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석·염경엽, ‘반전’ 장타를 날리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5.21 15: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엉터리 오너’가 ‘빌리 장석’으로…‘정치꾼’이 예리한 감독으로

“넥센 히어로즈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건 이대호가 도루왕이 되는 것보다 어렵다.”

2011년 시즌 전이었다. 한 야구해설가는 “주요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해 이를 운영비로 쓰는 히어로즈는 한국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포스트시즌 진출도 어려울 것”이라며 “엉터리 오너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로부터 2년 후. 넥센 히어로즈는 5월17일 기준 23승11패로 단독 1위에 올라섰다.

야구인들이 ‘엉터리 오너’라고 불렀던 이는 다름 아닌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대표였다. 재계에서 이름난 경영 컨설턴트였던 이장석은 후배 남궁종환(현 히어로즈 부사장)과 함께 2008년 1월30일 공중분해 위기에 놓였던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했다.

야구계는 이장석이 설립한 히어로즈의 모체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에 궁금증을 나타냈다. 애초 센테니얼은 ‘미국계 창업투자사’로 알려졌다. 하지만 센테니얼은 이장석과 남궁 부사장이 2500만원씩을 출자한 자본금 5000만원의 작은 회사였다. 창업 시점도 현대를 인수하기 얼마 전이었다.

당시 야구계는 “이 대표가 현대를 인수하려고 센테니얼을 창업한 것 같다”며 “이 대표가 경영 컨설턴트 출신임을 고려할 때 센테니얼의 현대 인수는 항구적 운영보다는 차후 구단 몸값을 올리고, 되팔기 위한 전략적 투자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히어로즈의 움직임은 항구적 구단 운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요 선수의 연봉을 후려친 데다 프런트는 급여가 밀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여기다 2009년 12월 좌완 에이스 장원삼을 삼성에, ‘주포’ 이택근을 LG에, 차세대 좌완 에이스 이현승을 두산에 팔았다. 모두 현금 트레이드였다. 2010년에도 히어로즈는 좌완 마일영, 내야수 황재균, 우완 고원준을 차례로 트레이드하며 부족한 운영 자금을 조달했다.

물론 히어로즈는 “황재균과 고원준은 현금 트레이드가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두 선수를 트레이드한 구단에선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될 것”이라는 묘한 답을 내놓았다. 주요 선수를 죄다 팔아버린 히어로즈는 지난해까지 줄곧 하위권을 맴돌았다. 야구계가 이장석을 가리켜 ‘엉터리 오너’라고 힐난한 것도 무리는 아닌 셈이다.

‘정치꾼’으로 몰렸던 염경엽 감독

‘정치꾼이야말로 LG 부진의 원흉이다. 당장 해임시켜라.’ 2011년 시즌 중반 LG 트윈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정치꾼을 해임시키라’는 내용의 게시물이 수십 개나 올라왔다. LG 골수팬은 특정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당시 일부 LG팬이 성토한 ‘정치꾼’은 바로 당시 LG 수비코치이던 염경엽 현 넥센 감독이었다.

팬들이 발끈한 것은 한 지상파 TV의 야구 좌담 프로그램을 보고서였다. 이 프로그램에선 특정인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LG 부진의 이유가 몇몇 프런트 관계자에게 있다”며 그 관계자의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일부 팬은 방송에서 거론한 관계자 가운데 한 사람을 염경엽으로 단정했다. 염경엽은 2010년까지 LG 운영팀장을 맡으며 프런트에 몸담은 바 있었다.

염경엽은 “방송에서 거론된 인물은 내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소문은 정설로 굳어졌고, 결국 그해 시즌이 끝나고 염경엽은 LG를 나와야 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염경엽은 크게 좌절했다. 그즈음 그는 “직장을 잃은 건 둘째 치고, 중학생인 딸이 ‘친구들이 아빠 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욕해’ 하는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연예인이 왜 자살하는지 알겠다”고 털어놓았다.

한때 극단적 결심까지 했던 염경엽은 2011년 당시 넥센 사령탑이던 김시진 감독(현 롯데)의 부름을 받고 넥센 주루코치로 일하게 됐다.

이장석-염경엽의 반전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먼저 이장석이다. ‘엉터리 오너’로 불리던 이장석은 그해 말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 LG 이택근을 영입했다. 이장석이 이택근 영입에 쓴 돈은 무려 50억원. 선수 팔아 연명한다던 넥센이 한 해 운영비의 3분의 1에 가까운 거액을 지른 것이다.

당시 이장석은 “2008시즌부터 2011시즌까지는 팀 안정화 기간이었다. 하지만 2012시즌부터는 우리도 다른 팀처럼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릴 것”이라며 “이택근 영입은 강팀이 되기 위한 과감한 투자”라고 자평했다.

그해 이장석은 시즌 중반 LG와의 트레이드를 진두지휘하며 ‘만년 유망주’ 박병호를 데려와 쏠쏠한 재미를 봤다. 2012년 1월엔 자신이 전면에 나서 전 메이저리거 김병현을 총액 16억원에 영입했고, 시즌 중반엔 두산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잠자는 거포’ 이성열을 데려왔다. 따지고 보면 2011년 7승15패 평균자책 4.70으로 몹시 불안했던 외국인 투수 브랜든 나이트와 재계약하도록 지시한 것도 이장석이었다.

일련의 트레이드와 과감한 투자, 야구인을 능가하는 예지력으로 이장석은 올 시즌부터는 ‘엉터리 대표’에서 ‘빌리 장석’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빌리 장석’은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빌리 빈 단장을 빗댄 말로, 그만큼 이장석이 빌리 빈처럼 획기적인 구단 운영을 한다는 뜻이다.

염경엽의 변신은 더 극적이다. 지난해 넥센 주루코치를 맡은 염경엽은 ‘느림보 군단’이던 팀을 단숨에 ‘기동력 군단’으로 바꿔놓았다. 2011년 팀 도루 99개로 이 부문 꼴찌였던 넥센은 염경엽이 주루코치를 맡은 2012년 179개로 1위에 올랐다.

특히 그의 연구하는 태도는 동료 코치에게 좋은 영향을 줬다.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흥식 현 롯데 코치는 “당시 염 감독은 상대 투수의 허점을 연구하느라 밤을 새우곤 했다. 틈만 나면 뭔가를 메모하고, 선수를 붙잡고 주루 이론을 가르쳤다”며 “염 감독의 노력에 자극받은 다른 코치도 야구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염경엽이 지도자로서 성과를 내자 그를 바라보는 시각도 ‘정치꾼’에서 ‘준비된 지도자’로 바뀌었다.

5월12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과 SK 경기에서 승리한 넥센 선수들이 염경엽 감독 등 코치진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장석-염경엽의 드라마는 현재 진행형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이장석은 신임 사령탑으로 염경엽을 선임했다. 야구계는 “지명도가 떨어지는 염경엽을 왜 감독으로 선임했는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장석은 “염 감독처럼 공부하는 지도자라면 우리 팀을 강팀으로 만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염 감독이 팀을 잘 이끌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염경엽 역시 “만년 하위팀 넥센을 반드시 상위권으로 도약시키겠다”며 “현장과 프런트도 반목이 아닌 협력과 상생의 관계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장석은 자신의 다짐을 현실화했다. 올 시즌 불펜진이 약하자 NC와의 트레이드를 지휘해 불펜 요원 송신영을 영입했다. 염 감독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하위권으로 지목됐던 넥센을 1위를 다투는 강팀으로 만들었다. 이장석과 염경엽의 반전 드라마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