. 여러 채소나 양념은 필요 없다. 5월이면 부추가 맛있는 철이다. 부추에 어리멍게젓 그리고 참기름 두어 방울이면 된다. 벚꽃은 다 지고 오만한 봄볕이 벌써 마루를 따뜻하게 데우는 오후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다.

 

편집자 주│철마다 맛을 돋우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호부터 황교익의 ‘맛을 찾아서’를 격주로 연재한다. 필자는 <맛 따라 갈까 보다> <미각의 제국> 등을 쓴 맛 칼럼니스트로, 독자 여러분을 오묘한 미각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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