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 잡기는 좋은데 돈이 안 되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5.15 09: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입차 시장 뛰어든 재벌 2세들 별다른 재미 못 봐

신차 시장 점유율 10%를 넘어선 수입차업계는 재벌 2세들의 경영 수업 시장으로 불린다. 재벌가 2세가 힘 안 들이고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수입차 딜러가 되려면 서울 강남 등 요지에 전시장 하나, 한적한 곳에 직영 정비 공장을 갖출 재력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어림잡아 300억~500억원가량이 든다. 이런 현금을 동원하려면 재벌 2세나 중견 그룹 정도나 가능하다. 때문에 수입차 딜러로 GS·효성·LS·일진·극동유화·KCC정보통신·참존·한미반도체 등 재벌과 중견 기업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은 취미가 아니다. 수입차 점유율 10% 시대에 재미를 보는 곳도 있고 적자 누적으로 사업을 접는 이도 있다. 독일 차 전성시대이다 보니 독일 차와 손을 잡은 기업은 웃고, 일본 차와 손을 잡은 곳은 울상이다. 국내에서는 재벌이라는 슈퍼 갑이지만, 수입차 딜러라는 을의 입장에서 손해를 감수하는 재벌 2세도 있다.

국내 재벌 중 수입차로 가장 크게 재미를 본 경우는 코오롱그룹이다. 1987년부터 BMW 딜러를 맡은 코오롱모터스는 전국에 7개 전시장(강남·삼성·분당·대전·대구·부산·광주)과 10개의 AS센터 네트워크를 갖춘 국내 최대의 딜러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벌인 사업 중 최대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하지만 코오롱모터스라는 법인은 없다. IT 버블 붕괴 이후에는 새롭게 코오롱에 합류된 코오롱글로텍이라는 회사에 합병돼 현금 수입원 역할을 했다. 글로텍과 분리된 이후 2011년 코오롱건설·코오롱아이넷과 합병돼 코오롱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차를 수입하고 있다. 코오롱측은 “코오롱건설을 살리려고 합병한 게 아니라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 합병했다”고 밝혔다. 2012년 코오롱글로벌의 매출액은 3조6600억원이다. 이 회사의 매출은 건설·무역·유통을 더한 것이고, 이 중 유통 부문이 9500억원에 달한다. 여기서 IT 관련 매출액 2400억원을 뺀 7000억원이 자동차를 팔아서 올린 매출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이 1100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어쨌든 코오롱모터스는 그룹 계열사의 구원투수로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코오롱만큼이나 안정적으로 수입차 딜러 사업을 하는 곳이 극동유화그룹이다. 장홍선 회장이 이끄는 극동유화그룹은 현대차그룹과 인척간이지만 ‘과감하게’ 수입차 딜러를 하고 있다. 포드의 국내 딜러인 선인자동차와 아우디 딜러인 고진모터스 등 두 개 브랜드를 갖고 있다. 현재 아우디 딜러인 고진모터스는 효자이고 선인자동차는 포드차의 인기가 높지 않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LS네트웍스 용산 빌딩에 자리한 토요타 용산 전시장. ⓒ 시사저널 이상민
성공한 딜러도 큰돈 못 만져

2000년대 이후 시작한 재벌 2세 딜러 대다수는 고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효성그룹의 더클래스효성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MBK)의 강남·분당·안양·송파 딜러인 더클래스효성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MBK의 주주이자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인 화교계 한성자동차의 위세에 눌리고 있다. 더클래스효성에는 효성가 2세인 조현준·조현문·조현상 씨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조현준 효성 사장이 감사, 조현상 효성 부사장이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말 이들 형제가 모두 물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더클래스효성의 매출액은 지난 2년간 3000억원대 초반에서 답보 상태다. 2011년 8억9000만원의 순익을 냈으나 2012년엔 6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이 1%도 안 될 정도로 이문이 박한 점에 의문이 쏠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딜러는 강남 등 요지에 자체 소유 부동산이 없다면 답이 안 나온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즉, 수입차 딜러권을 갖고 있는 회사가 오너의 또 다른 부동산회사 빌딩에 임대를 들면서 임대료를 내는 구조라 손익계산서만 갖고 판단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MBK의 최대 딜러인 한성자동차가 바로 그런 구조다. 한성자동차는 계열 부동산회사가 한성차에 전시장을 빌려주면서 안정적인 임대 수입을 올리고 있다. 효성가의 또 다른 수입차업체인 효성토요타의 대표적인 쇼룸이 강남 성모병원 건너편 신축 빌딩 1층에 있다. 이 빌딩은 조씨 3형제가 만든 ‘신동진’이라는 부동산 투자회사 소유다. 효성토요타는 조씨 3형제가 지분 60%를 갖고 있다. 한성차와 효성토요타가 비슷한 수익 모델을 갖고 있는 셈이다.

