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정치공학적으로 보려 해선 곤란”
  • 전남 무안·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5.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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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화합용 총리 후보로 거론됐던 박준영 전남도지사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17개 광역단체장과 의원, 227개 기초단체장 및 의원을 뽑는 선거다. 교육감도 선출한다. 새 정부 출범 1년 2개월 만에 전국 규모의 첫 심판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역대 정부 첫 선거에서 여당이 언제고 ‘재미를 못 봤기’에 긴장 속에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총선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좀처럼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야당들은 존립의 운명이 걸린 만큼 저울질에 바쁘다.

여야 국회의원들도 본인의 이해와 직결되기에 너나없이 현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안철수 신당’이라는 거대 변수로 더욱 헷갈리는 상태다.

광역단체장은 일개 ‘지방 장관’에 그치지 않는다. 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이나 총리 후보군이 적잖다. 여권 지도부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행보를 늘 주시한다. 야권의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박준영 전남도지사, 안희정 충남·이시종 충북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 등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욕심이 없다고 말하는 염홍철 대전시장 등도 주요한 변수로서 주목 대상이다. 도세가 약하다지만 제주 우근민 지사 등의 경우도 나름의 목소리를 낼 소지는 충분하다. 기초단체장과 의원들도 ‘차기 지도자’요 ‘잠재적 위협’ 요소다. 이렇듯 다수의 계산과 이해가 얽히고설켜, 온 나라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먼 산 바라보듯 할 게 아니라 짬을 내 이들을 감시해야 한다. 이들의 권력 관계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최소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세금을 주무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2014년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17개 광역단체와 주요 기초단체장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현장의 문제점을 찾아볼 계획이다. 그 첫 번째 순서로 박준영 전남도지사를 만났다.

 

ⓒ 시사저널 전영기
2012년 전라남도의 재정 자립도는 14.6%.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꼴찌다. 1위인 서울의 87.7%와 비교해보면 살림살이 형편이 짐작된다. 도내 22개 시·군에 거주하는 인구는 200만명이 채 못 된다.

도세는 이렇지만 정치적으로는 ‘또 다른 1번지’다. 한국의 민주와 인권의 보루라는 자긍심이 곳곳에 배어 있다. 정치적 대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한 이후 표류하는 감이 없지 않으나 기백은 여전하다. 갖가지 일정으로 바쁜 박준영 전남도지사를 집무실에서 만났다. 광주에서 목포 인근 무안으로 옮겨온 23층 도청사는 허세로 느껴질 만큼 덩치가 크다. 기자가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박근혜정부가 총리로 영입하려 했다는 얘기를 꺼내자, 박 지사는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저 지사 일이나 열심히 하겠노라고 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남의 자랑거리로 무엇을 꼽겠는가? 일부 비판론자들 말에 따르면 인구·경제력 등 이른바 객관적 수치로만 보면 대단할 게 없다는데.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땅, 온화한 기후 등등 이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천혜의 청정 자연 환경이 널려 있다. 공기의 비타민이라는 음이온이 여타 도시 지역보다 15배나 많다. 미세먼지는 서울의 단 1% 수준이다.

전남의 청정 자원에 대해 모두 인정하고 있고, 웰빙이 돈보다 값지다는 데도 다수가 공감한다. 하지만 도민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도지사 스스로가 “잘사는”, 한마디로 소득 증대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비교 우위의 자원을 활용해 낙후를 벗어나려고 한다. 훈훈하게 잘사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남도만의 넉넉한 인심과 친환경 먹거리를 더해 웰빙 건강 수요를 충족시키는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다른 지역민들께서도 남도의 멋에 반해 찾을 것이다. 단순한 방문을 넘어 거주를 위해서도….

‘전남=친환경’ 등식은 맞나?

전남의 친환경 면적은 전국의 60%다. 수도권 급식 쌀 48%와 과채류 51%를 담당한다. 이에 힘입어 농가 부채는 전국 최저다.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수산 분야는 어떤가?

전국 수산물 총 생산량의 43%를 차지한다. 이런 강점을 활용해 수산 자원의 기업화·규모화를 추진했다. 7곳에 품목별 어업이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전복 양식 섬을 조성해 수출양식단지로 육성하고 있다.

