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적자’ 버리고 ‘양자’ 들이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5.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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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광주는 아직도 잿빛으로 남아 있다. 신이 선물한 이 눈부신 계절이 차라리 더 슬프다. 그래서 변화를 갈구하는 광주의 몸부림은 뜨겁고 치열하다. ‘민주화의 성지’ 호남의 분위기가 지금 심상찮다. 5월을 맞아 더 요동치고 있다. 그 진원지는 광주다. 지금껏 애써 묵묵히 지켜봤던 민심도 이제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내는 듯하다. 중앙 정치권을 향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표출되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5·18 민주항쟁 33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광주를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정치 행보의 신호탄이다. 민주당은 김한길 신임 대표 등 전 지도부가 당일 행사 참석뿐만 아니라 아예 그곳에서 하루를 묵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민주당의 조바심과 위기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호남은 싸늘하다. 때마침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이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까지 불거지면서 박근혜정부에 대한 실낱같은 기대마저도 무너지고 있다. 그 부메랑도 결국 민주당을 향한다. “이런 여당보다 더 못난 야당이 한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호남 민심이 우리를 떠난 것 같다”고 넋두리하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의 불길한 예감은 최근 현실이 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향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호남이 “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 파트너로 안철수 의원을 꼽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호남은 적자인 민주당을 버리고, 안철수를 새로운 ‘양자’로 선택하려 하고 있다. <시사저널>이 격동하는 호남 민심을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5월8일 실시한 호남 지역 민심 여론조사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다. 호남 민심은 민주당을 떠나 안철수에게 향하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5일 광주 전남대에서 초청 강연을 마치고 청중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10명 중 6명 “안철수는 대통령감”

이번 여론조사를 준비하면서 <시사저널>은 작심하고 ‘돌직구 질문’을 던져봤다. ‘안철수 의원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느냐’고 대놓고 물어본 것이다. 그랬더니 호남 지역 주민 6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40%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정확하게 6 대 4의 비율로 ‘안철수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나온 셈이다. 연령층별로 보면 30대(67.7%)를 비롯한 40대 이하 청·장년층에서 호감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전남과 전북 사이에 약간의 온도 차이가 있었다. 전남은 ‘안철수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65.9%로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전북에서는 53.4%로 다소 낮게 나타났다.

안 의원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생각한다는 이들은 그 이유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를 수 있는 탈이념적 성향’을 가장 많이 꼽았다. 28.6%가 이렇게 답했다. 안 의원의 트레이드마크인 ‘새 정치 표방 때문’은 24.4%였다. 그 밖에 ‘자질과 능력이 출중해 보여서’가 22.5%, ‘민주당에 마땅한 대안이 없으므로’가 14.9%였다. 최소한 지금 호남에서의 안 의원 지지도가 꼭 민주당 반감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40대 이하 연령층은 ‘탈이념적 성향’을 꼽은 반면, 50대는 ‘새 정치’를, 60대 이상은 ‘자질과 능력’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광주에서 ‘탈이념적 성향’(41.6%)이 높게 나온 반면, 전남에서는 ‘자질과 능력’(28.3%)이 가장 높게 나왔다.

반대로 안 의원을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가장 큰 이유로 ‘정치 경험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45.1%가 여기에 답했다. 그 뒤를 ‘중도라는 이념적 성향이 애매해서’(20.4%), ‘자질과 능력이 부족해 보여서’(14.8%) 등이 이었다. 20대에서 특히 ‘정치 무경험’이 61.2%나 나왔고, 40대 이상 연령층에서도 모두 정치적 경험의 일천함을 단점으로 꼽은 반면, 30대에서는 ‘중도 성향의 애매성’(38.9%)이 가장 높았다.

차기 대권, 안철수 25.7%-문재인 6.3%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호남은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에게 광주 92.0%, 전남 89.3%, 전북 86.3% 등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문 후보는 패배했다. 그렇다면 지금 호남은 차기 대권 주자로 누구를 보고 있을까? 안철수 의원을 꼽은 이가 가장 많았다. 25.7%였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6.3%에 그쳐 지난해 대선에서의 압도적 지지 열기를 무색케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0.8%) 등 나머지 인물들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정확한 호남 민심은 ‘현재 지지하는 대권 주자가 없거나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쪽이 대세다. ‘없다’가 41.0%, ‘모름·무응답’이 23.7%였다. 전체의 64.7%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안 의원에 대한 지지율은 의외로 20대(24.0%)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은 가운데 30대(36.5%)와 40대(32.3%)에서 높게 나타났다. 20대에서는 문 의원(13.2%)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지역별로는 큰 편차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광주(32.8%)에서 전남(22.5%), 전북(23.6%)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 의원에 대한 지지율이 조금 더 높았다.

