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대국민 사과는 쇼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5.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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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 공개한 정승훈 대리점협의회 총무…“1억원 빚더미 올라 망해”

5월3일 남양유업 영업사원과 대리점주 사이에 오간 대화가 담긴 2분45초짜리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른바 ‘욕설 파일’에는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자 남양유업은 5월9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고개 숙여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녹취록을 최초로 공개한 정승훈 남양유업 대리점협의회 총무(전 대리점주)는 본사의 사과와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시사저널>은 5월14일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그를 만났다.


5월14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정승훈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총무. ⓒ 시사저널 전영기
녹취록은 왜 공개했나.

한 대리점주가 3년 전 녹취한 것이라며 나에게 주었다. 그 녹취록을 공개하면 다른 대리점주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았다. 그런데 남양유업의 밀어내기가 도를 넘었다.

또 다른 녹취록이 있나.

공개하지 않은 30분짜리 녹취록이 있다.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돈을 갈취하는 내용이다. 본사 영업직원은 밀어내기를 하지 않을 테니 돈을 달라고 해 개인이 착복한다. 예를 들어 하루 40만원어치 제품을 열흘 동안 밀어내기 하면 모두 400만원인데, 그 기간에 밀어내기를 하지 않을 테니 400만원의 일부인 200만원을 자신의 개인 통장으로 보내라는 식이다. 어떤 식으로든 돈을 뜯기기는 마찬가지다.

“남양유업이 대리점주들 이간질”

남양유업이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국민 앞에서 쇼를 한 것이다. 정작 피해자인 대리점주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대국민 사과를 하는 날 김웅 대표가 나를 찾아와 악수하고 사진 찍은 것이 전부다. 본사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밀어내기를 시인했지만 정작 검찰 조사에서는 그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본사가 대리점주를 이간질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무슨 말인가.

며칠 전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발대식을 했다. 그때 전국 대리점주 대표 120명이 모이기로 했다. 그런데 40명만 남고 나머지는 나오지 않았거나 나왔다가 바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사가 대리점주 대표들에게 ‘발대식에 참석하면 좋은 일 없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대리점주가 아니면 모른다. 또 그 무렵 본사 지점장들은 긴급회의라며 대리점주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대표와 총무를 뽑아 지점과 대화하는 창구를 만들자고 했다. 가칭 상생위원회를 만들어 일부 대리점주를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속셈이다.

(이 주장에 대해 곽주영 남양유업 영업본부장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가칭 상생위원회는 대리점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다. 또 그 발대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대리점주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과거에도 남양유업은 상생 기금을 조성하지 않았나.

250억원의 기금이 있었지만 사실상 본사 직원 영업활동비로 사용했다. 나는 250원도 받아보지 못했다.

5월21일 국회에서 가질 남양유업과 대리점협의회 교섭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의 실체와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라는 점이다. 또 본사는 대리점주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본사가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개하지 않은 다양한 녹취록과 증거들을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다.

현재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나.

나는 지난해 10월 망했다. 1억3000만원으로 시작한 대리점은 2억4000만원의 적자를 냈다. 그 결과 1억원의 빚더미에 앉았다. 남양유업 대리점을 운영해서 돈을 번 점주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다른 업체도 밀어내기를 하지만 남양유업은 특히 심하다. 내가 몇몇 대리점주를 소개할 테니 확인해보라.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대리점주들이 제품 강매 관행을 규탄하는 의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 상품을 쌓아뒀다. ⓒ 시사저널 이상민
“다른 녹취록과 증거 공개할 수도”

소개받은 세 명의 대리점주로부터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10년째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과 아파트를 처분하고 현재 월세방에서 산다고 했다. 그는 “세 번이나 대리점을 처분하려고 했고, 실제로 살 의사가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나 남양유업의 밀어내기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는 대리점 인수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20년 동안 대리점을 운영한 점주는 “무거운 우유 박스를 나르느라 팔과 다리에 병이 생겨 대리점을 닫았다”고 밝혔다. 10년 가까이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대리점주는 밀어내기 방법과 수천만 원 매출에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상세히 설명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번 녹취록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본사에 불만을 가진 대리점주끼리 말한 녹취록이라고 남양유업측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말에 분개한다. 내가 직접 밀어내기를 당했다.

