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맹세파 ‘4인방’이 뜬다
  • 이영종│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5.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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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드러낸 ‘김정은 군부’…세력 교체 징후 또렷

김정은 체제의 북한 군부 진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중반부터 잦은 인사 교체와 전격적인 숙청, 배경이 파악되지 않는 계급 강등 등으로 출렁거린 군 핵심 자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김정은이 최근 군단장 출신의 소장파 장정남을 우리의 국방부장관 격인 인민무력부장에 앉힌 것은 군부 내 친위 세력 구축의 마무리 포석으로 보인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의 충격 속에서 지난해 4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후계 권력이 출범한 지 1년여 만의 일이다. 앞으로 추가적인 지위 변화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 급부상한 군부 측근들이 장악한 노른자위 지위는 상당 기간 자리 이동이 없으리라는 것이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5월13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제1비서가 참석한 행사에 나온 북한 권력의 핵심부를 소개하면서 장정남 상장(우리의 중장에 해당)을 인민무력부장으로 호칭했다. 통상 북한 군부 핵심 직위의 경우, 교체가 이뤄져도 공식 발표가 없어 상당 기간 확인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북한 관영 매체 보도를 통해 비교적 신속하게 교체 사실이 드러났다.

5월4일 김정은의 인민내무군 협주단 공연 보도 때 김격식을 인민무력부장으로 호칭했다는 점에서 교체 인사는 열흘도 안 된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4월25일 인민군 창건 81주년을 맞아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별 셋 인민무력부장 파격 발탁

장정남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출신 성분은 물론 나이와 군 관련 경력 등이 우리 정보 당국의 인물 파일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 그의 동정이 알려진 건 지난해 12월이다.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미라로 영구 보관된 이른바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열린 ‘김정은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육·해·공군 결의대회’에서 “최고사령관의 최후 돌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며 결의 연설을 한 바로 그 인물이다.

당시 그는 “백두산호랑이군단이라는 값 높은 별칭을 달아주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믿음을 한시도 잊지 않고 결전의 시각이 오면 군단은 멸적의 포성으로 적들을 기절초풍케 하며 골짜기마다를 죽음의 함정골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당시 그는 강원도 동부전선을 지키는 북한군 제1군단장으로 소개됐다. 김정은이 부대 방문이나 작전 상황 보고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장정남이 지휘하는 군단에 별칭을 붙여줄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정남은 충성 맹세 행사에서 최룡해 총정치국장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나섰다. 뒤이어 김형룡 제2군단장, 리영길 제5군단장, 최경성 제11군단장이 연설을 통해 김정은에 대한 절대 충성을 다짐했다. 북한 조선중앙TV로 공개된 당시 장면은 대북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군 관련 인물이나 정보의 노출을 극도로 꺼려온 북한이 관영 매체를 통해 전방 군단장의 신원을 한꺼번에 노출시켰다는 점에서다. 대북 군사 정보를 다루는 한 관계자는 “그때 자료가 없었다면 장정남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조차 확보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충성 맹세에 나섰던 리영길 5군단장은 지난 2월 인민보안부장(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으로 옮긴 최부일의 후임으로 총참모부 작전국장에 임명됐다. 리영길은 지난 3월29일 새벽 김정은이 소집한 ‘전략 미사일 부대의 화력 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 멤버로 나서면서 관심을 끌었다. 미군 타격 계획 지도가 걸린 작전회의실에서 현영철 총참모장, 김영철 정찰총국장 겸 부총참모장, 김락겸 전략로켓군사령관 등과 함께 김정은의 지시를 듣는 장면이었다. 대남 특수전 부대 등을 거느리고 있어 일명 ‘폭풍군단’으로 불리는 11군단장 최경성은 올 초 김정은이 직접 나서 대남 도발 위협을 가하는 행보를 할 때 최지근거리에서 수행했다. 여기에 장정남까지 인민무력부장에 오르면서 핵심 포스트에 자리하자 충성 맹세에 나선 군 핵심 관계자들의 인선이 김정은 친위 세력으로 짜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시대 군부 핵심 인사 부침 심해

장정남 신임 인민무력부장은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2002년 4월 대좌에서 소장(우리의 준장에 해당)이 돼 장령(장성을 일컫는 북한식 표현) 클럽에 포함됐고, 2011년 11월 중장이 됐다. 최근까지 그의 추가 진급 사실은 알려진 게 없다. 인민무력부장 임명 직후 로동신문을 통해 공개된 사진에는 별 셋을 달고 있어 그가 인민무력부장 보임과 동시에 상장으로 진급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인민무력부장은 대장급 장성이 맡아왔다는 점에서 ‘쓰리스타’의 발탁은 파격으로 보인다. 장정남이 김정은 시대 들어 잘나가는 군부 엘리트임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김정은 체제 출범을 전후한 군부 핵심 직위 인사는 군 총정치국과 총참모부, 인민무력부라는 삼두마차에 핵심 요직인 정찰총국을 포함하는 모양새로 이뤄졌다. 당 국가 체제에서 군부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를 총괄하는 최고 실세인 총정치국장은 김정일 시대 조명록 차수(북한군에서 대장 위의 계급)가 오랜 기간 맡아왔다. 2010년 11월 조명록이 심장병으로 사망한 이후 김정각 제1부국장이 대행했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지난해 4월 빨치산 출신인 전 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에 전격 임명되면서 안정을 찾았다. 민간인 출신이던 최룡해는 김정은, 김경희(김정은의 고모) 등과 함께 2010년 9월 북한군 대장 칭호를 받았다.