안 의원에 대한 호남 지역 주민들의 기대감은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안철수 신당이 출현할 경우 어떤 정당을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압도적 1위로 ‘안철수 신당’을 지목했다. 44.1%였다. 민주당 지지는 24.7%에 그쳤다. 새누리당이 6.6%를 차지했고,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은 각각 2.2%, 0.9%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연령별로는 역시 30대와 40대층에서 안철수 신당에 대한 지지율이 과반을 넘을 정도로 큰 기대감을 보였다. 각각 53.2%와 51.0%로 나타났다. 60대 이상에서는 상대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30.8%로 높게 나와 고연령층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호남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민주당에서 안철수 세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 확연해진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 간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이 일대일 통합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35.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민주당의 최대 주주라고 할 수 있는 호남 지역 주민들이 127석 의석을 가진 제1야당에게 불과 무소속 의원 2명으로 구성된 안철수 세력과 일대일 통합을 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이 해체해서 안철수 세력과 함께 새로운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답한 이도 21.3%에 달했다. 과반이 넘는 56.5%가 민주당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안 의원이 민주당에 입당해야 한다’는 의견은 16.1%에 그쳤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은 같이 가선 안 된다’는 의견은 16.3%였다.

5월4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김한길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 ⓒ 시사저널 임준선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 일대일 통합해야”

‘안철수 신당의 창당과 그 시기’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일단 신당 창당에 찬성하는 입장이 51.7%로 반대 입장(38.3%)보다는 높게 나타났으나, 시기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렸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가 22.6%로 나타난 반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 16.3%, ‘올해 10월 재보선 전’ 12.8%로 각각 나타났다. 전반적인 반대 입장 가운데서도 ‘창당해선 안 된다’는 분명한 반대 의견은 3.7%에 그쳤고, ‘시기상조인 만큼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34.6%로 다수를 차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안철수 의원 개인에 대한 인기보다도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 워낙 크다 보니 그 대안을 찾지 못하는 호남민들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민주당이 과거 DJ(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새천년민주당과 유사한 강령으로 돌아가려 한다. 호남은 이제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 논쟁에서 탈피하고 민생에 전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안 의원의 ‘탈이념’을 지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민주당에 대한 호남민들의 실망은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그것을 민주당이 지금껏 제대로 못 읽고 있었던 것이다. 더는 이념의 낡은 틀에 얽매이지 말라는 경고로 읽힌다”며 “당분간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은 각자 도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한 경쟁이 불가피하고, 호남도 두 세력 간의 경쟁과 연대를 지켜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 찍겠다” 31% 불과  

민주당에 대한 호남 지역 주민들의 싸늘한 시선은 ‘민주당 지지 여부’를 묻는 직접적인 질문에서도 두드러진다. ‘현재는 지지하지만 향후 바뀔 수도 있다’는 응답이 52.9%나 됐다. 민주당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현재는 지지하지 않지만 향후 바뀔 수도 있다’는 응답은 18.3%로 두 번째였다. 전체의 71.2%가 민주당이 하기에 따라서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반면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민주당만 지지할 것’이라는 응답과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은 각각 11.7%, 11.4%다. 호남 민심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광주의 민심에 이목이 집중된다. 무려 61.2%가 ‘현재는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향후 바뀔 수도 있다’고 답했다. ‘변함없이 지지할 것’이라는 응답은 단 5.2%에 그쳤다. 반면 ‘현재도 앞으로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란 응답이 14.9%에 이른다.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 지역 민심이 민주당에서 급격히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내년 지방선거나 향후 재보선 및 총선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민주당 후보 지지’는 31.0%로 나타난 반면, ‘민주당이 아닌 다른 야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 지지’도 29.0%로 나타났다. 오차 범위 내 차이다. ‘모름·무응답’이 33.0%를 차지했다. 이제 민주당 간판으로는 호남에서 당선을 장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더는 호남을 민주당의 텃밭이라 부르지 말라는 뜻과 다름없다. 특히 30대의 민심 이반이 두드러진다. 다른 야당 및 무소속 후보 지지 의견이 41.5%로 민주당 지지 21.4%를 훨씬 앞서고 있다. 지역별로도 역시 광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다른 후보 지지가 34.3%로 민주당 후보(22.6%)에 비해 오차 범위를 벗어나서 더 많았다.

‘향후 민주당의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도 안철수 의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안철수 세력과 합해서 중도 보수층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45.1%에 달했다. ‘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당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14.2%나 된다. 반면 ‘지금 김한길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해야 한다’는 의견은 19.7%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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