‘황토소금’ ‘솔트리 토판염’ 등은 세계 최고라고 알려진 프랑스의 겔랑드 염전을 압도한다던데.

항암과 성인병 예방 효과가 있다는 천일염 생산과 품질은 전국 최고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다. 미네랄 함유 등 질적인 부문에서 겔랑드를 압도한다.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최고를 생산하도록 돕고 있다.

최근 진도에서 생산되는 울금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울금은 인도 사람들이 먹는 카레의 주원료다. <동의보감>에도 간장 해독을 촉진하고 담즙 분비 및 이혈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암세포 증식 억제 설명은 일본 도쿄 대학 이토가와 교수의 연구 결과다. 일본과 영국 학자들은 뇌 활성화와 두뇌 발달에도 효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4월20일 ‘2013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개장식에서 박준영 전남지사(오른쪽 세 번째)와 조충훈 순천시장(오른쪽 네 번째) 등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축산 부문은 어떤가?

축산 환경 및 축산물 인증 농가가 3600여 호로 전국 대비 39%나 된다. 이 부문도 1위다.

어차피 농수산물만으로는 획기적 소득 증대와 일자리 확보 등에 한계가 있을 텐데.

물론이다. 비교 우위의 미래 성장 산업으로 생물(바이오), 신소재, 우주항공, 신재생 에너지, 해양 레저, 친환경 전기차 등을 꼽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하기 좋은 투자 환경을 조성 중이다. SOC(사회간접자본) 확충은 물론 저렴한 산업 용지 보급과 함께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특산 자원을 활용한 식품·생물·나노바이오·천연·한방·해양·생물방제 등 7대 특화 분야를 주목해달라.

요즘 남도의 풍광을 살린 사업도 인기를 모은다고 들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은퇴도시, 전원형 농어촌 뉴타운, 행복마을 등은 우리의 자랑거리다. 장흥 은퇴도시는 1500세대로, 모델이 될 만하다. 귀농 인구가 5년 전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살기 좋다는 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싫은 소리도 좀 하자. 도지사가 너무 나서서 공무원들이 힘들다고 하더라. 일거리도 많이 만들고. 또 업자들 입장에서는 너무 내 지역만 챙기려 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컨대 이곳 출신 업자에게만 납품 허가 자격을 준다는 등. 다른 부문에서도 이런 식의 이미지가 고착된다면 전체적으로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예를 들어, 솎아낸 나무를 그냥 버리는 게 아까워 그것을 모아다가 기념품을 만들게 했더니 명품 만년필이 탄생하더라. 무엇이 도민 생활에 나을까 싶어 궁리를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 실천 과정에서 공무원들은 힘이 들게 마련이다. 더 주지도 못하면서 일만 시키니 미안하다. 이 지역의 업자들만 챙긴다는 것은 지나친 억지다. 다만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려하고…. 이는 모든 지자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다.

어쨌거나 ‘내 식구 껴안기’ ‘내 지역 챙기기’ 인상이 너무 지나치면 전국적으로는 손해 아닐까? 박 지사가 강조하는 ‘더 큰 전남’을 위해서도 말이다. 경제 부문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대통령 및 총리를 배출하거나 전국구 스타를 내는 데서도….

열린 자세로 임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우리를 헐뜯는 일각의 협량까지도 수용하려고 한다.

박 지사는 지난 1월 도의회에서 물세례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지난해 12월 대선을 두고 ‘호남이 스스로 정치를 잘 못했다고 평가한 세력에 대해 광주에서 92.0%와 전남에서 89.3%의 몰표를 준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 지적 때문이라는데, 아무리 지역적으로 쏠림 현상이 강하다고 하지만, 그 정도의 완곡한 지적조차 참지 못한다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오랜 세월 소외되다 보니 (지역민들의) 피해의식도 적잖음을 이해해야 한다. 정말 착하고 온순한 주민들이다. 정도 누구보다 많고….

박근혜정부가 박 지사를 총리감으로 꼽던데, 알고 있나?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나중에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내가 거기에 뭐라고 할 바는 아니다. 적절치도 않고, 또 공연한 오해와 잡음만 더하게 된다.