본사는 밀어내기를 어떻게 하나.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밀어내기를 해서 2012년 11월 중단했다. 5~8월 성수기에는 밀어내기가 극심했다. 내가 우유 20판(상자)을 주문하면 60판이 온다. 40판은 영업사원이 실적을 올리기 위한 밀어내기다. 게다가 그 위에 있는 팀장이 또 40판을 민다. 모두 80판을 밀어내기 하는 셈이다. 나는 20판을 주문했지만 100판 값을 본사에 줘야 한다. 그러니 영업사원과 대리점주 사이에 욕설은 물론 몸싸움이 생기는 것이다.

우유는 유효 기간이 있어서 그 많은 제품을 팔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유효 기간이 이틀 남은 제품을 떠안기도 했다. 그 기간이 10일짜리라도 4~5일 남은 우유는 소비자들이 사지 않는다. 결국 5일 이내에 팔아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루에 40판을 밀면 5일에 200판이다. 하루에 5판씩 팔면 175판이 남고, 1판에 1만원이면 175만원을 버려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덤핑으로 판다. 소비자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우유 등을 싸게 살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 또 할인점에서 1+1 행사를 해서 재고를 처분한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조금이라도 덜 보려는 몸부림이다. 덤핑 판매하면 남양유업 제품이 잘 팔린다. 제품이 많이 팔리면 좋은 일인데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으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남양유업 일용직 심부름꾼”

일부 대리점은 매출이 수천만 원인데 어떻게 적자가 나나.

우유 납품 차량 유류비, 창고 임대료, 통신비가 있다. 또 할인점에 여사님 월급을 줘야 한다. 여사님이란 남양유업이 계약직으로 고용한 판촉 아주머니다. 130만원 월급을 주고 본사로부터 50만원을 돌려받으니 80만원을 내 호주머니에서 내는 셈이다. 우유를 100개 납품했는데 80개로 기록돼 20개가 사라지는데 한 달에 몇십만 원의 손실이 생긴다. 할인점에 100만원어치를 납품하면 내가 100만원을 받아야 정당하지 않은가. 그런데 할인점은 본사와 납품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본사에 100만원을 준다. 하지만 본사는 나에게 80만원만 준다. 그래서 그 근거로 세금계산서를 보여달라고 해도 묵묵부답이다. 그냥 주는 대로 받으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손해를 본다. 한번은 300만원이나 떼인 적도 있다.

본사 지점장이 최근 대리점주들을 소집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사실이다. 본사와 대리점 간의 상생 교섭이 필요하니 대표와 총무를 뽑으라고 했다. 녹취록이 공개된 후 나도 대리점협의회 발대식에 참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본사의 눈 밖에 나면 권리금도 없이 계약을 해지당한다. 이런 점을 본사가 노려서 일부 대리점주를 본사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본사가 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가.

대리점은 10원 장사다. 본사가 100만원 보조금을 준다면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우유업계에서는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이 통한다. 다른 대리점이 본사에 잘못 보여서 거래처를 빼앗기면 그 거래처는 내 차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본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지점장 주최로 회식하면서 서로 상생 방법을 모색할 기회는 없는가.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지점장과 대리점주 4명 등 모두 10명이 룸살롱에 갔다. 비용 300만~400만원을 대리점주가 나눠 부담했다. 대리점주가 지점장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상생 방법 모색은 언감생심이다.

남양유업 사태로 대리점이 어렵다고 들었다. 어떻게 생계를 꾸리나.

매출이 30% 줄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아내가 식당 설거지 일을 시작해서 40만~50만원 벌이를 한다.

남양유업의 대리점주란 어떤 사람인가.

말이 개인사업자이지, 남양유업의 일용직 심부름꾼이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되길 바라나.

본사가 피해를 보상하고 계약 해지된 대리점주 중에 희망하는 사람에게는 다시 대리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본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기자는 남양유업 본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남양유업 관계자는 “대응할 사람이 없다”고만 말했다. 대리점주가 이런 상황으로 몰리는 지난 10년 동안 남양유업은 자산을 두 배로 불렸고, 매출도 1조원을 넘겼다. 2008년 뉴질랜드에서 수입한 분유 원료에서 멜라닌이 검출된 후에도 남양유업은 ‘안전하다’는 과대광고를 냈고, 이것이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일자 2008년 9월 59만원이던 이 회사의 주가는 10월 28만원까지 곤두박질쳤다. 이 주가는 꾸준히 상승세를 타더니 올 4월30일 117만5000원까지 올랐고 이번 남양유업 사태로 5월15일 현재 97만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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