군 총참모장의 경우 부침이 심했다. 김정은이 후계 지위를 굳혀가던 2009년 2월 총참모장에 임명된 리영호는 지난해 7월 전격 숙청되면서 모든 직위에서 해임됐고,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리영호의 몰락은 김정은 체제의 군부 진용 짜기에 순응하지 않은 데 따른 결과라는 게 정보 당국의 설명이다. 군이 장악하고 있던 외화벌이 사업이나 이권을 노동당과 내각으로 돌리려던 김정은식 개혁에 리영호가 문제를 제기하자 가차 없이 칼을 들이댄 것이란 얘기다. 인민무력부장은 지난해 4월 김정각이 맡았다. 하지만 불과 7개월 후 해임됐고, 후임에 김격식 4군단장이 임명됐다. 이어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장정남으로 교체됐다. 이처럼 잦은 인민무력부장 교체는 김정일 시대에는 전례 없는 일이다. 실제 김일철 전 인민무력부장은 1998년 9월 임명돼 2009년 2월까지 무려 10년 넘게 일했다. 군 원로로 한때 은퇴 가능성이 점쳐졌던 김격식 전 인민무력부장이 이번에 총참모장에 기용된 것은 김정은 군부에서 여전히 그의 활용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정은은 일선 군단장도 물갈이 인사를 했다. 최근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4군단장에 중장 이성국을, 중부전선 5군단장에 4군단장을 맡았던 상장 변인선을 임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총참모부 작전국장(우리의 합참 작전본부장)을 맡았던 상장 최부일을 인민보안부장에 보임했다.

취약한 군사 리더십과 경제난 해결이 관건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일단 군부 핵심 인물에 대한 세대교체성 인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70대 이상의 김정일 시대 고령자들을 내보내고 상대적으로 젊고, 전방에서 지휘 경험을 쌓은 인물들을 발탁하는 것이다. 잦은 인사를 통해 군부 핵심 권력에 긴장감을 불어넣어 충성 경쟁을 유도하게 되면 친정 체제를 좀 더 강력하게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직에서 밀려나면 사실상 정치적 숙청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점에서 일종의 공포 정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군부 세력이 김정은 유일 지배에 반기를 들거나 조직적인 행동에 나서기는 어렵다. 하지만 권력 내부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주민들의 불만을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국면에 봉착할 경우 사정이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5만3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를 일방적으로 철수시킴으로서 개성 지역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김정은의 후계 권력 구축이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고령의 노동당과 군부 간부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지휘봉을 휘두르며 질책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조선중앙TV로 방영하며 그가 권력 장악에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평양 주석궁의 로열패일리와 군부 핵심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군부 고위 인사와 그 추종 세력도 김정은 권력의 안착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복병이다. 

북한 군부에도 ‘여풍’ 분다 


김정은 군부 체제의 진용이 어느 정도 짜이면서 관심은 군부 다루기와 관련한 김정은 제1비서의 다음 행보가 뭘까 하는 점에 쏠리고 있다. 지난해 7월 이영호 총참모장의 숙청을 신호탄으로 이어져온 군부 핵심 요직 인사는 군부를 좀 더 확고하게 장악하기 위한 극약 처방 성격이 짙다. 당시 휴일에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이영호를 숙청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김정은을 군 원수로 추대하는 발표를 내놓은 것은 의미 있는 대목이다. 이영호를 모든 직위에서 해임한 것이 김정은의 군사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수순이었음을 짐작케 한다는 점에서다. 이후 김정은과 그 후견 세력에 의한 군부 장악 움직임을 가속화했다.

여기에는 김정은보다 고모인 김경희의 입김이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경희는 오빠 김정일이 2008년 여름 순환기계통 이상으로 쓰러졌을 때 이른바 병상 통치를 했고, 같은 해 11월 복귀한 이후에는 공개 활동 수행 등 보좌를 했다. 후계자로 김정은을 낙점하고 후계 권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김경희가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이란 진단이다. 김경희는 ‘노동당 비서’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가 담당하는 업무가 조직지도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당뿐 아니라 군부와 내각 핵심의 자리를 거머쥐고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 자리다.

김경희와 남편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그리고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은 김정은의 후계 권력 구축에 핵심 역할을 하는 3인방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군부를 어떻게 통제해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지지 세력으로 만드느냐일 것이다. 무엇보다 김정은의 군사 리더십 부족이 후계 권력 안착에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와 올해 2월 3차 핵실험 국면에서 최고사령관으로서 보인 김정은의 행보는 군부 원로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줬을 수 있다. 직접 최전방과 대남 특수전 부대를 방문하고 적개심 가득 찬 대남 위협 발언을 쏟아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한국과 미국은 물론 오랜 우방인 중국의 영도 세력으로부터도 싸늘한 시선이 돌아왔다. 김정은은 지금 출구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채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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