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기업엔 미래 없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5.1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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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횡포’ 부리는 회사는 설 땅 없어…고객·사회와 함께 좋은 생태계 만들어가야

‘착하게 살자.’

최근 기업들이 너나없이 고민하고 있는 화두다. 호텔 주차장에서 벌어진 ‘빵 회장 사건’, 비행기 특실에서 벌어진 ‘라면 상무 사건’에 이어 이번엔 슈퍼 갑인 본사 영업부 직원이 한참 나이 많은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은 녹취록 파문이 터졌다. 빵 회장은 사업을 접었고, 라면 상무는 사직서를 냈고, 욕설 녹취록은 앞서 두 사건이 무색할 정도로 여파가 커지고 있다. 불매 운동이 일고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

결국 지난 5월9일 남양유업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를 숙였다. 지난해 매출액 1조3400억원에 순이익 568억원을 냈고 주가도 주당 110만원을 넘나들던 우량 회사 대표가 제품에서 하자가 나온 것도 아닌데 왜 고개를 숙였을까.

기업은 사회라는 생태계 안의 존재다. 이들 ‘나쁜 기업’은 그 생태계에서 종업원·고객·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실패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재무제표의 손익계산서를 흑자로 유지하는 영업 스킬과 전략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보험사에서는 해마다 영업을 잘한 사람을 뽑아 상을 준다. 보험 상품을 많이 팔아 실적을 올린 직원을 격려하고 다른 직원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다. 삼성생명은 올해 시상식에서 보험 판매 실적과는 상관없이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설계사 12명을 뽑아 ‘사회공헌상’을 줬다. 시상을 했다는 것은 이들의 활동이 회사에 도움을 줬다는 뜻일 것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창출해 회사에 공헌한 셈이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를 휩쓴 ‘주주 자본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주식회사의 존재 이유는 이윤을 내는 것’이라는 슬로건은 지금도 자본주의의 금과옥조다.

5월9일 김웅 남양유업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지속 가능한 성장’이 화두

우리 사회에서 이 가치가 최고조에 달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시장 개방이 이뤄지면서 수시 해고의 다른 말인 ‘구조조정’의 상시화, ‘고용 유연성’이라는 말로 치장된 계약직이 보편화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주주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 미국에서 1990년대를 풍미한 잭 웰치식 주가 관리 위주 경영이 10년 넘게 우리 사회를 지배한 것.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쏠림이 일면서 수많은 기업이 도태되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져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최고조에 올랐다. 이와 함께 대기업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미래학자인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지금의 시대는 기업에게 단순히 재무제표의 흑자 기조만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요즘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이윤을 내는 것 그 이상의 존재 가치를 사회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홍보실 관계자는 사회공헌상을 주는 이유가 “회사 차원의 사회 공헌과는 별도로 설계사들이 지역 사회와 좋은 관계를 맺고 활동해준 데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 영업소 직원이 내뱉은 막말은 남양유업 제품의 질과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수많은 소비자를 화나게 만들고 제품 불매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급기야 이 회사 주가까지 추락하게 만들었다. 제품을 잘 만들고 원가 관리를 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삼성전자 화성 공장 인근 주민들에게 삼성전자는 ‘글로벌 초우량 기업’이 아니라 근심과 우려의 대상이다. 지난 1월과 5월 초에 연이어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한 탓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에도 연결 당기순이익이 7조원을 넘는 기록적인 성과를 올렸지만 화성 주민들에게는 ‘이 동네에 같이 살아도 괜찮은 이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게 했다.

이런 문제는 20세기를 지배하던 경영학 교과서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나 잭 웰치식 ‘인수·합병을 통한 신수익원 창출→무한 성장→끝없는 주가 성장’ 패러다임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업은 사람이 불로장생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간절하게 끝없는 성장을 바란다. 그래서 최근에 각광받는 말이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영속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주주의 이익보다 사회적 가치 우선해야”

오픈 소스 정책으로 단숨에 세계 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iOS)을 누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만든 구글의 모토는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다. 이 슬로건은 빈털터리에서 모험심과 유연한 사고로 큰 성공을 거둔 MS·애플 등 성공한 기업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경험한 소비자에게 환영을 받았다. 생태계 구성원 누구에게나 기회를 제공(오픈 소스)하고 창의적이고 발랄한 직장 분위기는 구글의 선한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이런 흐름에 대해 경영컨설턴트인 로리 바시 박사(<굿 컴퍼니> 공동 저자)는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선 주주의 이익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해야 한다. 착한 기업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근거로 ‘착한 회사 지수’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경영 전문지인 <포춘>이 선정한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고용주로서, 판매자로서, 사회와 환경에 대한 선량한 집사로서 기록을 검증해 지수를 만들었다.

로리 바시 박사는 “착한 행동을 보여주며 높은 점수를 받은 기업은 경쟁사보다 높은 성과를 올리고 주식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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