박근혜정부가 박 지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지난 10년여 도정의 치적과 더불어 합리성과 중용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에 대한 사랑이다. 갈등과 다툼은 봉합해가고…. 그래야 미래가 있다. 그 실천 과정에 곡절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려고 해선 곤란하다. 국회도 여야로 나뉘어 내 이익, 내 편의 유리함만 챙기려 할 게 아니다. 국정이건 도정이건 다수에게 보탬이 되는 정치가 돼야 한다.

3선 지사이니 내년 지방선거의 ‘차기’ 욕심도 없을 테고…. 그러나 ‘안철수 변수’로 내년 지방선거가 복잡해졌다.

어느 지역이나 이른바 특수성은 존재하고, 또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중앙 정치에 휘둘리는 말 그대로의 ‘정치 일변도’의 지방선거는 지양돼야 마땅하다.  주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다.

요즘 민주당이 어렵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북한의 괴기한 행보로 민주당이 날벼락을 맞았다. 안보와 경제 위기감 속에 젊은이와 여성 등 지지층 이탈도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보통의 도백과는 다른 위치의 박 지사이니 이럴 때 한 수 거들어야 할 것 아닌가.

진보를 지향하는 것은 옳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는 진보는 역사 발전과 일치한다. 그러나 말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항상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숙고하고 실천해야 한다. 어느 정부의 성공과 실패 여부에 대해서는 공연히 억지 쓸 계제가 아니다. 국민이 분명히 가려내게 돼 있다.

박근혜정부의 성공이 궁극적으로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당이 다르다고 총리직을 마다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제발 그 얘기 좀 말아줬으면 한다. 


‘원칙과 소신’ , 박 대통령과 코드 맞출까 
박준영은 누구인가

세 번이나 민선 도지사에 당선됐고, 지난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대중 정치인의 궤적인데, 그러나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곳은 대중 정치와는 거리가 먼 언론계였다. 이런 그가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이 가운데 많은 이의 평가와 분석이 일치하는 대목이 있다. 원칙에 철저한 합리주의자라는 점이다. 또 일단 옳다고 믿으면 밀고 나가는 결단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호남 유권자들이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90% 안팎의 표를 몰아준 것과 관련해 “좋은 투표 행태가 아니다. 무겁지 못했다”고 일갈한 것은 박 지사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박 지사는 “감정에 휩쓸리거나 어떤 충동적인 생각 때문에 투표하는 행태를 보이면 전국적인 현상과는 다른 판단을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는 ‘결국 호남만 고립된다’는 그의 고향 사랑이 배어 있다.

투표가 끝난 지 한 달이 채 안 돼 예민할 대로 예민한 호남 민심을 꿰고 있음에도 그는 소신의 일단을 피력한 것이다. 친정인 민주당의 호남 지역 3개 시도당이 발끈해 ‘망언 비난’ 성명을 발표하고 한 도의원이 컵에 든 물을 끼얹는 소동을 벌였지만, 그는 태연했다. 내 감정만 앞세우다가는 더 많은 후배 동향인들이 더 큰 것을 잃는다며 주민을 설득했다.

이런 식의 고집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 사업 때도 있었다. 자신이 속한 민주당 지도부가 4대강 반대 투쟁에 나섰음에도 그는 정반대편에 섰다.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이 오염될 대로 오염돼 모든 예산을 끌어들여 우선 정비에 나서야 할 판인데 정략적 이유로 마다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지론을 고집했다.

박근혜정부가 한때 박 지사를 ‘첫 총리’감으로 검토한 것도 이러한 소신과 합리적 자세를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를 비판하는 측은 박 지사가 ‘호남 총리론’을 의식해 다른 길을 걷는다고 비아냥거리지만 박 지사는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그는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를 지내던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보도를 억압하는 신군부에 반발해 신문 제작 거부를 주도했다. 신군부의 시퍼런 서슬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제 해직됐다가 7년여 만에 복직한 뒤 뉴욕특파원·정치2부장·부국장을 거쳤고, 김대중 대통령의 공보수석 겸 청와대 대변인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배경이 정치인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고 호남 총리론 연속선에서 그가 거명되는 게 우연은 아닌 듯이 보인다. 신문기자 해직 기간 중 미국 오하이오 대학에서 신문학 석사, 복직한 이후에는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따냈던 집념도 그의 주요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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