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엔 수술 없이 약으로 폐암 관리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5.2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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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분석으로 특정 암 죽이는 표적 치료제 개발

최창암씨(69)는 왼쪽 폐가 없다. 2006년 폐암(3기)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았다. 그 후 재발이나 전이 없이 건강한 삶을 되찾았다. 그는 “30년 이상 고등학교 기계과 교사로 일하면서 가스나 쇳가루 등 좋지 않은 물질을 많이 마셨고, 담배도 20년 이상 피웠던 것이 폐암의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몸에는 한 쌍의 폐가 있다. 한쪽 폐에만 암세포가 있고,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지 않았을 때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 1960년대 이전에는 한쪽 폐를 모두 잘라내는 수술이 일반적이었다. 수술받은 환자는 숨 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 1970년대까지는 폐 일부만 잘라내는 수술법이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왼쪽 폐는 크게 세 덩어리(폐엽)로 되어 있는데 그중 암이 있는 폐엽만 제거하는 것이다. 10년 전부터는 수술 범위가 더 축소됐다. 암세포 주변만 도려냄으로써 폐의 상당 부분을 남겨놓을 수 있게 됐다.

폐암 수술은 일반적으로 등 쪽에서 옆구리를 따라 가슴 쪽까지 길게 절개하므로 수술 후 통증이 심하다. 이 통증을 줄이는 방법이 등장했다. 환자의 몸에 3~5개의 구멍을 뚫고 카메라가 달린 긴 의료 도구(흉강경)를 넣어 수술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로봇 수술도 발달하고 있다. 20cm 이상 절개하는 수술(개흉 수술) 직후 6개월 동안 환자가 느끼는 통증이 10이라면 2~3cm 구멍을 뚫는 수술(흉강경 수술) 후의 통증은 4~5다. 그러나 로봇 수술은 그 구멍 수와 길이를 줄이므로 이후 통증을 2~3까지 줄일 수 있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 발생 위험이 정상인 보다 13배 높아진다. 인천 국제공항 출국장 앞 재떨이에 꽁초가 수북하다. ⓒ 연합뉴스
기존 항암제는 핵폭탄, 표적 치료제는 유도탄

물론 로봇 수술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무엇보다 로봇의 팔이 사람의 팔처럼 자유롭지 못한 탓에 자칫 갈비뼈에 있는 신경을 눌러 손상을 줄 수 있다. 이종목 국립암센터 흉부외과 전문의는 “수술 후 몇 년이 지나도 날씨가 좋지 않거나 몸이 힘들 때 신경통을 느끼는 이유”라며 “현재 사람 팔처럼 부드러운 로봇 팔 개발이 한창이라서 향후 몇 년 이내에 폐암 수술을 받은 환자의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폐암 환자가 느끼는 가장 흔한 증상은 기침(환자의 50~75%), 객혈(25~50%), 흉통(20%), 호흡곤란(25%)이다. 암세포가 위치한 부위에 따라 음식물을 삼키기 어렵거나 목소리가 쉬거나 뼈에 통증을 느끼는 등의 증상도 생긴다.

이런 증상은 조기에 나타나지 않는 점이 문제다. 증상을 느껴 병원을 찾아 폐암 판정을 받으면 대부분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폐암 진단을 받으면 수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암을 제거하는 수술 외에는 뾰족한 치료법이 없던 시기였다. 수술을 받지 못하면 죽는 날만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폐암=사망’ 또는 ‘시한부 삶’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금도 폐암 환자의 생존율은 15~17%로 낮다. 다른 암들의 평균 생존율이 60%를 웃도는 점을 고려하면 폐암은 악질 암인 셈이다. 사망 원인 1위가 암인데, 그 암 중에서 사망률 1위가 폐암이다. 그럼에도 전체 폐암 환자 3명 중 2명은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상태에서 암을 발견한다.

