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입, 어디로 튈지 모른다
  • 이승욱·조해수 기자 ()
  • 승인 2013.05.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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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입’,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깜짝 발탁된 지 5개월 만에 전대미문의 성추문에 휩싸인 채 공직을 떠났다. 성추행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미 드러난 행적만으로도 그를 향한 비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 보인다. 하지만 수세에 몰렸던 윤 전 대변인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회심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황과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내에서 독불장군으로 통하던 그가 내놓을 반전 카드는 청와대 너머 한때 그가 주군(主君)으로 모시던 박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다.

 

이미 선을 넘어섰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는 진흙탕 싸움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윤 전 대변인의 스캔들 상보보다 그 배후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두말할 것 없이 청와대다. 여기서 청와대란 박 대통령과 비서·참모진 전체를 통칭한다.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을 철저히 짓밟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관계자’라는 숨은 입을 통해 윤씨를 찌질한 성추행범, 어이없는 도망자, 비루한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고 있다. 한 언론사 워싱턴 특파원은 “여기(워싱턴)서는 확인이 전혀 안 되는데 청와대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온다”고 했다. 사건을 청와대가 컨트롤하고 있다는 얘기다.

ⓒ 일러스트 신춘성
윤창중 자문 변호인, 자진 출국 권유

윤씨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정면 돌파밖에 없어 보인다. 즉, 그가 미국으로 자진 출국해서 미국 경찰의 조사를 받는 것이다. 윤 전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이미 변호사와 상담을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출신으로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박 아무개 변호사는 5월12일 밤 경기 김포시에 있는 윤씨의 자택을 방문해 자진 출국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기자가 만난 한 법조인은 “윤씨는 미국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한편, 이남기 전 홍보수석의 지시로 귀국했음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곤란해지는 쪽은 청와대다. 현재 공식적으로 미국 경찰이 조사하고 있는 것은 엉덩이를 만졌다는 혐의다. 그런데 청와대는 호텔방 사건까지 들춰냈다. 이를 피의자가 추가 고소하지 않는다면, 청와대는 윤 전 대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윤씨가 청와대 귀국 종용 지시 폭로 때처럼, 여론을 희석시킬 강력한 카드를 내놓을 수도 있다. 그러면 불똥이 의외의 방향으로 튈 수도 있다. 귀국 종용 등 사태 수습 과정이나 미국 순방 과정의 문제점 등 혹시 있을지 모를 청와대의 치부와 관련된 설이 나돌고 있다. 이남기 전 수석보다 윗선에서 귀국 종용 지시를 했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걸고넘어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윤 전 대변인으로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가장 유효한 패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청와대로서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윤씨가 예상 밖의 강공을 선택할 것이라는 점은 그가 맞닥뜨린 처지와 관련이 있다. 그가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을 고려해 향후 행보를 결정할 여유도 없다. 자신을 파렴치범으로 내몬 청와대와는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청와대는 윤씨가 이 전 수석의 귀국 종용 지시를 폭로하자 “윤 전 대변인이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만졌고, 피해 여성이 윤 전 대변인 숙소로 올라왔을 당시 (윤 전 대변인이)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음을 시인했다”는 민정수석실(민정실) 조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이 진술서에 윤 전 대변인이 자필 서명했다”는 익명의 청와대 고위 공직자의 결정적인 증언도 나왔다. 청와대가 직접 윤씨에게 파렴치한 성범죄자라는 선고를 내린 것이다.