서초·강서·평촌에 쇼룸을 두고 있는 효성토요타의 성적은 더클래스효성만 못하다. 매출은 지난해 크게 뛰어 1000억원을 기록했지만 2011년 43억원 적자, 지난해 22억원 적자 등 연속 적자를 냈다. 효성토요타와 신동진은 더프리미엄효성이라는 렉서스 딜러(광주·전주) 합자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 역시 지난해 240억원 매출에 4억4537만원의 적자를 내는 등 경영 성적은 신통치 않다.

재벌가 중 식구가 많기로 유명한 GS와 LS그룹도 LG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수입차 딜러에 뛰어들었지만 재미를 보지 못한 대표적인 경우로 꼽힌다. 2009년부터 토요타와 계약을 맺고 딜러 사업에 참여한 LS네트웍스는 토요타용산과 렉서스인천 등 3곳에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GS그룹은 허창수 회장과 인척인 허인영·허준홍 씨가 주요 주주로 참여한 센트럴모터스라는 회사를 통해 분당과 용인에 전시장과 정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11년 20억원, 2012년 1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은 2011년 431억원, 2012년 508억원이다. 일본 차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GS그룹은 GS칼텍스가 99.89% 지분을 확보한 GS엠비즈를 통해 독일 차와 손잡았다. 지난 3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와 계약을 맺고 폭스바겐의 마포전시장을 개장하면서 폭스바겐의 열 번째 국내 딜러로 선정된 것.

‘슈퍼 갑’에서 ‘을’로 전락하기도

일본 차를 피해간 재벌 2세는 그럭저럭 재미를 보고 있다. 화장품 제조사 참존의 2세들은 아우디 딜러와 벤틀리 딜러 등 3개 딜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참존모터스는 참존 김광석 회장의 장남인 한균씨가 지분 75%를 가진 회사다. 2004년부터 아우디 딜러로 대치점과 송파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835억원 매출에 2억4000만원의 순이익을 거두는 등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김 회장의 차남 한준씨는 2006년 폭스바겐 그룹의 럭셔리카 브랜드인 벤틀리와 손을 잡았다. 참존오토모티브는 국내에서 벤틀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370억원 매출에 1억6818만원의 순이익을 냈다. 매출은 참존모터스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순이익은 별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럭셔리카 브랜드의 수익성이 낫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존그룹은 지난 2007년 이탈리아 스포츠카 람보르기니의 공식 수입판매원인 참존임포트를 세우고 대중차·고급차·초고가차 등 수입차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서울 반포동 토요타 서초전시장, 신사동 코오롱모터스 강남전시장, 이태원동 CXC 모터스 매장(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상민
중견 그룹 중 수입차에 가장 힘을 쏟는 그룹은 KCC정보통신그룹이다. 1999년 혼다의 강북 딜러 KCC모터스를 세운 KCC정보통신그룹은 이후 강서·양천·영등포·구로 등 서울 서부 지역의 벤츠 딜러(KCC오토), 재규어랜드로버의 분당·일산·원주 딜러(KCC오토모빌), 포르쉐의 일산 딜러인 아우토슈타트, 인피니트 딜러(프리미어오토), 닛산 딜러(프리미어오토모빌) 법인을 차례로 세워 무려 6개의 브랜드를 취급하는 자동차 유통사가 됐다. 하지만 이 중 100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는 없다. KCC오토가 흑자를 내고 있지만 매출이 급감하고 있어 벤츠 딜러인 KCC오토와 KCC오토모빌에 기대를 걸고 있다.

수입차 시장은 번창하고 있지만 수입차 딜러로 큰돈을 번 곳은 초기에 시장을 선점한 한성자동차·코오롱모터스·고진모터스 정도다. 2000년대 이후 가세한 업체 대부분과 중·장년층의 일본 차 선호도만 믿고 딜러에 뛰어들었던 재벌들은 쓴맛을 보고 있다.

지난해 수입차 시장에 뛰어든 조중식 전 한진건설 회장의 장남인 조현호 회장(고 조중훈 한진 회장의 조카)은 CXC모터스를 통해 지난해 3월부터 미쓰비시 국내 수입을 시작으로 시트로엥, 캐딜락, 크라이슬러에서 상용차인 이베코의 판권까지 사들이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시트로엥의 판권을 자진 반납했고, 나머지 수입차 부문도 고전하고 있다. 계열사인 한미네트웍스를 통해 닛산 딜러로 나섰던 한미반도체는 딜러권을 반납하고 2012년부터 BMW 딜러십을 획득해 유통에 나섰다.

골프장과 온천, 주유소가 주력인 새서울그룹도 계열사 에스에스오토를 통해 한국지엠의 딜러를 하다가 닛산과 딜러십을 맺은 후 반납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외국에서 자동차 딜러는 지역의 중소 사업자들이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처럼 재벌들이 나서서 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