ⓒ 국립암센터 제공
말기 폐암 환자 살리는 표적 치료제 개발

이들에게는 항암제가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1990년대에 개발된 항암제는 핵폭탄과 같다. 전쟁터에 핵폭탄을 투하하면 그 부근에 있는 적군과 아군이 모두 전멸하는 것처럼, 항암제는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도 망가뜨린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부작용으로 환자는 외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항암 치료를 받던 폐암 환자가 감기에 걸려 폐렴으로 사망할 정도로 면역력도 떨어진다.

유도탄처럼 암세포만 골라서 타격하는 항암제가 필요했고 2000년대 초 표적 치료제(이레사, 타세바) 개발에 성공했다. 폐암도 종류가 많은데 전체 폐암의 80%에서 특정 유전자가 변이(EGFR)를 일으키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이 약은 그 유전자를 찾아가서 암세포만 공격한다. 이 약을 실제로 환자에게 사용하기 전에 임상시험을 했다. 미국·유럽·일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했는데, 미국과 유럽의 결과는 참담했다. 기존 항암제보다 사망률을 낮추거나 생존율을 높이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결과는 달랐다. 기존 항암제는 폐암 환자 3명 중 1명에서 효과를 보였지만, 이 표적 치료제는 환자 3명 중 2명에서 효능이 나타났다. 수명이 평균 4~5개월 남은 폐암 환자에게 기존 항암제를 투여하면 그 수명을 12개월 연장할 수 있었는데, 이 표적 치료제를 사용하자 30개월로 늘어났다. 또 환자가 몸으로 느낄 정도로 약효도 빨랐다. 이 표적 치료제는 경구용이어서 복용하기도 쉽고 부작용도 적다. 탈모나 면역력 저하와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은 거의 사라졌고, 피부 발진·가려움 등 가벼운 부작용은 있다.

왜 일본에서만 임상시험 결과가 좋게 나온 것일까. 서양인보다 동양인, 흡연자보다 비흡연자, 특정 폐암(전체 폐암의 40%를 차지하며 가장 흔한 폐암으로 알려진 폐선암)에서 좋은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말기가 아닌 조기 폐암 환자에 대해서도 이 약의 효능을 알아보려는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다. 만일 효과가 입증되면 수술 대신 약으로 폐암을 다스리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이 표적 치료제는 2009년 국내에서도 환자가 약값의 5%만 부담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됐다.

2002년 4기 폐암 진단을 받고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이태석씨(70)가 이 표적 치료제로 새 삶을 찾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건설회사에 다니면서 석면 등 유해 환경에 장기간 노출됐다. 그는 지금도 매일 그 항암제를 복용하면서 생업(유통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씨는 “치료 방법이 없던 그 당시에 신약 임상시험에 참가한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삶을 얻는 기회였다”면서 “아마 내 유전자 변이에 그 약이 잘 맞아 효과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암을 만성질환처럼 관리할 수 있다”

표적 치료제는 환자의 암세포에서 유전자 변이가 확인돼야 사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지 미리 알기 때문이다. 또,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항암제를 일단 사용하고 보자는 식의 치료가 아니므로 환자의 심리적 불안과 경제적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암도 진화했다. 이 약에 내성을 갖춘 것이다. 이 표적 치료제를 복용한 후 10~14개월 만에 내성을 띤 암세포가 발견됐다. 인류는 2006~07년 다른 유전자 변이를 찾아냈고 또 다른 표적 치료제(잴코리)를 개발했다. 일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약은 인종에 관계없이 비흡연자이면서 폐선암에 걸린 환자에게 효과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신약은 약 20년 걸리는 세 차례의 임상시험을 통과한 후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4년이 걸린 첫 번째 임상시험 결과만으로 사용 허가를 내줬다. 이 약을 먹은 환자 100명 가운데 60명이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기존 항암제는 임상시험에서 100명 가운데 5명에서 효과를 보인다. 박근칠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앞으로 암을 완치할 수는 없더라도 2세대, 3세대 표적 치료제를 꾸준히 개발하면서 암을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질병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말기 폐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준 표적 치료제(잴코리와 이레사).
폐암 환자의 대다수는 흡연자다. 지금까지 개발한 표적 치료제는 비흡연 환자에게 효과를 보였다. 따라서 앞으로는 흡연 경험이 있는 환자를 위한 표적 치료제가 나와야 한다. 이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는 흡연 경험이 있는 환자의 유전자 변이를 찾아냈다. 폐암 환자 200명에서 채취한 폐선암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다. 서정선 소장은 “폐암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암은 후천적으로 얻게 된, 유전자의 다양한 변이로부터 발생하므로 개인 맞춤형 암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따라서 개인별 암 유발 원인 유전자 변이의 발굴이 그만큼 큰 가치를 갖는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폐암을 예방하는 방법은 금연인가.