성희롱 사건의 실체가 속속 드러날수록 윤씨가 받는 심리적인 압박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추가 폭로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미국 현지 경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도 윤씨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성희롱 사건을 수사 중인 미국 워싱턴 경찰국의 폴 멧캐프 대변인은 5월15일(미국 현지 시각)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중범죄 수준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측도 조금씩 언론에 입장을 내보이며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서고 있다. 여성 인턴의 아버지는 15일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윤 전 대변인이) 엉덩이를 친 것만 가지고 (딸이 경찰에) 신고를 했겠느냐”고 말해 호텔방에서 2차 성추행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제 청와대가 수세에 몰리는 분위기다. 윤씨의 기자회견 이후 상황이 녹록하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윤씨는 현재 민정실 조사 결과는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정실은 윤씨의 자필 사인이 있다는 진술서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 인사는 “윤 전 대변인이 이 전 수석을 거론한 것에 대한 반발로 (청와대가) 민정실 조사 결과를 (언론에) 흘린 것이라면, 감정적이고 미숙한 대응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누워서 침 뱉은 격이다. 윤 전 대변인의 치부가 드러날수록 청와대 역시 오물을 뒤집어쓴다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사건 초기 강경 대응에 나섰던 청와대는 윤씨에 대한 인신 공격 등 적극 공세보다는 소극적 대응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 현지 경찰의 ‘조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원칙론을 강조하면서도 청와대 책임론 등 비난 여론이 더 확산되지 않는 선에서 방어하는 모습이다. 사건 초기 청와대의 강경 기류와 그에 따른 언론 플레이 그리고 청와대의 사태 수습 방식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탓이다.

5월14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공 퍼붓던 청와대, ‘관망’으로 급선회

윤씨가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한 5월11일 직후 청와대 내부에서는 그에 대한 처리 문제를 두고 초강경 기류가 형성됐다. 성추행 의혹에 연루된 당사자인 윤씨가 스스로 끌어안고 가기보다는 이 전 수석의 귀국 종용설을 꺼내 사실상 ‘물귀신 작전’을 폈기 때문이다.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계자는 “이 전 수석은 성추행 파문이 제기된 직후 대책회의를 할 때도 윤 전 대변인의 경질보다는 자진 사퇴로 가자고 할 정도로 그를 배려한 것으로 안다”면서 “그럼에도 윤 전 대변인은 아랑곳없이 오히려 등 뒤에 칼을 꽂은 격이 됐다”고 말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남기 전 수석 외에 다른 수석으로까지 비난 여론이 확산되기도 했다. 일부 수석의 부적절한 처신도 도마에 올랐다. 청와대의 귀국 종용설이 제기되자, 곽상도 민정수석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귀국 지시 자체에는 국내법과 미국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법조인 출신의 정치권 인사는 “성추행 혐의자로 수사 대상인 사람을 귀국시킨 것 자체가 사법 회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며 “민정수석이라는 사람이 언론에 생각을 흘리는 바람에 청와대가 마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비쳐 더 큰 비난을 사지 않았느냐”고 비난했다.

지금 청와대에는 이남기 전 수석과 윤창중 전 대변인의 사퇴 이후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두 사람의 사퇴 이후 청와대 관계자는 “이제 진실 게임을 풀 당사자는 윤 전 대변인이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우리로서는 가급적 빨리 미국 수사가 진행되길 바랄 뿐이다. 윤 전 대변인이 미국을 가느냐, 마느냐는 그의 몫이다”라며 발을 빼는 모습이다.

청와대로서는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고민거리다. 민변 소속의 최강욱 변호사는 “범죄자 인도는 중범죄자여야 하지만, 미국 경찰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청와대로서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5월16일 경기도 김포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집 앞에서 애국국민운동대연합회 회원들이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윤씨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청와대, 윤창중 체포해서 미국 보낼 수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진흙탕 싸움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윤씨가 박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거나 청와대에 대한 추가적인 폭로에 나선다면 청와대로서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청와대가 윤씨의 신병 처리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 수도 있다. 윤씨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발생한 미국 워싱턴DC의 관련 법률에 따르면, 성범죄는 1~4급과 경범죄로 나뉜다. 언론 보도와 현지 경찰의 공식 반응 등을 감안하면, 윤씨의 성추행 혐의는 성범죄 4급과 경범죄에 해당될 수 있다. 경찰 수사 결과가 성범죄 4급으로 인정되면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윤씨에 대한 강제 인도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인사는 “윤 전 대변인은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상관인 이남기 전 수석을 무시할 정도로 독불장군이었다”며 “그동안 청와대가 윤 전 대변인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가 죽기 살기로 폭로전에 나선다면 결국 더 큰 피해는 청와대가 입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여론의 흐름과는 달리 지금의 분위기는 어쩐지 청와대의 운명을 윤씨가 쥐고 있는 모양새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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