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에서 구린내가 난다
  • 정덕현│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5.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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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방송은 식품업체와 짜고 치는 고스톱?

2011년 KBS 2TV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에서는 ‘라면의 달인’을 찾는 일종의 오디션 형식을 선보였다. 여기서 이경규가 만든 꼬꼬면은 2등을 차지했다. 물론 ‘남자와 아이디어’라는 식으로 소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남자의 자격>과 ‘라면 끓이는 법’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억지로 붙여놓은 듯한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그해 8월 한국야쿠르트는 이경규를 전면에 내세워 꼬꼬면 시판에 들어갔다. 라면업계에 일으킨 꼬꼬면의 파장은 컸다. 이른바 ‘하얀 국물 라면의 역습’이라 불린 식품업계의 열풍은 일파만파 커져서 기스면이나 나가사키 짬뽕 같은 라면까지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은 어디로 갔을까. 만일 꼬꼬면이 그만한 제품 경쟁력으로 열풍을 만들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으리라는 것이 업계의 반응이다. 결국 남는 것은 홍보다. 꼬꼬면의 성공은 제품의 성공이라기보다는 홍보 마케팅의 성공이라는 점이다.

방송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가져와 ‘하얀 국물’이라는 차별적인 포인트를 내세운 것이 성공의 원인이다. 방송의 힘이라는 얘기다. 그 모든 과정이 짜인 각본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공공재인 방송이 특정 제품의 홍보에 일조했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MBC 에서 제주도로 떠난 무지개 회원 멤버 중 데프콘이 국수를 먹고 있다. ⓒ MBC 제공
‘먹방’이 특정 제품 홍보장으로 변질

그로부터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최근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꼬꼬면에 이어 이제는 이른바 ‘짜빠구리’ 열풍이다.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성주가 만들고 이른바 ‘먹방(먹는 방송)’의 지존이라고 할 만한 윤후가 먹으면서 화제가 됐다. 그러자 서둘러 농심에서는 꼬꼬면이 이경규를 내세운 것처럼 김성주와 윤후를 모델로 내세워 방송 이미지를 홍보 마케팅으로 끌어들였다.

방송에서 짜빠구리가 인기를 끌면서 실제 라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매출 상위 3개 라면인 신라면·짜파게티·너구리의 판매 순위가 바뀌었다. 3월에는 짜파게티(37.4%)·신라면(32.0%)·너구리(30.6%), 4월에는 너구리(37.4%)·짜파게티(33.2%)·신라면(29.4%) 순으로 팔렸다. 이런 보도자료 내용은 마치 신라면의 아성이 깨졌다는 식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순위와 상관없이 농심이 라면업계 1~3위를 모두 장악했다는 얘기일 뿐이다. 꼬꼬면 열풍과 신라면 블랙의 부진으로 잔뜩 자존심을 구긴 농심으로서는 회심의 일타인 셈이다.

한국야쿠르트에 이어 농심이 보여준 라면업계와 방송 프로그램의 행복한 동거는 ‘먹방’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물론 이 두 업체는 의도적으로 처음부터 방송을 활용한 것이 아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우연히 방송을 통해 화제가 된 이후 해당 라면의 마케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제품 홍보 마케팅의 방송 활용(특히 식품에서)이 큰 파장을 일으킨 점을 감안하면 업계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에 대한 유혹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방송가에는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프로그램에 끼워 넣으려는 업자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의상이나 가구 협찬 같은 것들은 이미 일상화됐다. 최근에는 식품업계가 방송 콘텐츠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다.

주말 드라마 <백년의 유산>은 막장적인 스토리로 시청률이 무려 30%에 육박했다. 국숫집을 3대째 이어온 집안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아예 오뚜기의 ‘옛날국수’를 도처에 깔아놓았다. 국수 경연까지 스토리로 등장하면서 ‘옛날국수’는 자연스럽게 고집스런 장인이 만든 가장 맛좋은 국수로 홍보됐다.