폐암 환자의 대다수는 흡연과 관련이 있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많다. 금연은 폐암 예방의 첫걸음이다. 간접흡연도 문제다. 한정된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간접흡연을 조장하는 행위다. 특히 집에서 고기나 생선을 구울 때 나오는 유해물질과 담배 연기를 같이 흡입하면 더욱 해롭다.

조심해야 할 환경적 요인은 무엇인가.

폐암 환자의 15%는 비흡연자이고, 이들 중 대다수는 여성이다.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사람이 폐암에 걸리는 이유는 간접흡연·석면·라돈·비소·카드뮴·니켈 등 환경적인 요인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이 생활하는 환경은 큰 문제라고 본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데, 낡은 학교나 학원 건물일수록 아이들이 석면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석면에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산업 발전이 급격한 중국에서 생기는 공해가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 영향을 미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폐암 발병에서는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지 못하는 만큼 명확한 환경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조심해도 한참 진행된 채로 폐암 판정을 받는 사례가 많은데 조기 검진은 어려운가.

매년 가슴 X선 촬영을 하면서 폐암을 검사하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말기 폐암을 발견하기도 한다. 폐암은 증상이 없고, 증상이 나타나면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내외 전문가들이 조기 검진 방법을 찾고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는 저선량 CT(일반 CT보다 방사선량이 10분의 1 정도인 전산화 단층촬영)로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하루에 담배를 한 갑씩 30년 동안 피운 55~74세, 즉 폐암에 잘 걸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했더니 저선량 CT로 폐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폐암 조기 검진의 최종 목표인 폐암 사망률을 하락시킬지에 대해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또 폐암에 잘 걸릴 것 같은 사람(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여서 일반인에게도 그 방법이 유효하다고 보기는 무리다.

폐암은 어떻게 검사하나.

과거 병력, 혈액 검사를 하고 의심되면 X선 촬영을 한다. 그런데 심장, 핏줄, 뼈 등에 가려서 암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저선량 CT로 폐암을 발견하기도 한다. 필요에 따라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뼈 스캔 등의 검사를 한다. 확진을 위해서는 조직검사를 한다.

조직검사를 꼭 해야 하나.

악성 종양인지, 어떤 종류의 암인지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한다. 이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 방법에 차이가 생기므로 조직검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또 과거에는 확진을 위해서 했지만 표적 치료제를 사용하는 요즘에는 유전자 검사를 하기 위해서라도 조직검사는 필수다.

폐암 판정을 받은 환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병원이나 의사에게 재진단을 받고 싶어 하는데….

여러 번 진단할수록 폐암을 확실하게 판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등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를 믿는 것은 문제다. 그래서 폐암에 좋다는 식품을 찾는다. 어쩌다가 한 사람이 특정 음식을 먹고 폐암이 나았다고 해도 그것은 특별한 경우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고, 그것이 자신에게 같은 효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암을 악화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앞으로 폐암 치료 방향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과거에는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다. 모든 환자에게 한 가지 약을 써서 효과가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환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약이 많다. 특히 표적 치료제 개발로 특정 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약을 미리 선별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만큼 치료 효과가 좋아진다. 그래서 과거에는 폐암이라고만 했지만, 지금은 무슨 무슨 유전자 변이 폐암이라고 세분해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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