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 왔소, 해에서 왔소?
  • 권대우 발행인 ()
  • 승인 2013.05.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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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이트족. 그린란드의 에스키모들을 이렇게 부른다. 이들은 북극에서 얼음 사냥을 통해 생계를 꾸려간다. 한때 이들은 지구상에서 인간은 자기네들뿐이라고 생각했다. 1818년 영국 극지탐험대의 대장인 존 로스 선장 일행이 이 지역을 찾았다. 탐험대와 마주친 이누이트족은 난생 처음 보는 외부인을 만나자 이렇게 협박했다.

“당장 여기를 떠나라. 떠나지 않으면 모두 죽일 수도 있다.”

탐험대가 천신만고 끝에 대화를 시도, 설득을 시키자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들은 달에서 왔소? 아니면 해에서 왔소?”

지구상에 자기네들 말고 다른 인간이 없다고 믿었으니 그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외부 침입자의 모습을 신기하게 여긴 이들은 잠시 후 탐험대가 타고 온 배에 오른다.

식량으로 싣고 온 돼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렸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무엇에 쓰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것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비스킷을 건네자 조심스럽게 한입 먹어본 후에는 역겨워하며 다시 뱉어내기도 했다.

이들의 강인한 정신은 어느 종족보다 강하다. 도전 정신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녹아내리는 얼음, 환경보호론자들의 물개 사냥 반대 운동 때문이다.

기술의 진화, 생태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는 이렇다. 과거의 관행,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익숙한 것과 결별하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덫이 되어버린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 대륙. 거대한 빙산. 그러나 이것이 녹아내리면 이들의 삶의 터전이 어떻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SNS의 진화는 기업 생태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동시성과 다발성 때문이다. 폭발력이 엄청나다. 별것 아니라고 방치됐던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삽시간에 전 국민에게 노출되어버린다. 소비자, 고객들이 등을 돌리는 사태로 이어진다.

경제 민주화 이슈도 마찬가지다. 민주적 시장경제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乙의 반란은 이제 숨길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정부는 기업의 숨통을 더욱 조일 것이다.

‘플라스틱 인간들’이란 말이 있다. 1970년대 기업의 임원과 간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전권을 휘두르는 CEO의 독재에 말없이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즘 기업에서 ‘플라스틱 인간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플라스틱 소비자’ ‘플라스틱 협력업체’ ‘플라스틱 주주’도 없어졌다. 제각기 자신들의 위치에서 제 목소리

를 확실하게 내며 자신들의 몫을 찾아 먹는 시대가 됐다. 乙의 반란, 경제 민주화, 상생, 동반 성장은 그런 토양 위에서 나왔다.

굳이 글로벌 경제 환경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 기업 생태계가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이누이트족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에 견줄 만큼 우리 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급박하다. 

녹아내리는 빙산. 그게 이누이트족만의 문제일까? 바로 우리 기업의 터전도 빙산처럼 녹아내리고 있다. 역사 이래 꿈 시장엔 불경기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Good company로 설정하면 불황도, 경제 민주화도, 乙의 반란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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