왜 식품이 방송을 통한 홍보 마케팅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그것은 최근 방송가에 불고 있는 ‘먹방’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하정우가 나온 일련의 영화 속 먹는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본격화된 먹방 열풍은 이제 거의 대다수 예능 프로그램 속 필수 아이템이 돼버렸다.

<무한도전>은 하와이 편에서 식신(食神) 정준하가 어마어마한 팬케이크를 혼자 먹는 도전을 선보이기도 했고, 택시 특집에서는 기사식당에서 멤버들이 ‘돼지불백’을 무려 11인분이나 먹어치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빠! 어디가?>의 윤후에 자극받은 데프콘은 <나 혼자 산다>의 나 홀로 여행 편에서 제주도로 떠나 고기국수, 핫도그, 해물뚝배기, 흑돼지, 갈치구이 등 무려 1일 7식의 먹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인간의 조건> 같은 프로그램은 아예 현지 음식만 먹고 살기라는 미션을 통해 대놓고 먹방을 그려냈다.

군대나 정글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먹방이 설친다. <진짜 사나이>는 2회에 군대리아(패티와 잼을 함께 넣어 먹는 군대식 햄버거)를 선보였고, 3회에서는 자판기로 뽑아먹는 얼음 띄운 ‘바나나라떼’를 소개했다.

류수영은 야전 훈련 이후 지급된 전투식량을 먹으며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라고 말하며 <SNL 코리아>의 메인 코너가 된 신동엽의 ‘먹거리 X파일’을 흉내 내기도 했다. <SNL 코리아>의 ‘먹거리 X파일’은 최근의 먹방 열풍을 풍자적으로 다루는 콩트 코미디다.

<정글의 법칙> 뉴질랜드 편은 사실상 먹방 특집이라고 해도 될 만큼 먹는 장면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거대한 흑전복을 장작에 구워먹고, 웨카라는 날지 못하는 새와 물고기, 거대한 장어는 물론이고 웨타라고 하는 청정 지역에 사는 곱등이를 날것으로 씹어 먹기도 했다.

일밤의 에서 아빠들의 캠핑 요리 중 윤후가 김성주의 짜빠구리를 폭풍 흡입하고 있다(위).ⓒ MBC 제공 SBS ‘뉴질랜드’ 편에 나온 박보영이 송어를 먹고 있다(아래). ⓒ SBS 제공
음식에 대한 자극적인 방송

먹방이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극적이라는 데 있다. 먹방이 보여주는 날것의 본능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강화시킨다. 배고픔이나 포만감 같은,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방송 프로그램의 자극을 단순한 시청각적 자극에서 촉각적인 자극으로 확장시킨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여기에 예능 프로그램은 복불복 같은 게임을 집어넣어 한쪽은 굶기고 다른 한쪽은 산해진미를 맛보게 하는 비교 체험으로 자극을 더 키운다.

먹거리에 대한 자극적인 방송은 한때 <트루맛쇼> 같은 다큐멘터리처럼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결정 맛 대 맛> <찾아라! 맛있는 TV> 같은 음식 버라이어티쇼나 저녁 방송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VJ특공대>식의 음식 소개 코너는 음식 자체를 제대로 소개하기보다는 음식에 대한 자극적인 욕망에 더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먹방이라는 신조어는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을 삼켜버렸다.

물론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은 그 자체로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먹방이 자극하는 욕망이 존재한다. 방송 프로그램과 식품업계의 만남은 공식적일 수도 있고 비공식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먹방으로 일약 스타가 만들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연예인들이 특정 회사 제품 홍보를 목적으로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와 그것이 무엇이든 맛있는 먹방을 찍으면 되고, 해당 식품업체는 그 리스트를 모아 효과적인 홍보 마케팅을 기획하면 되는 이른바 시스템이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굳이 처음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논란의 위험성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음식이 주는 그 특별한 정서는 물론 가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 자극으로만 치달을 수 있고 때로는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먹방 열풍, 눈앞의 재미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놓인 위험성도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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